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 기장 힘들 때 저를 찾아 주세요

by 최길성
민원실_표지-4.jpg
에세이 민원실 서문.jpg

2018년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서 검찰과 경찰의 역할 분담이 좀 더 명확해졌다. 그중 ‘호송’이라는 업무도 분명해졌다. 호송업무란 검거된 도망자를 지명수배한 수사기관으로 데려다주는 일이다.


수사권 조정 전에는 검찰이 수배한 도망자라도 경찰이 불심검문으로 검거하면, 검거한 경찰서의 경찰관이 직접 그 사람을 수배한 검찰청까지 호송했다. 그러나 이제는 검찰이 직접 호송을 맡는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수배한 피의자가 부산경찰서 관할 경찰관에게 검거되면, 부산경찰서 형사과 소속 경찰관이 직접 피의자를 서울중앙지검까지 호송했다. 지금은 다르다. 부산검찰청 소속 호송팀이 부산경찰서로 가서 피의자를 인수받아 서울중앙지검까지 호송한다. 이처럼 호송 절차가 바뀌면서 검찰수사관 정원도 약 300명 정도 늘었다.


언제나 그렇듯 새롭게 떠맡는 험한 일에는 자원하는 사람이 없다. 검거되어 호송되는 사람들은 수개월에서 수년을 도망 다닌 경우가 많아 대부분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온몸에 오물이 묻은 노숙자일 수도 있고, 도망자 신분임을 잠시 잊고 여흥을 즐기다 술에 만취한 상태일 수도 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도 있다.


좁은 호송차 안에서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사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 기회만 있으면 도망가려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살피는 사람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한다.


게다가 검거된 이들이 정상적이지 않을 경우 각종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도주하는 피의자를 뛰어가서 붙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군가 도망가면 결국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법리를 기반으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조사업무를 선호하는 수사관들이 이렇게 변칙성이 큰 호송업무를 자원할 리가 없었다. (지금은 퇴직을 앞둔 수사관들이 제법 지원을 한다.)


결국 3명씩 조를 짜고 순번을 정해 호송업무를 맡게 되었다. 자신의 당번날에는 검찰청 주변이나 집에서 대기하다가 도망자가 검거되었다는 연락을 받으면 바로 출근해 호송을 나가기로 했다. 주간·야간으로 나누어 휴일 호송업무를 감당하려면 6명의 수사관이 필요했다.


어느 해인가 명절 연휴가 유난히 길었다. 하루 6명씩 5일간 총 30명이 연휴 내내 호송 대기를 해야 했다. 게다가 상황실 근무도 있다. 상황실은 2명이 한 조로 주간·야간을 나누어 하루 4명이 근무한다. 결국 명절 연휴 동안 호송과 상황실 근무를 위해 약 50명이 5일 내내 온전한 휴일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도 경찰이 그동안 호송업무를 떠맡아 준 데 대해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업무 부담이 늘었다고 푸념했고, 누군가는 고향에 못 가게 됐다며 불평을 쏟아냈다. 결국 다음 명절을 대비해 호송업무를 전담할 수사관을 뽑기로 했다.


지원자가 있었을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세상의 이치다. 맑고 깨끗한 세상에서 살고 싶어도 정작 본인이 나서서 쓰레기를 줍겠다는 사람은 없다. 예상했겠지만, 내가 지원했다. 전담 수사관은 3명이었는데, 나머지 2명은 강제로 충원되었다. 둘 다 과거 강등 처분을 받은 수사관이었다. 공직사회에서 강등은 상당히 무거운 징계다. 결과만 말하자면, 우리 셋은 2년 동안 사건·사고 없이 재미있게 호송업무를 해냈다.


개인적으로 검찰수사관 생활 중 가장 즐겁게 일한 시기였다. 너무나도 독특한 두 수사관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따로 풀어볼 생각이다.


호송업무를 맡은 지 1년쯤 됐을 때였다. 새벽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직감적으로 큰일이 났다고 느꼈다. 근무하는 내내 그 시간대에 전화가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관할 경찰서의 유치팀장이었다. 내가 호송팀장이었기에 자주 연락하던 사이다. 경찰서 유치팀장이 검찰 호송팀장에게 새벽에 전화를 했다. 큰일이 터졌다는 직감이 더 강해졌다. 유치장에 있던 사람이 도망갔나? 나에게 검거 지원을 요청하려는 건가?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그는 유치장에 있는 사람을 교도소로 호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급하고 목이 잠긴 목소리였다. 완전히 멘털이 나갔다가 겨우 돌아온 사람의 목소리.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의 목소리였다.


사실 나는 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사람을 야간에 호송할 의무는 없었다. 야간 호송은 교통사고 위험 때문에 일반적으로 피한다. 대상자가 있다면 보통 다음날 오전에 인수해 전국 각지로 호송하면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현행법상 체포영장으로 체포된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면 48시간 안에 청구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한 검찰청에서 신속히 조사할 수 있도록 야간 호송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때도 보통은 수배한 검찰청과 상의해 다음날로 미룰 수 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그날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야간 호송을 지양한다”느니, “이 사람이 검찰이 직접 호송할 대상이 맞느냐”느니 규정을 따지지 않았다. 그냥 “예, 알겠습니다” 하고 바로 검찰청으로 출근해 호송차를 몰고 경찰서로 향했다.


가는 동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원 K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유치장에 입감 하기 전에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그것이 미흡했던 것이다. 피의자가 라이터를 숨겨 들어간 채 유치장 안에서 이불과 커튼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폐쇄된 유치장에서 불이 나면 유독가스 때문에 경찰관과 유치인 모두가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을 포함해 유치인 10여 명이 질식해 몰살당할 뻔했던 사건이었다. 유치장은 밖에서만 열 수 있게 되어 있어, 밖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경찰관도 탈출할 수 없다. 다행히 유치팀이 불을 지른 피의자를 제압하고 불도 진화했다고 했다. 하지만 까맣게 불에 탄 유치장에 피의자들을 계속 수용할 수는 없었다.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송해야 해서 내게 호송을 부탁한 것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살벌할 정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유치팀장은 완전히 초주검 상태였다. 연기를 너무 마셨는지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피의자 몇 명을 검찰 호송차에 태우고 교도소로 향했다. 다행히 그날 호송은 무사히 끝났다.


호송이 끝난 뒤 연락이 온 유치팀장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단 한 마디만 했다.
“힘드셨죠? 가장 힘들 때 저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숨이 위협받는 위급한 상황을 잘 넘겨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그리고 나를 믿고 도움을 요청해 준 데 대한 감사였다. 언론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매번 싸우는 것처럼 비치지만, 우리 현장에서는 이렇게 서로 손을 잡고 길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내가 유치팀장에게 감사한 이유는 이것이다. 그가 나를 떠올리지 못했다면 이 이야기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게 해 준 것이 고마웠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 인사이동이 있을 때는 조금이라도 편한 자리, 승진이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 난리가 난다. 일은 적게 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자리…. 결국 누군가를 위해 마련된 자리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셈이다.


우리 모두 누군가가 가장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유퀴즈온더블럭' 출연 수사관의 가장 보람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