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에 수사했던 사건의 피의자가 지금 어떤 처벌을 받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일부러 이름을 외워두려 한 것도 아닌데, 십수 년 전 수사했던 피의자의 이름이 문득 떠오른다. 희한한 일이다. 지난주 있었던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주 오래전 사건의 피의자 이름이 불쑥 튀어나오다니.
그렇게 이름이 생각나면 사건 검색을 통해 형기와 형량을 찾아보고, 수용인 조회로 어느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어떤 이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지만, 어떤 이는 아직 형기가 오래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자신이 수사했던 사건은 사전 허가 없이도 조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얼마 전 아내와 SNS를 보다 사디오 마네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세네갈의 축구 스타 사디오 마네가 액정이 깨진 아이폰을 몇 년째 쓰는 걸 보고 팬들이 의아해했다. 한 해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10대의 페라리, 20개의 다이아몬드 시계, 두 대의 전용기를 가져야 하나요? 그게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과거 나는 배고팠고, 농장에서 일했고, 맨발로 뛰어놀았고,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학교를 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을 나누어 주는 걸 더 좋아합니다. 여러 학교를 지었고, 경기장도 하나 지었습니다. 우리는 극빈층에게 옷과 신발, 음식을 제공하고, 매우 가난한 세네갈 지역 사람들에게는 70유로(약 10만 원)씩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나는 값비싼 차, 호화 저택, 여행, 전용기를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나라 사람들이 내가 누린 것 중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습니다.
기사를 다 읽은 아내가 말했다.
“대단한 능력을 남을 위해 쓰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오래전 기억 속 한 이름이 떠올랐다. 김기호(가명). 정말 뛰어난 두뇌와 타고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을 가장 허망하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쓴 피의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세상에 자기 자신만 위해 사는 사람이 김기호 하나겠냐만, 내가 눈으로 직접 본 이야기라서 기록해두고 싶어졌다.
수사과장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더니 나를 불렀다. 검사장 지시로 반드시 검거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피의자가 오랫동안 잡히지 않을 때면 으레 내려오는 지시였다. 수사과장은 수첩에 적힌 이름을 보여주며 말했다. “김기호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나는 사건기록을 대출받아 읽으며 김기호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내가 검거 지시를 받는 대상은 쉽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방식으로 몇 년이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잡으려고 하면 그 사람이 태어난 산부인과까지 찾아가서 탐문을 한다. 수십 년 전 출산을 도왔던 간호사에게 특이한 점이 없었는지 묻기도 했다. 시간이 너무 흘러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때도 있었다.
김기호도 그런 상대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무서 총무팀장이 되었다. 20세 약관에 국가 세무직 7급에 합격한 인재였다. 개인적으로는 20세에 7급 합격은 5급 행시 합격 못지않다고 본다. 서른 살 전에도 사무관 승진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물론 주변에서도 그의 미래가 탄탄대로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그는 그 능력을 엉뚱한 데 썼다. 세무서에서 총무팀장으로 일하며 국가 소유 부동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겼다. 세무서 직인을 위조하고 계약서 등 온갖 서류를 조작해 국유재산을 뭉텅이로 팔아먹었다. 국유 부동산 관리 체계를 너무 잘 알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본인은 결코 들키지 않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김기호에게서 땅을 산 사람들은 약간의 이익을 붙여 다시 팔았다. 그렇게 소유권이 여러 번 바뀌었다. 마지막 매수자가 집을 지으면서 문제가 터졌다. 매매가 여러 차례 이뤄지는 동안 등기부등본을 떼봤다면 국가 소유라는 걸 확인했을 텐데, 그게 안 된 채 거래가 반복된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몇 년 뒤 국유재산 담당자가 국가 소유 부지에 누군가 집을 짓는 걸 발견하고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에서 집을 짓던 사람은 당연히 자기 땅인 줄 알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샀다고 진술했다. 매매 과정을 거슬러 추적한 끝에 김기호가 서류를 위조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결론이 나왔다. 세무서는 곧바로 김기호를 고발했다.
수사가 시작되자 김기호는 도주했다. 집을 짓던 사람은 전 주인을 고소했고, 전 주인은 전전 주인을 고소했다. 결국 김기호에게 처음 땅을 산 사람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런데 김기호가 검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국가소송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김기호가 최초 매수자를 어떻게 속였는지가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다.
김기호가 등기부등본을 제시했는지 여부까지 따져야 했다. 국가를 대신해 소송을 대리하는 검사는 검사장에게 보고했고, 결국 검사장 지시로 김기호를 반드시 검거하라는 명령이 나왔다. 국가가 패소하면 거액을 배상해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추적했다. 정보원에게서 얻은 결정적 정보는 김기호가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것이었다. 출입국 기록을 아무리 뒤져도 정식 출국한 사실이 없어 정보원의 말을 신뢰했다. IP 추적 끝에 중국에서 아들 명의의 아이디로 게임을 하고 있는 걸 알아냈다. 나는 즉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몇 해 전 수용인 조회로 확인한 바로는 김기호는 결국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낸 보고서를 토대로 중국 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을 수도 있고, 아내를 설득해 자진 입국했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젊은 나이에 세무서에 들어가, 그것도 7급으로 합격했던 유능한 인재였다. 그 능력을 잘만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뻔한 말이지만, 능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그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정말 안타깝다.
그 능력을 선한 영향력을 주는 데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25살에 대학에 들어갔고, 연령제한이 있던 시절에 겨우 막차로 9급 공무원이 됐다. 능력으로 비교하면 김기호와 나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나는 늦게 들어온 탓에 사무관 승진시험 자격조차 갖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더더욱 생각한다.
능력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능력을 어디에 쓸지를 아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능력이라도 선한 방향으로 쓰면 그 잠재력은 무한히 커진다.
반대로 눈앞의 이익만 좇아 쓰면, 결국 휴지 조각보다 못한 가치밖에 남지 않는다.
내 능력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