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지.”
장춘자 계장의 말에 나는 엉거주춤 바닥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저는 남도민입니다.”
남도민이 그렇게 말한 후 직접 차를 따라 내게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찻잔을 받았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도민을 모를 수 없다.
아니, 관심이 없다 해도 이 잘생긴 젊은 비서실장은 대부분 알 것이다.
그만큼 이미지도 좋고 언론에 노출도 많이 됐다.
검사 출신에 비교적 젊은 50대 비서실장.
지난 대선에서 현 대통령을 도와 기적의 역전 드라마를 만든 남자.
당시 선대위 위원장이었던 그가 현 대통령의 지지를 호소하며 명동 한복판에서 장장 1시간 동안 쏟아낸 명연설은 아직도 유튜브나 각종 SNS에 돌아다니고 있다.
“이쪽은 아까 말씀드렸던 제 파트너입니다.”
장춘자 계장이 그 말을 하고서야 여태 내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범정 수사관 신기탄이라고 합니다.”
“우리 장 계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 유능하다고 하던데요.”
나는 장춘자 계장을 힐끔 봤다.
단 하루 만에 파트너의 유능함을 깨달은 사람치고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저 차를 홀짝일 뿐이었다.
“유능해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간밤의 사건도 수사관님이 아니었다면 해결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남도민이 말했다.
“아! 그건 솔직히 운이 좀 좋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동시에 궁금증을 품었다.
이 남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운도 실력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계장님?”
남도민은 장춘자 계장에게로 질문을 돌렸다.
“정확히 말하면, 실력 없는 사람한테는 운도 안 찾아오죠. 하하.”
장춘자 계장은 실없이 웃었다.
아무래도 둘 사이는 내 짐작보다 훨씬 가까운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남도민이 말했다.
“제가 장 계장님과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하시죠?”
“아……. 네. 궁금합니다.”
“제가 춘천지검에서 검사 생활하던 시절에 장 계장님이 수사관으로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그때부터 무척 친해졌죠.”
“근데 나는 여전히 검찰에 처박아 두고 혼자 대통령 라인을 탔단 말이야. 그러곤 틈만 나면 날 부려 먹는다니까.”
장춘자 계장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투로 투덜거렸다.
남도민은 익숙한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제 하루지만 괴팍한 파트너와 지내본 경험이 어떻습니까?”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모범적인 답을 골라 대답했다.
하지만…….
“저 양반이 자기 노하우를 쉽게 가르쳐 주지 않을 텐데요? 하하.”
남도민은 바로 그렇게 말했다.
“에이.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죠.”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신기탄 수사관님께 몇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네.”
남도민의 말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다음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날아들었다.
“왜 검사가 아니라 검찰 수사관이 된 겁니까?”
“네? 그게 무슨…….”
“법학과에 다녔고 성적도 우수했습니다. 게다가 수사관님의 그 능력이라면 사법고시에 붙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남도민은 분명 ‘그 능력’이라고 말했다.
나에 대해, 그것도 샅샅이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능력이라면 완전기억력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오히려 되물었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네. 그 능력은 전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희귀한 거라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한 번 보고 들은 건 절대 잊지 않고 모두 기억합니다.”
“축복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릴 때는 저도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요?”
“비서실장님께선 잊었으면 하는 기억이 없습니까? 어쩌면 이미 잊은 기억도 많을 겁니다. 그게 자신을 보호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그러니까, 신기탄 수사관님은 끔찍한 기억조차 절대 잊지 못한다는 겁니까?”
“이미 꼼꼼하게 조사하셨을 테니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제 부모님은 강도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제가 처음으로 그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절대 잊히지 않더군요. 그게 트라우마가 돼서 검사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다만,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치 않아서 차선책으로 검찰 수사관이 된 겁니다.”
남도민은 내 장황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장 계장님이 그쪽을 파트너로 삼은 이유를 알겠군요.”
“그 이유가 뭔지 저도 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장춘자 계장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대답한 건 남도민 비서실장이 아니라 장춘자 계장이었다.
“이유는 뭐, 특별한 건 없어. 내가 나이가 들어서 깜박깜박하더라고, 요즘. 그런데 자넨 기억력이 엄청 좋으니까 나 대신 이것저것 기억 좀 하라고 부른 거지.”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우린 지금 아주 힘든 싸움을 시작했기에 든든한 우군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거든요.”
“힘든 싸움이라면?”
내 물음에 남도민은 장춘자 계장을 힐끔 봤다.
그러자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이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나쁜 놈들이 있지. 우린 그 조직을 와해할 거야.”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끔벅거렸다.
그런 내게 남도민이 덧붙여 말했다.
“흔한 음모론처럼 들리겠지만, 음지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까지 마음대로 움직이는 세력이 존재하는 건 확실합니다. 우린 그 세력이 자칭 ‘그림자 조직’이라 부른다는 것도 압니다.”
그림자 조직이라니, 남도민의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황당했다.
철저히 보고 들은 것만 믿는 내게 그림자 조직이니 음지에서 나라를 주무르니 하는 말은 황당무계하게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남도민이 굳은 표정으로 자기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우리를 향해 말했다.
“VIP께서 찾으십니다.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아! 그러셔야죠. 그러면 이 친구는 합격인 겁니까?”
장춘자 계장이 나를 가리키며 남도민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계장님께서 잘 가르쳐 주시죠.”
남도민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춘자 계장과 나도 따라 일어났다.
엉겁결에 합격한 나는, 대체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는 멍청한 상태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네. 수사관님. 자주 뵙죠.”
나는 남도민이 나간 후 장춘자 계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뭐가?”
장춘자 계장은 남은 차를 단숨에 들이키며 되물었다.
“아니, 저는 그냥 평범한 검찰 수사관일 뿐인데…….”
“검찰 수사관이 하는 일이 뭔가?”
“그야 나쁜 놈, 법망 피해서 도망치는 놈들 잡는 거죠.”
“바로 그거야. 우리도 그런 일 할 거야. 다만 스케일이 조금 커졌다 뿐이지.”
“이건 스케일 문제가 아니라…….”
“자, 또 움직여야지. 빨리 움직이는 수사관이 정보를 얻는 법이거든.”
장춘자 계장은 내 말은 싹 무시한 채 밖으로 나갔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따라 나갔다.
“이번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 물음에 장춘자 계장은 무심히 대답했다.
“나쁜 놈 만나러.”
과연, 나쁜 놈은 나쁜 놈이었다.
우리가 만난 이는 희대의 연쇄살인마 조부현이었으니까.
어쩐 일로 서울구치소로 향한다 싶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면회실에 나타났다.
게다가…….
“기자님. 이렇게 오랜만에 오면 어떡하나? 응?”
조부현은 장춘자 계장을 기자로 알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조부현 씨가 그동안 입이 근질근질했군요. 기자 일이라는 게 워낙 바빠야 말이죠.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장춘자 계장은 말투까지 사근사근하게 바꿔 그렇게 둘러댔다.
“그런데 옆에는 누구지?”
조부현이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아! 신입 기잔데, 이 친구가 글빨이 좋거든요. 그래서 조부현 씨 자서전 집필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데려왔습니다.”
뭐? 자서전 집필?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장춘자 계장이 툭 건드리며 말했다.
“김 기자. 뭐해? 어서 인사드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아, 안녕하세요? 김동수 기자라고 합니다.”
김동수는 내 중학교 동창 이름이었다.
“그래. 잘 부탁해요. 자, 그러면 이야기를 해 볼까? 오늘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거든.”
조부현이 말했다.
“좋습니다. 이 자서전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겠네요! 하하.”
장춘자 계장은 진짜 기자라 해도 무방할 만큼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기자 양반. 자서전 나오면 큰돈 되는 거 맞지? 그러면 우리 가족한테 그 돈 싹 다 돌아가는 것도 확실하고. 응?”
“당연하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이 책이 대박 나려면 지금껏 세상에 알려진 것 말고 아주 충격적인 사실이 꼭 들어가야 합니다. 꼭!”
“그건 나도 알아. 오늘 말할 부분이 바로 그거고.”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시죠. 김 기자, 녹음 부탁해.”
“아! 네.”
나는 아무런 필요도 없는 핸드폰 녹음 기능을 실행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조부현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부녀자 연쇄살인범인 건 인정해. 모두 일곱 명을 죽였지. 하지만 내가 분명히 죽였는데 희생자에 포함 안 된 사건이 하나 있어.”
“경찰에 이야기는 하셨습니까?”
“했지!”
“그런데도 무시했다?”
“바로 그거야! 왜냐하면 그 살인은 의뢰받는 거였거든.”
“의뢰요?”
“네 번째 살인을 한 직후였어. 어떤 남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지. 그 새낀 다 알고 있었어. 내가 네 건의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도, 내 신상도. 그러면서 이야기하더라고. 내 솜씨가 마음에 드니 한 명만 처리해 주면 자기는 모른 척하겠다고. 거기에 더해 1억을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 흐흐.”
“그래서…… 누굴 제거했습니까?”
장춘자 계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꽤 유명인이었지.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여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유소영.”
“유소영이요?”
장춘자 계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도 놀랐다.
유소영이 누군가.
2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 신인이 바로 그녀였다.
빼어난 외모는 물론이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화술까지 좋아 단번에 인기 정치인이 됐다.
당시 야당, 현재는 집권 여당인 대한당 소속으로 차차기 대선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괴한의 피습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시신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훼손됐다고 들었다.
정치인을 노린 테러니, 단순 강도니, 원한에 의한 살인이니 말이 많았지만 끝내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건을 저지른 게 다른 사람도 아닌 연쇄살인마 조부현이라고?
그것도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놀랍군요.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장춘가 계장이 말했다.
그러자 조부현이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희생자는 안 그러는데 그 여잔 계속 꿈에 나와. 그게 괴로워서 털어놓았는데,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더군. 그래서 알아차렸지. 내 짐작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 자가 배후구나, 하고.”
“혹시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십니까?”
“몰라. 하지만 이건 확실하잖아. 유소영이 죽어서 제일 이득 본 인간이 한 명 있다는 거.”
“그렇죠. 한 명 있죠.”
장춘자 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 것 같았다.
그 인물은 바로 윤동우 의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