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우리는 SUV에 탄 채로 형우그룹 본사 건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춘자 계장은 건물 입구 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설명을 이어갔다.
“오근수를 쫓으려 했는데, 놈이 둘이더라고. 완전히 똑같이 생긴 놈 둘이 각자 다른 차를 타고 달리는 거야. 순간 천하의 나도 당황해서 어리바리하다가 둘 다 놓치고 말았어.”
“둘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쌍둥이라는 소리야. 오근수는 얼굴은 물론이고 체격마다 똑같은 동생이 있어. 쌍둥이 동생. 그 새끼가 일부러 혼란을 주고 있는 것 같아.”
“처음부터 합류하진 않았을 테고…….”
“그래. 신 기자 죽이고 자네 그렇게 된 후로 위기감을 느꼈는지 저런 양아치 짓을 하고 있더라고.”
“그럼 제가 할 일은 뭡니까?”
“관찰, 그리고 기억. 오근수인지 오근수 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 명을 따라갈 거야. 그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고 말투를 쓰는지 그걸 다 기억해서 내게 들려줘. 알았지?”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어! 나온다.”
장춘자 계장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듬직한 덩치에 머리를 박박 민 사각턱의 남자가 건들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미리 받아 본 사진 속 오근수와 똑같았다.
오근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 미리 대기해 있던 세단 뒷좌석에 올랐다.
차는 어디론가로 달려 나갔다.
“쫓으실 건가요?”
내가 다 묻기도 전에 장춘자 계장은 가속페달을 밟았다.
우리는 한동안 세단 뒤를 따랐다.
장춘자 계장은 미행의 정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멀찌감치 떨어져 달리면서도 절대 신호에서 놓치는 법은 없었다.
나처럼 무턱대고 따라가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이게 바로 능숙한 미행이군요.”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미행의 기본이 뭔지 알아?”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뭡니까?”
“목표물과 같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그러자면 한발 먼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해.”
“미리 말씀 해주셨으면…….”
“잠깐! 저것들 선다.”
앞쪽 세단이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고 끝 차선까지 들어갔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내가 물었다.
“자네가 한 번 예측해 봐.”
나는 머리에 새겨진 기억을 더듬었다. 1차선에서 끝 차선까지 갑자기 바꿀 정도로 급한 일이라면…….
“주유소…… 아니, 저기 서 있는 음식점으로 갈 것 같습니다.”
몇백 미터 앞 인도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중식당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제법이네. 나도 같은 생각.”
장춘자 계장도 SUV를 끝 차선까지 밀어 넣어 세단보다 먼저 중식당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세단도 따라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기쁨에 차 목소리를 높였다.
장춘자 계장은 먼저 주차한 후 오근수 일행이 차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오근수와 부하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중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내리자.”
우리는 서둘러 내려 식당으로 향했다.
장춘자 계장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여기 더럽게 비싼 곳인데.”
장춘자 계장과 나는 오근수 일행이 비스듬히 보이는 위치에 앉았다.
비싸다는 중식당에는 다행히 사람이 많았다.
장춘자 계장이 등을 돌린 채 앉은 한, 들킬 염려는 없어 보였다.
대신에 나는 오근수를 마음껏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실제 오근수를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게 없었지만 일단 보이는 대로 다 기억하기로 했다.
놈은 고급 요리를 잔뜩 시켜놓고 이것저것 먹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요리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지금 버전의 오근수는 오른손잡이에 젓가락질이 조금 서툴렀고, 굉장히 쩝쩝거리며 먹었다.
입안에 음식이 가득한데 웃기도 해서 음식물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때?”
맞은편에 앉은 장춘자 계장이 조용히 물었다.
“굉장히 비호감인데요.”
“아…… 그러면 오근수 이사일 확률이 높은데.”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게 있습니다.”
“뭔데?”
“해산물 음식이 전혀 없어요.”
“응?”
“탕수육에, 고기 튀김에, 동파육에, 거기다가 식사류도 짜장면이에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중식당에 오면 하나 정도는 해산물 들어간 걸 시키기 마련인데. 하다못해 국물 있는 짬뽕이라도 먹지 않습니까?”
“잠깐. 자네, 내가 준 오근수 이사 프로필 기억하지?”
“네. 똑똑히 기억합니다.”
“거기에 관련해서 적힌 게 있었나?”
“물론입니다. 그래서 해산물 말씀을 드린 거죠.”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봐.”
“오근수는 지독한 해산물, 특히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 자칫 잘못 먹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저놈이 맞는 거잖아.”
“그렇죠.”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춘자 계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케도 자기 몫의 짬뽕은 이미 다 비운 뒤였다.
“어, 어떻게 하시려고?”
당황해서 묻자 장춘자 계장은 화장지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잘했어. 이젠 내 차례야.”
그는 몸을 돌려 오근수 자리로 곧장 걸어갔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오근수도 장춘자 계장을 발견하고는 움찔했다.
수행원도 마찬가지였다.
장춘자 계장은 4인용 식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며 말했다.
“오근수 이사님.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다 쓰셨더라고.”
“식당에서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수행원이 말했지만 장춘자 계장은 당연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할까요, 아니면 날 따로 오실래요?”
“영장 있습니까?”
오근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이구! 영장 같은 무서운 소리는 왜 나옵니까? 그야말로 잠시 대화 나누는 건데.”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때였다.
장춘자 계장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엉거주춤 중간에 서 있던 나는 장춘자 계장 옆으로 다가갔다.
그는 비어 있는 오근수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는 거기 앉아. 몸도 성치 않은데.”
순간 오근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가 누구인지 인지한 게 틀림없었다.
“이게 뭐 하는 상황인지 설명 좀 해주시죠. 계장님.”
오근수는 나름 형형한 눈빛을 뽐내며 장춘자 계장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 거에 주눅 들 양반이 아니었다, 장춘자 계장은.
“아니, 내가 없는 사이에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파트너가 거의 죽을 뻔했더라고. 저 친구 지금도 옆구리에 구멍이 이렇게 뚫려서 걸을 때마다 바람 새는 소리가 난다니까! 이런 상황인데……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장춘자 계장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가 진짜로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오근수는 눈치가 빨랐다.
“그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희 쪽 애새끼 둘이 아무것도 모르고…….”
“음. 그 말은 신문수 기자 살인도 인정하는 거다, 그렇죠?”
“네? 아니 그건 아니고…….”
“좋아요, 좋아. 지금 난 내 파트너 조진 두 녀석을 잡는 게 우선이니까 그것들 어디 있는지 그것부터 불어.”
오근수는 난처한 표정으로 장춘자 계장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수행원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수행원이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그 손을 장춘자 계장이 덥석 잡았다.
“동작 그만! 지금부터 내가 불러주는 대로 메시지 보냅니다. 알겠어요?”
“네네!”
수행원은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오근수는 멍게라도 씹은 표정이었고.
“이사님이 너희 둘 다 불었어. 다 뒤집어쓰기 싫으면 빨리 여기로 전화해.”
장춘자 계장은 그렇게 말한 후 자기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그러고는 유유히 일어나 나와 함께 식당 밖으로 향했다.
오근수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우리 것도 같이 계산해 줘.”
차로 돌아온 우리는 두 놈이 연락해 오길 기다렸다.
“과연 전화할까요?”
내가 물었다.
“할 거야. 안 그러면 자기 인생 끝난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을 하는데 장춘자 계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양반은 못 되네요.”
장춘자 계장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스피커 모드로 바꿨다.
“여, 여보세요?”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내 기억 속 목소리로는 셔츠였다.
“너희야? 실안 한 건에 특수 폭행 한 건 일으킨 애송이들이?”
장춘자 계장이 괄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런데 누구세요?”
이번에는 재킷이었다.
둘은 함께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 난 너희 둘 목줄을 틀어주고 있는 사람. 너희가 죽인 사람은 사회부 기자, 그리고 공격한 사람은 검찰 수사관이라는 건 알지?”
“네.”
셔츠와 재킷이 동시에 모기 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사건을 저지르고 경찰 손에 넘어가면 너흰 아주 그냥 인생 종 치는 거야. 안 이사도 너희 둘을 버린 마당에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정말입니까? 안 이사님은 그럴 분이 아닌데…….”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럴 분이 아니라고?”
장춘자 계장이 그렇게 묻자 두 놈 중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좋아. 이렇게 하지. 둘 중에 한 놈만 내가 도와줄 거야. 경찰이 손 못 대도록 해주겠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네네!”
이번에도 재킷과 셔츠가 동시에 대답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서로 경쟁하는 거야. 알았지?”
“뭘…… 하면 됩니까?”
셔츠가 물었다.
“이방선 부회장이 가끔 들른다는 보육원이 있어. 거기가 어딘지 먼저 알아내서 보고하는 놈만 살려준다.”
“네? 그, 그건 저희 같은 말단은 절대 모르는 건데…….”
재킷의 목소리에 난감함이 묻어났다.
“지금부터 24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무슨 수를 쓰든 먼저 알아 오는 쪽은 내가 자유와 광명을 약속하지. 물론 내 파트너는 불만이겠지만.”
“알겠습니다!”
셔츠가 먼저 외쳤고, 뒤이어 재킷도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보고하겠습니다!”
“아주 좋은 자세야. 그러면 몸조심하고. 참! 안 이사 연락은 절대 받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너희 둘 해치우려고 혈안이 돼 있으니까.”
통화는 끝났다.
내가 장춘자 계장에게 물었다.
“두 놈이 시키는 대로 할까요?”
“할 거야. 인간을 부리는 데 제일 좋은 거 두 가지가 공포와 희망이거든. 그걸 동시에 주면 아무리 굳은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도 혹해서 넘어오지.”
“잔인한 방법이네요.”
“실은 더 잔인한 방법을 쓰려고 했어. 보육원 덕분에 마음을 돌린 거지.”
장춘자 계장은 어딘지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두 놈 옆구리에 구멍이라도 내려던 게 아닌가 싶어 괜히 섬뜩했다.
“이제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냥 기다리면 심심하니까 다른 데 잠시 다녀올까?”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어디로…….”
“지리산.”
“네? 지리산이요? 전 이 몸으로 산은 못 탈 것 같은데.”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양반도 움직이는 거 싫어해서 지리산 입구에 지내니까.”
“그런데 누굴 만나기에 지리산까지 가는 겁니까?”
“도사.”
“네?”
“지리산 윤 도사를 만나러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