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 본 건 절대 잊지 않는다.
아무리 복잡한 숫자도, 어질러진 방안에 놓인 물건 위치도, 한 번 스쳐지나간 사람 얼굴도 죄다 기억한다.
특히, 나쁜 놈 얼굴은 절대 잊지 못한다.
바로 지금처럼.
“김가훈 씨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나왔습니다.”
“네? 누구요? 난 그런 사람 모르는데.”
놈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딱 잡아뗐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김가훈은 자유형 미집행자, 즉 ‘미집자’다.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고 도망쳤다.
그러고는 여태 잡히지 않고 있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김가훈. 38세.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남. 어려서 모친을 잃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살게 됨. 중학교 때부터 밥 먹듯 가출을 일삼다가 성인이 된 후 폭행으로 몇 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림. 아무 관련 없는 행인을 폭행해 기소된 후 잠적.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아직 도피 중.”
나는 놈의 이력을 줄줄 읊었다.
김가훈의 얼굴에 순간 긴장한 표정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그딴 건 모르겠고, 내가 그 김가훈이라는 증거가 어딨소?”
놈은 얼굴까지 바싹 들이밀며 말했다.
그렇다.
얼굴.
수배 전단 속 김가훈의 얼굴과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놈의 얼굴은 상당히 다르다.
얼핏 보면, 아니 자세히 본다고 해도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눈은 쌍꺼풀 수술을 해 조금 커졌고, 코 옆 점은 뺐고, 아예 양악수술을 해 하관 생김새도 달라졌네요, 김가훈 씨. 하지만 왼쪽 옆구리에 칼 맞은 자국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건 쉽게 없애기 힘들 텐데…….”
“이, 이 양반이 무슨 소릴…….”
“떳떳하다면 한번 확인해 봅시다. 마침 지금 옷을 벗으려던 참이었잖아요.”
옷을 다 벗고 모든 걸 드러낼 수밖에 없는 장소, 나는 지금 김가훈을 쫓아 사우나에 와 있다.
“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검찰청에서 나왔다고? 사기꾼 아냐? 검찰도 아닌 것 같고, 경찰도 아닌 것 같은데!”
김가훈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쥐새끼는 원래 궁지에 몰릴수록 크게 찍찍댄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들어본 적 없을 텐데…… 난 검찰 수사관…….”
내 소개가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김가훈이 도망쳤다.
목욕탕 안으로.
놈은 이제 막다른 골목, 아니 목욕탕에 갇힌 쥐새끼가 됐다.
내 이름은 신기탄, 검찰 수사관 3년 차다.
소속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국 검찰청 중에서 제일 바쁘다는 이곳에 운 좋게도, 혹은 운 나쁘게도 발령받았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실형을 선고받고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 도망친 미집자를 잡는 것이다.
경찰과 다른 게 뭐냐고?
좋은 질문이다.
경찰은 범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용의자를 쫓는 일이 주된 임무다.
반면 검찰 수사관은 범법자라는 게 확실한 인간을 쫓아 바로 교도소에 가둔다.
그러니 더 거칠 게 없다. 망설일 필요도 없다.
무릇, 나쁜 놈은 끝까지 쫓아가 잡아야 하는 거니까.
벌거벗은 남자 여럿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사우나니까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당연하지만, 나는 옷을 입은 그대로 김가훈을 쫓아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난 절대 안 잡혀! 지금까지 도망친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못 잡혀!”
놈은 어디서 구했는지 밀대를 들고 휘둘렀다.
“정확히 3년 7개월 12일이지.”
“뭐?”
“그쪽이 도망친 세월. 잘 숨어다녔어. 돈도 없을 텐데 성형까지 하고. 하지만 이젠 죗값을 치러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 새끼가!”
김가훈이 나를 향해 밀대를 휘두른 순간, 나는 놈의 겨드랑이 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곤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했다.
놈이 나보다 덩치가 컸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당하면 누구든 나가떨어지게 돼 있다.
“어어!”
김가훈은 균형을 잃고 단번에 뒤로 날아가 열탕에 빠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놈이 비명을 질렀다.
“으악! 뜨거워!”
“이 정도로 뜨겁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딱 좋은데.”
나는 열탕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물에서 허우적대는 놈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헉헉.”
김가훈은 물을 많이 먹었는지 정신을 못 차렸다.
나는 놈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순순히 따라와요. 더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그 순간이었다.
놈이 팔꿈치로 나를 치고는 허우적거리며 열탕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쯧쯧.”
나는 혀를 찼다.
도망자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도망 다니는 동안이 너무 힘들어 수사관을 만났을 때 체념하는 쪽과 어떻게 해서든 다시 도망치려는 쪽.
김가훈은 물론 후자였다. 그것도 아주 끈질긴 쪽.
나는 바가지를 집어 들고 냅다 던졌다.
퍽!
똑바로 날아간 바가지는 보기 좋게 놈의 뒤통수에 명중했다.
“악!”
김가훈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이번에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면서 다시 물에 빠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의를 상실한 놈을 건져낸 나는 목욕탕 밖으로 향했다.
졸지에 바지까지 푹 젖었지만, 어쨌든 그토록 잡고 싶던 놈을 체포했으니 더할나위 없이 개운했다.
마치 사우나라도 한 것처럼.
“이것 봐. 젊은 수사관 양반. 내 말 좀 들어.”
나는 운전에 집중하는데 뒷좌석에 앉은 김가훈이 계속 떠들었다.
놈을 체포해 밖으로 나와 보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교도소까지 가려면 꽤 먼 길을 달려야 했고, 나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려고 내비게이션 안내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 말 들어보라니까! 나 그냥 이대로 교도소 가면 죽어! 죽는다고.”
“어허. 죽긴 뭘 죽습니까? 가서 운동하고 책도 좀 읽고 푹 썩다 나오면 되는 거지.”
나는 결국 쏘아붙이고 말았다.
“그게 아니라니까. 내가 누구 돈으로 성형도 하고 이렇게 오래 도망 다녔다고 생각해? 응?”
“그거야 내가 알 바는 아니고.”
“내가 누구 밑에 있었는지 알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냐고?”
“아! 좀 조용히 해요.”
“그것들이 날 노릴 거야. 가만히 안 둘 거라고!”
“혼자 영화 찍습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국도 쪽으로 핸들을 꺾어 접어들었다.
“교도소 말고 검찰에 데리고 가줘! 내가 검사한테 말할게. 엄청난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다고.”
김가훈은 뒷좌석 손잡이에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다.
그 자세 그대로, 거의 온몸을 벌벌 떨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룸미러로 슬쩍 보였다.
그걸 보자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
미집자는 교도소 들어가기 전까지 도망갈 궁리만 한다는, 검찰 수사관 사이에 내려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러니 방심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가훈의 말투와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정말로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거 보세요, 김가훈 씨. 그 비밀이 뭔지 일단 저한테…….”
내가 그 말과 함께 슬쩍 뒤를 돌아봤을 때였다.
김가훈이 정면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크기의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덮쳐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었다.
하지만 트럭이 조금 더 빨랐다.
무식하게 단단한 8톤 트럭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연약한 승용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쾅!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충격이 차는 물론이고 내 몸도 뒤흔들었다.
나와 김가훈이 탄 차는 일순간 붕 뜬 후 그대로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그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차는 거의 10미터 이상 구른 후 거북이처럼 뒤집힌 채 멈춰 섰다.
“으으.”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안전띠를 풀고 겨우 차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뒷좌석에 고꾸라져 있는 김가훈에게로 가 상태를 살폈다.
그는 정신을 잃었는지 반응이 없었다.
“김가훈 씨! 괜찮아요?”
수갑을 풀고 놈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 생각에 주머니를 뒤져 수갑 열쇠를 찾고 있을 때였다.
훅!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싶더니 차에 불이 붙었다.
“아!”
나는 반사적으로 한발 물러섰다.
그때였다.
펑!
차가 폭발했고, 나는 저만치 날아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옆구리는 불이라도 붙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끈거렸다.
“깼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침대 옆에 박 검사가 서 있었다.
“검사님. 제가 얼마나…….”
“꼬박 이틀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어.”
“김가훈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 물음에 박 검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타서 뼈만 남았어.”
“아…….”
그런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김가훈은 범죄자일지언정 이렇게 비참한 상태로 죽어야 할 인물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그에게 아무런 개인적인 원한도 없었다.
그랬기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사고를 낸 덤프트럭은요?”
다시 내가 물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사라지고 없었어.”
“제가 번호판 똑똑히 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수배를…….”
“소용없을 거야. 분명 대포차일 테니까.”
“네? 그러면 우연한 사고가 아니란 말씀인가요?”
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박 검사는 상체를 숙인 채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그렇게 보고 있어. 윗선에서 더 이상 캐지 말라고 지시가 내려왔거든.”
“잠깐만요! 김가훈이 자기 목숨이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이런 사고가 일어났고요. 그렇다는 건…….”
“그렇다는 건 자네나 나나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야.”
박 검사는 그렇게 말한 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덧붙였다.
“이번 사고의 책임은 자네가 지게 될 거야. 인사조치도 내려질 거고.”
“검사님!”
“미안하네. 도움이 못 돼서.”
박 검사는 그 말만 남기고 병실에서 나갔다.
나는 멍하니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조금씩 분노가 차올랐다.
기억을 되짚었다. 나는 절대 잊지 않으니까.
번호판이 가짜라 해도 내 기억 속에서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머릿속에서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재생했다.
덤프트럭 운전자 얼굴이 떠올랐지만 또렷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운전자는 마스크를 끼고 모자까지 쓰고 있었으니까.
그 외에는 전혀 쓸모없는 정보뿐이었다.
오히려 사고 당시의 충격과 공포가 되살아나 머리가 더 아플 뿐이었다.
분명 내가 짐작도 하지 못하는 어떤 음모가 이번 사건에 도사리고 있었다.
내가 김가훈을 체포한 지 불과 1시간 만에 정교하게 계획한 사고를 냈다는 건 줄곧 나를 감시해 왔다는 뜻도 된다.
도대체 누가?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젠장.”
그렇게 중얼거렸던 그때는 몰랐다.
그 사고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