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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May 08. 2024

502호 검사실은 금세 욕으로 가득해졌다.

나는 오후에 있을 조사를 준비했다. 조사해야 할 사건은 쌍방 폭행 사건이었다. 기록 표지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는 '대질조사'라고 씌어 있었다. 검사는 대질조사를 하여 범죄사실을 특정한 후 기록을 다시 돌려달라는 의사를 단 네 글자로 표현했다. 검사도 대단하고 나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네 글자로 의사를 전달하고 네 글자를 읽고 그 뜻을 파악하다니..... ^^


당사자 둘에게는 3일 전에 출석을 요구했다. 둘은 오늘 오후에 출석하기로 했다. 아무리 보아도 둘은 쌍방 폭행 사건이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 피해자라고 우겼다. 두들겨 맞는 상황에서 열중쉬어하고 있는 사람은 없기에 일방 폭행 사건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드물었다. 글을 읽는 분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앞으로 이런 상황이 오면 열중쉬어를 하고 두들겨 맞기를 바란다. 자신의 무고를 입증하기 가장 좋은 행동이다.

 

나는 기록에 편철되어 있는 동영상 CD를 꺼내어 컴퓨터에 넣었다. 동영상에는 둘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먹을 날리는 속도가 전광석화다. 둘은 몇 해 전부터 서로의 스파링 상대가 되어 연습을 해왔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얼굴을 향해서도 저렇게 빠른 주먹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상대방 얼굴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리지 않는다. 날리는 주먹에 망설임이 있다.  


나는 조사를 받으러 내 앞에 앉게 될 사람들의 이런 동영상을 볼 때면 UFC 격투기 대회에 나갔어야 하는 분들이 길을 잘 못 들어 동네에서 이러고 있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경찰은 둘이 싸우던 곳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보하여 기록에 넣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화질이 매우 뛰어났다. 둘이 싸움을 하던 장소와 아주 가까운 곳에 설치된 CCTV였다.


자동차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은 소리가 나오는데 반해 전봇대 등에 설치된 CCTV는 음성이 나오지 않는다. 비록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둘은 서로를 이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처절한 전투였다. 코와 입에서 피가 흐르고, 주먹에서도 피가 흘렀다.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주먹질이 오고 갔다. 쉬는 시간이 규칙적인 것으로 보아 사각링에서 처럼 자신들 만의 룰이 있는 것 같았다. 둘은 한참을 싸우다가 쉬고 한참을 싸우다가 쉬는 것을 반복했다. 잠시 쉬고 있는 중에도 서로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목의 핏대가 선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치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졌다. 누군가 동영상에 목소리를 입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사건 기록을 뒤져 두 명에 대한 범죄전력을 확인했다. 둘은 폭행과 상해가 주 종목이었다. 다시 사건조회를 하여 과거에 둘이 선고받은 판결문을 뽑았다. 내 예감대로 둘은 서로에게 별을 달아주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때리고, 상처 입히면서 지난 몇 해동안 몇 천만 원의 벌금을 내고 있었다. 애국자인가? 싸움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날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많이 봤다. 끝없는 싸움에서 한 명은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난다.  


오후가 되어 현관을 지키는 청원경찰로부터 두 피의자가 도착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올려 보내라고 했다. 둘은 죄의식이라고는 없이 검사실에 들어왔다. 둘에게 앉을자리를 권했다. 나는 커피를 세 잔 타서 한잔은 내가 마시고, 남은 두 잔을 둘에게 주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는 곧바로 변호인선임권과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한데,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둘은 다시 싸움을 시작하였다. 내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싸웠다. 둘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 불렀는데 둘의 싸움판을 다시 만들어 준 꼴이 되었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까불지 말라고 했지 너 죽었어.”   

“너 가 까불고 있는 거야 쌍놈에 새끼야.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넌 죽을 줄 알아.”   


검사실은 금세 욕으로 가득해졌다. 온 사방에 욕이 떠다니고 있었다. 떠다니는 욕이 옷에 묻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나는 말리지도 않고 끼어들지도 않았다. 가만히 둘을 지켜보기만 했다. 십 분이 지났다. 둘만 떠드는 것이 미안했는지 둘은 갑자기 싸움을 멈추고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제가 이야기해도 돼요?"


둘은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이야기할 차례 맞아요?”


또, 둘은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두 분을 방해하지 않았으니까 두 분도 내 이야기를 방해하지 마세요"


둘은 세 번째로 머리를 끄덕였다.   


“선생님, 두 분 모두 60이 넘었습니다. 손주 손녀를 보시면서 ‘우리 손녀 너무 예쁘다’ ‘우리 손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할아버지가 사줄게’ ‘우리 손녀 앞으로 커서 훌륭한 사람이 돼 야지.’ 이런 말을 하셔야 될 연세가 되셨어요. 하지만, 지금 하시는 ‘죽인다.’ ‘눈깔을 뽑아버린다’란 말은 제가 듣기에도 섬뜩한 말이에요. 여기는 검사실입니다. 두 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곳입니다. 알고 계시죠?"


한 명은 "예 압니다"

다른 한 명은 "예 알죠"


"그런데, 계속 싸우시네요. 검사실에서 이렇게 싸우셨는데 밖에서는 얼마나 더 심하게 싸워왔겠어요. 주제넘게 어린 사람이 한 말씀 올릴게요. 저는 말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사관 생활을 하다 보면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서로 죽인다고 하는데 누가 죽을 거 같습니까? 본인인가요? 다른 사람인가요? 누가 되든지 한 분이 이겼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죽였어요. 그럼 끝인가요? 이긴 사람은 살인자가 되겠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인자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 있겠죠. 제가 이렇게 극단적인 단어를 써가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두 분의 끝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멈추셔야 됩니다. 에이 설마 하시죠? 아닙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더 심한 상황이 생겨요.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선생님들처럼 싸우다가 검찰청에 오셔서 조사를 받고 나서 싸움을 멈추는 사람도 있고, 멈추지 않고 계속 싸움을 하다가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인자가 되어서 교도소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주변에서 많이 보아서 잘 알아요.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멈출 것인지 이길 때까지 계속할 것인지요. 이긴 사람은 교도소에 갑니다.”


둘은 아무 말하지 않고 조용해졌다. 나는 키보드를 가까이 끌어당겨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했다. 둘은 묻는 말에 고분고분 차분히 대답했다. 나는 둘이 서로를 때리는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영상 구석을 가리켰다. 내가 가리킨 곳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어린아이 두 명이 있었다.    


“아이들이 누구예요?”

“손주요”

“손녀요”


한쪽 구석에는 둘의 손주와 손녀로 보이는 아이들이 할아버지 둘이 싸우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 다고 하는데 어쩌실 거예요? 창피하지 않으세요?”   


둘은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둘이 창피한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조사를 마치고 조서에 둘의 서명 날인을 받았다. 나는 몇 년이 지나 둘을 조사했던 검찰청을 떠났다. 아직까지는 60대 노인이 싸움을 하다가 누구 하나를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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