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그러고도 검찰청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인사 발령이 날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라는 명령 때문이었다.
그 명령을 받은 지 사흘이 흘렀지만 누구도 연락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는 대신 김가훈에 관해 혼자 조사를 계속했다.
놈에 관한 서류 속 내용은 이미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다.
마치 사진으로 찍어 보관해 놓은 것처럼.
필요할 때면 머릿속 보관함에서 그 기억을 꺼내기만 하면 된다.
나는 그걸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런 능력을 ‘완전기억력’이라 부른다.
그렇다.
나는 완전기억력 소유자다.
한 번이라도 보거나 들은 건 절대 잊지 못하는 저주받은 능력.
좋은 건 물론이고, 나쁜 기억 역시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말로는 설명 불가능하다.
덤프트럭과의 사고 이후에도 나는 수도 없이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렸다.
아니, 떠올려야 했다.
내게 그걸 잊을 선택 권한 같은 건 없으니까.
물론, 그러면서 한 가지 새로 알게 된 건 있다.
트럭 운전기사의 눈빛.
모자와 마스크 사이에서 빛나던 그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을 기억해 냈다.
그건 흡사 맹수의 눈빛이었다.
나는 다시 마주친다면 그 기사를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나흘째 되던 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박 검사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박 검사는 몇 통이나 전화를 걸었는데도 받지 않았다.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이쯤 되면 일부러 피하는 거지?”
허공에 대고 그런 소리를 해봐야 대답해 주는 이는 없었다.
나는 성인이 된 후로 줄곧 혼자 살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일단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대로 멍청이처럼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러는 건 내 스타일도 아니었다.
직접 검찰청으로 찾아가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지 속 시원하게 말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
더불어 김가훈 사망 사건 수사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나는 나흘 만에 집 밖으로 나갔다.
맑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을 보자 움츠러들었던 마음도 조금은 펴지는 느낌이었다.
초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그때였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내 앞으로 전단을 한 장 내밀었다.
나는 그 전단을 받아 들면서 무심코 노인을 봤다.
그 짧은 순간에도 기억은 저장된다.
검버섯 핀 노인의 피부, 주름진 이마, 움푹 들어간 뺨, 웃자란 수염, 땀에 젖은 회색 티셔츠 같은 것들이 찰칵, 하고 한 장의 사진이 되어 머릿속 보관함에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노인은 내가 전단을 받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뭘요, 하하.”
나는 괜히 쑥스러워 그렇게 말하고는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로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받아 든 전단이 조금 이상했다.
아파트 광고나 헬스장 광고나 아무튼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상단에 손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 신기탄 수사관. 날 다시 찾아내면 궁금해하는 걸 알려주지.
“뭐?”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방금까지 전단을 들고 서 있던 노인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완전히 돌아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지하철역 주변은 근린공원이었다.
노인은 아마 공원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전단에 적힌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노인이 나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노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공원을 향해 서둘러 걸었다.
날씨가 좋아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노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비슷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찬찬히 살피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축구공이 발치로 굴러온 건 다시 공원 입구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나는 공을 주워 들고 정면을 봤다.
“아저씨. 여기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손을 들고 있었다.
녀석을 향해 공을 굴려 보낸 뒤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몇 미터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와 중년 여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그들을 보다가 벤치로 향했다.
내가 다가가니 중년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이 남자 분과 일행 아니시죠? 그러면 잠시 비켜주시겠습니까?”
여자는 옆자리 남자 눈치를 살피다가 말없이 일어났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갔다.
“잠시 앉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중년 남자 옆에 앉았다.
“젊은 사람이 말이야, 멀쩡히 잘 앉아 있는 분 자리를 뺏으면 쓰나?”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는 마르고 키가 컸다. 나이는 5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마르기는 했지만, 옷 속에는 탄탄한 근육이 자리하고 있을 게 뻔했다.
참나무처럼 단단한 팔뚝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미스터리한 중년 남자를 향해 말했다.
“찾아보라고 하시기에 찾은 것뿐입니다.”
“여자와 내가 일행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남자가 물었다.
“두 분 사이 거리가 애매했거든요. 부부라고 하기에는 너무 떨어져 앉아 있었고, 그저 친구라 하기에는 또 가까웠거든요.”
“불륜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러기에는 서로가 취향이 아닐 것 같아 보였습니다.”
내 말에 남자는 슬쩍 웃었다.
“하나만 더 묻지. 날 어떻게 알아봤나?”
“수염 때문에요.”
“수염?”
“처음 마주쳤을 때도 노인치고는 수염이 너무 까맣다고 생각했죠. 특히 머리카락 색깔에 비해서. 그래서 의심했습니다. 노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음. 재밌는걸. 계속 해봐.”
“그러다가 당신을 봤죠. 일부러 허리를 숙이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면 얼추 노인의 키와 비슷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
“수염이 똑같았습니다.”
“수염?”
“수염이 자란 위치나 길이가 노인과 같았다는 거죠. 전 그런 걸 절대 잊지 않거든요.”
“하하. 역시 재미있는 친구네. 쓸 만하겠어.”
남자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제가 질문해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지.”
“같은 검찰 수사관끼리 왜 절 시험해 본 겁니까?”
나는 그가 또 질문할까 봐 미리 덧붙였다.
“대검찰청에서 당신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달 전이었고, 엘리베이터 안이었죠. 저는 동기 수사관을 만나기 위해 11층을 눌렀는데 당신은 12층을 누르더군요. 차림새를 보니 검사는 아니고 수사관이겠구나 싶었죠.”
남자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다시 웃었다.
“하하. 내 예상이 맞았어. 자네, 평범한 사람과 다르지? 다른 능력이 있지?”
이번에는 내 표정이 멍해질 차례였다.
완전기억력을 가졌다는 건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만의 비밀이었다.
“어, 어떻게…….”
“그거 말고 다른 거 궁금한 건 없나?”
남자가 싱글싱글 웃으며 물었다.
“네? 다른 건…… 아!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잘리는 걸 걱정했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지. 대신에 근무지는 변경됐어.”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셔츠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내일 대검찰청 12층으로 와서 날 찾아.”
나는 명함을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장춘자 계장
- 범죄정보기획관실 - 」
“여기는…….”
내가 미처 다 묻기도 전에 남자, 장춘자는 일어나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마치 친구에게 내일 만나자고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그날 밤, 나는 대검찰청에서 근무하는 동기에서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술이라도 마시는 중인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이. 중앙지검 사고뭉치 수사관이네. 어쩐 일이야?”
“하나만 물어보자.”
“두 개 물어봐도 돼. 흐흐.”
“너, 범죄정보기획관실이라고 알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기 녀석이 큰 소리로 되물었다.
“뭐? 범정?”
그러더니 급하게 소리를 낮춰 다시 말했다. 어느새 발음도 정확해졌다.
“거긴 모르면 편하고,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하는 곳이야.”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줄여서 범정이라고 부르는 거지? 나도 이름만 들어봤는데 정확히 뭐 하는 곳이야?”
“잠깐만. 어휴. 술이 확 깨네. 인마.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 거기에 관심을 가져?”
“그럴 일이 있어. 내가 검색 좀 해봤는데, 그냥 범죄 정보 수집하는 부서 같던데 아니야?”
“맞지. 근데 대검에서도 범정은 베일에 싸인 조직이야. 그쪽 수사관 모두 입이 장난 아니게 무거워. 우리하곤 어울리지도 않아.”
“그래? 그러면 혹시 장춘자 계장도 몰라?”
대답은 금세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나는 녀석이 꽤 긴장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야! 지금 추, 춘자 계장이라고 했냐? 너 그 사람하고 절대 얽히지 마! 인생 꼬여!”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군데 그래?”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럴수록 녀석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장춘자는 범정 에이스 수사관이야. 힘들기로 유명한 범정에서 제일 오래 근무한 양반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응.”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아. 답답하네. 장춘자는 어디에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이 나라의 모든 정보가 그 사람한테로 흘러간다고. 아니지.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 양반이 다 모으는 거지.”
“그러면 정보통이라는 거야?”
내가 묻자 녀석은 쯧쯧 혀부터 찼다.
“그런 말로는 부족해. 장춘자가 뭐라고 불리는지 알면 넌 깜짝 놀랄걸?”
“뭐라고 불리는데?”
“모든 걸 아는 남자!”
“모든 걸 안다고?”
“장춘자가 모르는 정보는 없대. 시중에 떠도는 찌라시부터 대통령이 오늘 무슨 색 팬티 입었는가도 다 아는 게 그 양반이라는 거야. 이제 감이 좀 와?”
“음……. 대단한 사람인 것 같긴 한데.”
나는 장춘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딱히 카리스마 넘치거나 인상적인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거의 특징 없는 편에 속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자의 얼굴 그 자체.
“자, 내가 이 정도까지 얘기해 줬으니까 어서 너도 말해. 무슨 일이야? 뭔 일인데 갑자기 범정이고, 장춘자고 묻는 거야?”
녀석이 물었다. 진지한 말투였다.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 아무래도 거기로 발령 난 것 같거든.”
“응?”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내일부터 거기 나오라는데?”
“누, 누가?”
“장춘자 계장이.”
“끊어. 나랑 통화한 거 비밀이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나는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들고 멀뚱히 앉아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