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대검찰청에 도착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앞에 장춘자 계장이 서 있었다.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왔군. 혹시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거였습니까?”
내 물음에 장춘자 계장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니고.”
“그럴 것 같아서 왔습니다.”
“좋아. 그럼 가볼까?”
장춘자 계장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네? 갑자기 어디로?”
“새로운 조직에 왔으니 새로운 보스한테 인사 정도는 드려야지. 안 그래?”
“아! 네…….”
잠시 후 우리는 범죄정보기획관실의 기획관 사무실에 서 있게 되었다.
“반갑네. 구자문 차장검사네.”
풍채 좋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신기탄 수사관입니다! 반갑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악수하는데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구 차장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장 계장이 적극 추천하더군. 나야 뭐, 장 계장 말이라면 신뢰하니까 자네를 여기로 데려온 거고. 이곳에서 뭘 하는지는 알고 있지?”
구 차장이 물었다.
표정 자체는 부드러웠지만 베테랑 검사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는 어디 가지 않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허허. 솔직해서 좋네. 범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지. 아무튼, 열심히 해 보라고. 장 계장이 파트너 원하는 건 처음이니까.”
그 말에 장춘자 계장을 힐끔 봤다.
그는 별 표정 없이 서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구 차장은 어서 나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장 계장. 파트너 잘 대해줘. 이번에는…… 아니야. 수고해.”
이번에는 뒤에 생략한 말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장춘자 계장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좀 긴장이 풀렸다.
“저…… 계장님. 그러면 저는 어디 소속입니까?”
내 물음에 장춘자 계장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아니, 1담당관실과 2담당관실이 있던데…….”
“아! 우린 아니야.”
장춘자 계장은 경쾌하게 말했다.
“우리는 아니라니, 그러면 소속이 없다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자네랑 난 구 차장님 직속 라인이야. 그러니까 자유롭게 움직이면 돼. 보고도 구 차장님께 하면 되고.”
“그러면 배정된 자리는 없는 겁니까?”
나는 설마 하며 물었다. 그러자 그 설마가 진짜가 되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없어. 우린 여기 처박혀 앉아서 근무하는 게 아니야.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매일 정보를 얻고, 매일 돌아다닐 거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더 물어봐야 어째 점점 더 절망적인 소식만 접할 것 같았다.
“좋아. 빨리 적응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내 발목을 안 잡지.”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노력하겠습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웃었다.
“자, 그럼 가볼까?”
이번에는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장춘자 계장이 이미 엘리베이터 하강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었다.
그건 곧 밖으로 나간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처음 들른 곳은 서초역 근처에 있는 허름한 백반집이었다. 테이블이 4개 밖에 없는 작은 가게로, 이 동네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도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아침 안 먹었지?”
장춘자 계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네.”
“이모. 여기 백반 두 개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춘자 계장은 주방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들렸다.
“주문 된 게 맞을까요?”
노파심에 물었는데 장춘자 계장은 전혀 다른 소리를 했다.
“여기가 이 동네에서 제일 오래됐어. 간판도 없고 메뉴도 백반 딱 하난데 서초동 밥 좀 먹었다 하는 인간은 다 아는 곳이지.”
“그렇게 맛집인가요?”
“뭐, 맛집이긴 하지. 정보 맛집.”
장춘자 계장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잠시 후 알게 됐다.
누군가로부터 ‘이모’라 불리기엔 너무나도 늙은 할머니가 쟁반 가득 밥과 반찬을 들고 나타났다.
그러더니 세상 무심한 표정과 태도로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이모, 오늘은 뭐 좀 없어요?”
장춘자 계장은 대끔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어젯밤에 양화대교 아래에 뜬 시체, 형우그룹 비서실 직원이래.”
“비서실 직원이면, 여자?”
“응. 물에 빠지기 전에 이미 사망한 것 같다던데.”
“타살일 수도 있다는 거네요.”
“뭐, 그렇겠지.”
뭐지?
내가 지금 무슨 대화를 듣고 있는 거지?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와 장춘자 계장은 마치 한담이라도 나누듯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밥을 먹으면서!
“자네는 안 먹어?”
장춘자 계장이 갑자기 물었다.
“아! 먹습니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일단 국부터 한 숟갈 떴다.
콩나물국이었는데 딱히 맛있지도, 그렇다고 맛이 없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그저 그랬다.
다른 반찬도 비슷했다.
나는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하면서도 계속 두 사람 대화를 들었다.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도 없었다.
좁은 가게 안에서 딱 붙어 이야기하는 중이니.
“아! 그러고 말이야, 명동파 김 사장은 곧 풀려날 거래. 혐의없음으로.”
할머니는 동네 개가 새끼를 낳았다고 전하는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너무 무리해서 잡아넣었거든.”
“나야 그런 건 모르겠고,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야. 밥들 먹어.”
그 말을 남긴 채 할머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또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났다.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먹는 데 집중했다.
왠지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장춘자 계장이 그만큼 열심히 밥을 먹고 있기도 했고.
“다 먹었지?”
10분 정도가 지난 뒤 밥그릇을 싹싹 비운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네.”
“그러면 일어나자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춘자 계장은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주방을 향해 외쳤다.
“이모. 잘 먹었어요!”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백반 두 개에 5만원이나 합니까?”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묻자 장춘자 계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정보 이용료.”
우리는 다시 대검찰청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장춘자 계장은 이쑤시개를 잘근잘근 씹으며 내게 말했다.
“꼬리 안 붙었지?”
“네.”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어떻게 확신하지?”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저희를 계속 따라오는 사람은 없거든요.”
“이야. 그거 진짜 편리하네. 부럽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줘.”
“알겠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 대검찰청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제는 내 차로 이동할 거야. 혹시 멀미 심하나?”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다행이네. 앞으로 우린 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건데, 내 운전이 좀 거칠어서. 흐흐.”
그가 모는 건 검은색 SUV였다.
아무런 특색도 찾아볼 수 없는 흔하디흔한 차.
나는 그 차 조수석에 올랐다.
차가 출발해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할머니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
“어허. 할머니라 하면 화내셔. 이모라고 불러야 해.”
“아! 네.”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면 말이야, 알기 싫은 것도 알게 되고 듣기 싫은 것도 듣게 되지. 특히 이 동네에선 더 그래.”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이모는 그런 걸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기억했다가 전해주는 거야. 훌륭한 정보원이지.”
“하지만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자넨 앞으로 이걸 명심해야 해.”
“뭐, 뭡니까?”
“잘못된 정보는 있어도 나쁜 정보는 없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장춘자 계장은 도로로 접어든 후에야 설명을 이어갔다.
“정보는 정확하고 아니고를 떠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잘못된 정보는 그것대로, 올바른 정보는 또 그것대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 가치 있거든. 그러니까 중요한 건 가능한 많은 정보를 모으는 것과 그걸 판독해 낼 수 있는 능력인 거야.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장춘자 계장의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건 먼 훗날의 일이었다.
“자, 그러면 이번엔 마포구로 넘어가 볼까?”
장춘자 계장이 그 말과 함께 좌회전 차선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잠깐만요!”
내가 외쳤다.
“왜?”
“꼬리가 붙었어요.”
그랬다.
나는 장춘자 계장의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 사이드미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결과 오토바이 한 대가 갑자기 나타나 뒤로 붙는 걸 알아챘다.
분명 처음 이 도로로 접어들었을 때는 없던 오토바이였다.
나는 스쳐 지나간 각종 차량의 번호판도 다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검은색 오토바이는, 분명 이제 막 나타나 우리 뒤를 따라오는 중이었다.
“저 오토바이 말하는 거지?”
장춘자 계장이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돌려 볼까?”
그는 익숙한 일인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고 다음 순간,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좌회전 신호가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핸들을 확 꺾어 교차로로 진입한 것이다!
“억!”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끼익!
장춘자 계장의 SUV가 미꾸라지처럼 도로를 헤집으면서 곳곳에서 차가 멈춰 섰다.
그는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좌회전을 해 마포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피한 차가 몇 대나 되고, 우릴 향해 경적을 울리며 쌍욕을 퍼부은 운전자도 몇 명이나 됐다.
결정적으로, 사고가 났다.
우릴 미행하던 오토바이가 부랴부랴 따라오다가 택시 한 대와 그대로 부딪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오토바이를 확인했다.
붕 날아간 오토바이는 그대로 땅에 떨어졌고, 운전자는 엎어져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저, 저거 괜찮을까요?”
내가 물었다.
“괜찮아. 저런 식으로 날 따라오다 피 본 애들 줄 세우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질걸? 흐흐.”
장춘자 계장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계속 운전했다.
“그런데 계장님을 왜 미행하는 거죠? 이런 일이 흔하세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지.”
“두 가지 유형이요?”
“내 입을 열게 해서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 아니면 내 입을 닫게 해서 영원히 뭔가를 숨기고 싶은 사람.”
“그러면 여러 사람이 계장님을 노린다는 거잖아요? 너무 위험한데…….”
내가 중얼거리자 장춘자 계장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지. 이제 나만 위험한 게 아니야. 자네가 내 파트너가 됐다는 정보가 이미 쫙 퍼졌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 ‘우리’가 위험한 거야. 흐흐.”
나는 할 말을 잃고 정면만 봤다.
‘우리’라는 단어가 이렇게 섬뜩하게 다가온 건 처음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적어도 우리 중 한 명, 장춘자 계장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내 다짐은 채 1시간도 가지 못하고 깨졌다.
이 바닥에는 놀랄 일이 가득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