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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모두가 사랑하는 남자

by 최길성
모든 걸 아는 남자(브런치 축소).png

범죄정보기획관실, 이른바 ’범정‘은 범죄와 관련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범죄와 관련된 정보라는 건 상당히 포괄적이다.

즉,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것이 불법적인 일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일단 정보를 모으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범정 수사관은 국정원이나 다른 첩보 기관과 비교해서도 정보의 질과 양에서만큼은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선 남자가 바로 장춘자였다.

계장이라는 직함 외에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남자.

범정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고, 앞으로도 계속 범정에서 일할 남자.

미스터리한 조직인 범정 안에서도 가장 미스터리한 남자.

누군가는 그를 두고 범정의 실세라 했고, 누군가는 범정의 눈엣가시라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장춘자 자체가 범정이라 하기도 했다.

이른바 ’모든 걸 아는 남자‘ 장춘자는 그렇게 전설이자 역사이자 신화가 되었다.

그런 그가…… 내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머리에는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어 쓰고서.

나는 그의 정확한 나이도 알지 못한다.

때로는 젊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중년을 훌쩍 넘어 보이기도 했다.

지금 모습은 중년 아저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장춘자 계장의 풀어진 모습을 보자 나도 어느 정도는 긴장을 덜게 됐다.

그래서 뜨끈뜨끈한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대놓고 눕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지난 이틀 동안 그야말로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나는 평범한 검찰 수사관으로 미집자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끼며 살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놓인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장춘자 계장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그림자 조직이니 뭐니 큰 판이 벌어지는데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그게 의심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내게 연락해 온 의문의 남자에 대해 장춘자 계장에게 말해야 하나 그것도 고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설핏 졸았나 보다.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장춘자 계장이 갸름한 그 얼굴을 들이민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 계장님. 왜 그러세요? "

”아니, 난 또 정신이라도 잃은 건가 싶었지.’

“아닙니다. 깜박 졸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입에서부터 흘러나온 침을 손으로 닦았다.

“몸 좀 풀렸으면 이제 가볼까?”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불가마에서 나와 다시 씻으려고 사우나로 향했다.

사우나에 있는 TV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던 연쇄살인범 조부현의 살해 교사 혐의를 받던 최 모 씨가 방금 자기 소유의 스타렉스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최 씨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는데, 거기에는 연쇄살인범이면서도 뻔뻔하게 교도소 생활을 하는 조 씨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 들어오면 다시 보도하겠습니다.”

앵커의 격양된 보도가 끝나고 광고가 흘러나왔다.

“최 모 씨는 누굴까요?”

나는 장춘자 계장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모르지. 우릴 습격한 놈 중 하나이거나,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거나. 아무튼 꼬리 자르기를 빠르게도 했네.”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딱히 놀랍지도 않다는 투였다.

불가마에서 나온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는 데 동의했다.

“난 이 차부터 수리 맡겨야 할 것 같으니까 자네 먼저 가.”

장춘자 계장은 그러면서 또 택시비를 줬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바로 받았다.

택시 안에서 나는 놈들과의 격투를 떠올렸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속 시원하게 짚어 낼 수 없어 기억을 몇 번이고 되돌려 그 장면을 보고 또 봤다.

“아!”

여러 번 그러다가 결국 알아냈다.

나를 공격하기 위해 스타렉스에서 줄줄이 사내들이 내릴 때 한 명은 꼼짝도 하지 않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스쳐 지나간 데다가 워낙 정신없는 상황이라 그땐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 남자가 바로 덤프트럭 기사였고, 편의점 앞에서 날 노려보던 놈이었다.

확실했다.

눈빛이 같았다!

뭐지?

그러면 내가 당했던 사고도 다 관련 있는 건가?

김가훈의 입을 막으려 했던 놈들이 바로 조부현까지 죽였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소름이 쫙 돋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얽혀 있는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 신세가 되어 필사적으로 상황 파악을 해 보려 애썼다.

그럴수록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워낙 생각에 몰두해서 그런지 집까지 금세 도착했다.

나는 요금을 내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집으로 들어간 순간, 싸늘한 기운을 느끼고 현관에서 멈춰 섰다.

침입자가 있다!

집안 모습이 내가 나가기 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정교하게 뒤지고 사라졌지만 내 눈, 아니 내 기억력은 속일 수 없었다.

나는 사라진 게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다행히 그런 건 없었다.

나는 애초에 기록 같은 걸 남기지 않으니까 설령 누군가가 뒤졌다고 해도 별다른 수확이 없었으리라.

이번에는 반대로 도청기 같은 게 있는지를 살폈다.

그것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밖으로 나가 장춘자 계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뭔 일 있어?”

장춘자 계장은 전화를 받자마자 대번에 그렇게 물었다.

“실은…….”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사라진 것도 없고, 도청기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거지?”

장춘자 계장이 확인하듯 물었다.

“네. 꼼꼼하게 뒤졌지만 없었습니다.”

“그렇다며 한 가지야.”

“뭐가요?”

“경고를 보낸 거지.”

“경고라면…….”

“우리가 네 집을 알고 있고, 언제든 침입할 수 있다. 그러니 까불지 말라, 뭐 이런 뜻의 경고.”

“그러니까 겁먹게 만들겠다는 거네요.”

“겁먹었나?”

“아닙니다.”

“그럼 됐어. 대신에 오늘 하룻밤은 어디 다른 데 가서 자. 혹시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알겠다고는 했지만 모텔 말고는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어제 인사드렸던 한대봉입니다.”

“아! 어쩐 일로…….”

“장 계장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우리 수사관님께 하룻밤만 숙식 제공을 좀 해 드리라고.”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하면 됩니다.”

“어허. 그러지 마시고 홍대에 있는 호텔에 룸 하나 예약해 드릴 테니까 거기서 주무시죠. 제 체면도 있고, 형님 부탁도 있고 하니까 사양하지 마시고. 허허.”

“알겠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조폭에게 도움받는다는 게 아직은 좀 꺼림칙했다.

그럼에도 알겠다고 한 건 장춘자 계장의 선의가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메시지로 호텔 이름과 룸 번호가 날아왔다.

그걸 보며 속전속결이구나, 싶었다.

호텔은 홍대 중심 도로 한가운데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고 화려했다.

나는 집에서 챙겨나온 갈아입을 옷이 든 가방을 들고 호텔을 향해 걸었다.

그때였다.

저만치 앞에서 수십 명의 인파가 잔뜩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게 보였다.

연예인이라도 왔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봤다.

그 순간 인파 사이에서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윤동우 의원님!”

“윤 의원님. 여기 좀 봐주세요!”

“윤동우 의원님 팬이에요!”

윤동우라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유소영 의원이 죽은 후로 그 인기를 그대로 물려받은 또 다른 젊은 정치인.

현재 윤동우 의원은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홍대에 몰린 젊은 사람들 반응만 봐도 그가 얼마나 ‘핫’한지 알 수 있었다.

“비켜주세요.”

“비키세요. 의원님 지나가시게 좀 비키세요!”

윤동우의 보디가드로 보이는 덩치 몇 명이 인파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고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세게 밀쳤다.

“아!”

여고생은 그대로 주저앉아 무릎을 감싸 쥐고 일어나지 못했다.

“괜찮아?”

나는 여고생에게 달려가 물었다.

그 아이의 무릎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파요.”

아이는 울먹거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방금 여고생을 밀친 보디가드를 불렀다.

“저기요!”

내 목소리가 워낙 컸는지 사람들이 죄다 돌아본 건 물론이고 보드가드도 고개를 돌렸다.

“뭐요?”

“사람을 넘어뜨리고 사과도 안 합니까?”

“아니, 내가 비키라고 했잖아요!”

“더 조심해서 대해야죠! 이렇게 인파가 몰릴 걸 알았다면 아예 오질 말던가.”

“뭐? 너 뭐라고 했어?”

보디가드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때였다.

“아! 이런 정말 죄송합니다.”

한 남자가 나와 보디가드 사이로 불쑥 끼어들었다.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다.

바로 윤동우 의원이었다.

그는 내 뒤쪽에 주저앉아 있는 여고생에게 물었다.

“학생 분. 많이 다쳤습니까?”

“무릎이 까져서…….”

여고생은 모기 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봐요.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저 여학생 빨리 병원으로 옮기세요.”

윤동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게 눈을 부라리던 보디가드가 여고생에게로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윤동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미소를 지은 채.

“의원님의 빠른 대처 감사합니다.”

내가 말했다.

“아! 오히려 좋은 지적을 해주셔서 제가 감사하네요.”

윤동우가 말했다.

“최고 인기 있는 국회의원님이시니까요, 그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네. 제가 경솔했네요. 지금부터는 차로 이동하겠습니다.”

“뭐야? 재수 없게! 의원님 저랑 사진 찍어주세요!”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툭 밀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다시 윤동우를 에워쌌다.

나는 그들에 밀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윤동우는 인파 사이로 나를 보고는 씩 웃었다.

많은 게 담긴 웃음이었고, 나는 거기에서 경멸을 읽어냈다.

내 방은 호텔 건물 17층에 있었다.

방으로 올라와 창밖을 내려다보니 윤동우는 여전히 걸어서 이동 중이었다.

“재수 없는 놈.”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유소영의 죽음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은 윤동우가 틀림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주했다고 단정 짓긴 어려웠다.

윤동우는 청렴하고 깨끗한 이미지, 그리고 자수성가의 전형으로 인기를 얻게 됐다.

그가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기는 보육원 출신이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며 울면서 고백했을 때 그야말로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의 반응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윤동우는 곱게 자란 재벌 2세 같았고, 실제로도 IT 기업의 CEO로 승승장구하다가 정계에 입문했기에 누구도 그의 어두운 과거를 짐작하지 못했다.

그 방송이 나간 이후 윤동우가 그동안 기부했던 내역이 공개됐고, 주로 보육원에 거액을 전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또 한 번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그런 사람이 굳이 구린 일에 연루될 필요가 있었을까?

이것이 내 섣부른 일반화였다는 건 얼마 안 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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