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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뜻밖의 체포

by 최길성
모든 걸 아는 남자(브런치 축소).png

별다른 일 없이 일주일이 흘렀다.

그사이 나도 장춘자 계장 스타일에 조금은 적응했다.

그는 즉흥적인 듯하면서도 무척 계획적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보여도 그게 다 필요한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장춘자 계장은 정말로 정보에 있어서만은 양보가 없었다.

꼭 필요한 정보는 자기 돈을 써서라도 기꺼이 얻어내는 게 바로 장춘자 계장이었다.

한 번은 내가 물었다.

“계장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계장님은 목표가 뭡니까?”

“목표?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아뇨. 이렇게 많은 정보를 모아서 뭘 하시려는지 그게 궁금해서…….”

“말했잖아. 나쁜 놈들 싹 다 잡아넣을 거라고.”

“그게 현실적이진 않잖아요. 모두 다 잡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거길 노리는 거잖아.”

“그림자 조직이요?”

“맞아. 그것들이 이 사회를 좀먹는 놈들이거든.”

투철한 사명감과는 달리 장춘자 계장은 그 일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근래 며칠 동안은 형우그룹의 정보를 주로 캐고 있었다.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장춘자 계장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기 바빴다.

“오늘은 파티에 갈 거야.”

대체로 일방적인 통보여서 당황하는 일이 적었지만, 파티라는 건 경우가 달랐다.

나는 후줄근한 재킷 차림 그대로 장춘자 계장에게 물었다.

“파티라니, 무슨 파티요?”

“재계 인사들 중에서 젊은 부자끼리만 모여서 인적 교류 쌓는 파티가 있어. 말이 인적 교류지 사실상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드는 거지. 거기 가면 재벌 2세 3세들이 죄다 모여 있거든. 연예인도 많이 와.”

“그런 파티는 보통 초청장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초청장은 있어. 내 것도, 자네 것도.”

“너무 부담스러운데…… 가서 전 뭘 하면 됩니까?”

“그냥 마음껏 먹어. 거기 음식이 기가 막히거든!”

장춘자 계장은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팔자에도 없는 재벌 파티에 참석하게 됐다.

호텔 직원은 우리 행색과 초대장을 번갈아 보며 몇 번이나 확인했다.

점퍼 차림의 장춘자 계장과 구겨진 재킷을 입은 나는 어떻게 봐도 파티와 어울리지는 않았으니까.

“문제 있습니까?”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아, 아뇨. 입장하십시오.”

우리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싶었는데 무대에서 라이브로 연주 중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들이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채로 파티장을 거닐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많았다.

“계장님. 우린…….”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봤는데 장춘자 계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는 근처를 살피며 장춘자 계장을 찾았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아니면 목적이 있어 어딘가로 간 건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 멀뚱히 서 있는 게 더 주목받을 것 같아서 탄산수 하나를 챙겨 들고 기둥 옆에 기대섰다.

그러고는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하며 장춘자 계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척 보기에도 비쌀 게 틀림없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재롱떠는 치와와처럼 젊은 남자 두 명이 붙어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일단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어디서 오셨을까요?”

여자가 물었다.

“아! 저는 그러니까 그게…….”

이 자리에서 검찰 수사관이라고 밝히는 건 곤란했다.

그렇다고 마땅하게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제가 맞춰볼게요. 태산건설 쪽이죠? 거기 후계자가 유학 끝내고 들어왔단 이야기 들었거든요. 맞죠?”

“아…… 태산은 아니고 실은 범정이라고…….”

“범정? 범정물산? 아니면 범정해운? 둘 다 처음 듣는데……. 아무튼 무척 개성 있게 입고 오셔서 인사드렸어요. 이게 요즘 유행하는 서민룩인 거죠?”

“네? 서민룩이요?”

“하여간 서민들 자격지심 하난 알아줘야 하잖아요. 우리가 우리 돈으로 비싼 거 입겠다는데 자기들이 뭔 상관인지. 그래도 나중에 정계 진출까지 염두에 두는 사람은 서민처럼 입고다니더라고요. 그쪽처럼.”

“하하. 그래 보이나요?”

“그게 아니고 진짜 서민 아냐?”

두 마리 치와와 중 오른쪽 치와와가 물었다.

“에이. 그러면 여길 어떻게 들어와?”

왼쪽 치와와가 한 말이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 월급 받는 공무원이에요. 그것도 7급이라 한 달 월급 다 보태도 그쪽 분들 입고 있는 속옷 한 장 못 살 겁니다.”

내 말에 셋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다음 순간 오른쪽 치와와가 또 물었다.

“공무원이 왜 이 자리에 온 거야?”

“아! 그건 공무 집행할 게 좀 있어서…….”

그렇게 둘러댄 내 말은 거짓이 아니게 되었다.

장춘자 계장의 목소리가 곧바로 울려 퍼졌기 때문에.

“저 새끼 잡아!”

나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춘자 계장이 정장 차림의 남자를 뒤쫓고 있었다.

남자는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도망쳤다.

“뭐야?”

“아!”

사람들 이목이 추격전에 쏠렸다.

나는 세 명의 재수 없는 것들에게서 벗어나 추격전에 합류했다.

남자가 거의 파티장을 빠져나가려 할 때쯤 내가 몸을 날려 놈을 덮쳤다.

그 바람에 음식 테이블이 쓰러졌다.

“놔! 놓으라고!”

내 밑에 깔린 남자가 발버둥쳤다.

나는 그럴수록 양쪽 허벅지로 남자의 옆구리를 누른 채 놔주지 않았다.

“잘했어! 그대로 잡고 있어.”

어느새 달려온 장춘자 계장이 내게 말했다.

“계장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내가 물었다.

“이놈이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어. 저쪽 방에 가면 헤롱거리는 것들 단체로 있으니까 내가 지원 요청하지. 그 새낀 체포해.”

“알겠습니다.”

나는 남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미집자가 아닌 인간을 체포하는 건 처음이었다.

곧 경찰이 출동해 마약한 인간들을 줄줄이 잡아갔다.

모두 부잣집 자식이거나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장춘자 계장에게 물었다.

“왜 미리 말씀 안 해주셨습니까?”

“나도 몰랐어.”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돌아왔다.

“네? 천하의 장춘자가 모르는 것도 있습니까? 근데 어떻게 잡은 겁니까?”

“여기 온 건 정보원과 접촉하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정보원은 안 보이고 수상한 방에 수상한 것들끼리 모여 있는 거야. 그래서 감이 팍 왔지.”

“하여간 대단하시네요. 뒷걸음질 쳐도 쥐를 잡을 정도니.”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쥐 정도가 아니지. 고위층 마약 사건은 검사도 언제나 환영하는 거니까.”

“그럼 개라고 해둘게요.”

우리가 그런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 제복 경찰 한 명이 황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지?”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저 그게…… 안으로 한 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체가 발견됐거든요.”

제복 경찰관이 말했다.

“시체?”

장춘자 계장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달려갔다.

나도 뒤를 따랐다.

사람들이 모여 마약 파티를 벌였던 별실 안에는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시체는 거기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등에 칼이 꽂힌 거로 봐서 명백한 살인이었다.

“계장님. 혹시 이 사람이?”

“맞아. 오늘 만나기로 한 정보원이야.”

“사건이 꼬이네요.”

내 말에 장춘자 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우그룹과 관련해서 알려줄 게 있다며 초대장까지 준 녀석인데…….”

“누굽니까? 이 사람.”

내가 물었다.

“형우그룹 부사장의 비서실 직원이야. 그 부사장 아들이 오늘 파티에 참석했거든.”

“형우그룹 부사장이라면 이방선 말이죠?”

“그래. 구린내가 진동하는 놈이지.”

“어쩌면…….”

“쉿! 여기서 나가면 이야기하지. 그리고 이 친구와 난 모르는 사이야. 알겠지?”

“네.”

냉정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장춘자 계장을 보며 나는 서늘함을 느꼈다.

제공할 정보가 있으면 장춘자 계장의 환대를 받는다.

반대로 정보원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면 장춘자 계장은 뒤도 보지 않고 돌아선다.

그건 효율적인 일 처리일까, 아니면 비정한 처사일까?

나는 그 의문에 섣불리 답을 낼 수 없었다.

다음 날, 인터넷에는 재벌 자녀들의 마약 파티 사건이 제일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걸 누가 잡았는지 같은 건 언급되지도 않았다.

연예인 누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추측하는 댓글만 기사 밑에 잔뜩 달렸다.

죽은 사람 관련해서도 기사는 한 건 정도만 나왔다.

듣기로는 죽은 그 비서실 직원은 부검이 진행되는 중에 시체도 없이 장례를 치른다고 했다.

장춘자 계장과 나는 그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춘자 계장은 평소와 달리 검은색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있었다.

내가 그걸 빤히 보자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경사에는 아무렇게나 입고 가도 조사에는 그러면 안 되지.”

다행히 나도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장례식장은 휑했다.

형우그룹 직원인데도 화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른 시간임을 고려해도 조문객 역시 몇 명 없었다.

아내와 어른 아들만이 영정 사진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우리는 차례로 절을 한 후 가족에게도 조의를 표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가 파리한 표정으로 말했다.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훌륭한 친구였습니다.”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남편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신지…….”

“제가 몇 번이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유족의 억울함은 꼭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서 장춘자 계장은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나도 꾸벅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밥도 먹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어느새 수리를 마친 장춘자 계장의 SUV에 올랐다.

“범은은 누굴까요?”

내가 물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형우그룹 내부자 소행이겠지.”

장춘자 계장이 대답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잡아야지.”

“무슨 수로 잡을까요? 용의자를 추려내는 것도 힘든데.”

“자네가 도와줘야 해.”

“네? 제가요?”

“그날을 떠올려봐. 범인은 마약 파티가 벌어지기 전에 그 친구를 찌르고 도망쳤어. 그 과정에서 결코 자연스럽게 행동하진 못했을 거야. 자네가 본 것 중 그런 장면이 떠오른다면 말해줘.”

“음. 좋은 생각이네요.”

그러니까 결국 나를 CCTV로 쓰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그것도 생각하는 CCTV.

나는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기억을 되짚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조용히 눕거나 앉아서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혼자 있는 게 낫지? 그럼 퇴근해.”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퍼뜩 뭔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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