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일주일을 입원하고 퇴원했다.
퇴원은 했지만 움직이는 건 여전히 불편했다.
그렇다고 마냥 쉴 수만은 없었다.
나는 장춘자 계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 후 하루가 지나서 출근했다.
“아니,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뭐 어쩌자는 거야?”
장춘자 계장은 나를 보자마자 혀를 찼다.
“괜찮습니다. 움직일 만합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그러면 이 기회에 서류 업무 좀 해.”
“네? 그런 건 할 필요 없다고 하셨잖습니까?”
“나 대신 밀린 보고서 좀 쓰란 말이야.”
“그동안 써야 하는 걸 안 쓰고 계셨던 겁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서 목소리를 높여 묻고 말았다.
“그래. 뭘 써야 하는지는 구 차장 비서 이도연이 알려줄 거야. 그러니까 꼼짝 말고 앉아서 키보드나 좀 두드리라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범정에 와 처음으로 내근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장춘자 계장은 문서 작업이 산더미처럼 쌓인 듯 말했지만 사실 별로 없었다.
그냥 지금 조사 중인 사안을 입력하면 되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장춘자 계장이 미리 가이드 라인을 줘서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장춘자 계장은 무릇 범정 수사관이라면 핵심 정보는 내부에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정보는 곧 힘이고 재산이고 능력이야. 그걸 자랑하다 보면 꼭 밖으로 새는 경우가 생겨. 그러니까 보고서에는 일부분만 쓰면 돼.”
즉, 이런 말이었다.
우리, 정확히 말하자면 장춘자 계장의 최종 목표는 그림자 조직이지만 눈치 없이 그걸 그대로 보고할 필요는 없다는 뜻.
그래서 나는 사실은 사실이되 그걸 조금 축소해서 적었다.
불법 정치 자금의 흐름을 쫓고 있다는 식으로.
보고서에는 형우그룹이라는 단어는 물론이고 자금 흐름 같은 것도 다 빠졌지만 어쨌든 상관없었다.
그것도 사실이긴 하니까.
내근을 하니 점심도 구내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불편한 몸을 끌고 굳이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다 싶었다.
나는 막 식판에 음식을 받아와서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때 맞은편 의자에 누군가가 앉으며 말했다.
“같이 먹어도 괜찮죠?”
이도연이었다.
“아! 네네.”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도연은 장춘자 계장의 말처럼 이것저것 친절하게 잘 설명해 줬다.
“몸은 좀 어때요?”
이도연이 물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현재 하는 일은 구 차장 비서, 거기에 미혼.
하나를 더하자면 꽤 예쁘다는 사실 정도?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뭐. 하하.”
“다행이네요.”
이도연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그 후로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최선을 다해 밥만 먹었다.
그러고 있을 때 이도연이 다시 물었다.
“장 계장님과 같이 다니는 건 어때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떠냐는 건 힘들지 않냐고 묻는 겁니까?”
내가 되묻자 이도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빨리 말했다.
“아!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재미있지 않냐고 묻는 거였어요.”
“재미라면…… 수시로 죽을 뻔하는 재미 정도?”
“네?”
이도연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다가 이내 농담인 걸 알고는 소리 내 웃었다.
“하하. 미안해요. 힘들 텐데 웃어 버려서.”
“아닙니다. 실제로 꽤 재미있습니다. 장 계장님과 다니는 건.”
“그럴 것 같아요. 실은 저도 수사관님들처럼 현장에서 일해 보고 싶거든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내가 물었다.
이도연은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구 차장님 시중드는 것보다는.”
“네?”
뜻밖의 대답에 이번엔 내가 웃고 말았다.
“구 차장님이 좀 까다로우신가요?”
“사실 그런 건 아닌데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은 건 사실이에요. 아시잖아요. 검사 스타일. 제때 딱 맞춰서 대령해 놓아야 만족한다는 거.”
“그렇기는 하죠.”
“게다가 이런 일은 정해진 루틴이 있잖아요. 그래서 편하긴 한데 가끔은 일탈도 하고 싶은 거죠. 자유롭게.”
“잘못 일탈했다가는 제 꼴 납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도연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편했다.
“그런데 장 계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전설적인 인물인 건 아는데 실제로는 어떤지 궁금해요. 카리스마 넘치고 그러신가요?”
“확실히 대단한 분이긴 하죠. 하지만 카리스마로 똘똘 뭉쳤다기보다는 친근하고 약간 동네 아저씨 같다고 할까? 아무튼 그런 분이세요.”
“오! 새로운 면이네요. 재미있다. 기록과는 상당히 다르네요.”
“기록이요?”
이도연이 무심결에 한 말이 내 귀에 쏙 들어왔다.
“네. 기록이요.”
“무슨 기록을 말씀하시는지…….”
“아! 모르셨구나. 범정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면 각 수사관의 이전 기록을 확인할 수 있어요. 어디까지나 정보 수집 용도로 모아놓은 것 같아요.”
“그렇군요. 다 드셨으면 일어날까요?”
나는 이도연을 향해 말했다.
어느새 그녀 식판도 비워진 상태였다.
“네. 다 먹었어요.”
이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식판까지 챙겨 들었다.
“아! 괘, 괜찮습니다.”
“특별 서비스!”
이도연은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걸어갔다.
범정 데이터베이스라…….
점심시간 이후로 나는 계속 같은 생각만 했다.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 장춘자 계장의 기록을 볼까 말까.
거기에는 어쩌면 장춘자 계장의 전 파트너에 관해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걸 확인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는지 하는 것이었다.
자칫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거라면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문의 존재가 내게 보내준 그 영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내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장춘자 계장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그가 꼭꼭 숨기고 있으니.
그렇게 감추는 걸 굳이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감추고 있기에 더욱 실체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날렵한 인상에 탄탄한 체격, 그리고 매서운 눈매까지 전형적인 검찰 수사관의 모습을 한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그가 범정 선배 수사관인 건 분명했기에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새로 들어온 신기탄 수사관이지? 장 계장 파트너.”
그 남자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무슨 의도로 접근했는지 궁금했다.
“반가워. 나는 조희철이라고 해. 범정에서는 장 계장 다음으로 오래 일했지.”
“네. 반갑습니다.”
나는 조희철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그러면서도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조희철은 장춘자 계장과 비교하면 한참 나이가 어릴 것 같았지만 존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지점에서부터 이미 반감이 일었다.
언젠가 장춘자 계장이 했던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범정 안에서도 말이야, 날 못 잡아 먹어 안달인 녀석들이 많거든. 흐흐.”
조희철도 그런 ‘녀석’ 중 한 명이 아닌가 짐작하며 나는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렸다.
“장 계장은 요즘도 여전하지?”
조희철은 씩 웃으며 물었다.
“여전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는 알 것 같았지만 굳이 한 번 짚고 넘어갔다.
“옛날 방식 고수하는 거 말이야. 발이 닿도록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기웃대면서 아무 정보나 물어오는 거.”
“네. 그렇게 하십니다.”
그건 그것대로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조희철이라는 인간 자체가 점점 싫어지고 있었다.
“그게 바로 늙은 사냥개가 살아남는 방식이거든. 요즘처럼 스마트한 시대에 말이야, 옛날 방식만 고수하다가는 도태되기 십상이지. 아니다. 아예 잡아먹힐지도 모르지. 토사구팽. 뭔지 알지?”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참으며 물었다.
“누가 잡아먹는다는 겁니까?”
“어허. 뭘 모르네. 그 양반 적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장 계장이 틀어쥐고 있는 정보만 없다면 애초에 이 바닥에서 사라졌어. 지금도 그 양반이 실수하기만을 노리는 놈들이 한 트럭은 될걸? 장 계장도 그걸 아니까 자넬 파트너로 삼은 거고.”
이건 또 무슨 신선한 개소리야?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또 물었다.
“그것과 제가 파트너가 된 게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역시 모르는구나. 방패막이! 총알받이! 그 양반은 그게 필요한 거야! 자네 옆구리에 칼침 맞았다며? 장 계장 파트너가 아니었으면 그런 일 생겼겠어? 범정은 말이야,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조직이 아니야. 각자도생이지, 각자도생. 철저히 개인 플레이를 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죽어라 자기 일만 해오니까 우리 범정이 국정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거야.”
“무슨 의도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의도? 다 자넬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빨리 장 계장 그늘에서 벗어나. 늙은 사냥개 옆에 있으면 오줌 맞는 거 말고 다른 게 뭐 있겠어? 안 그래?”
조희철은 그런 식으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졌다.
나는 그의 등을 노려봤다.
그러면서 마음을 굳혔다.
데이터베이스 같은 건 들여다보지 않기로.
장춘자 계장은 퇴근 시간쯤 나를 찾아왔다.
“어때? 내근은 할 만했어?”
그는 싱글거리며 물었다.
“따분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내일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갈 겁니다.”
“자네 참 요령 없네. 따분할 틈이 어디 있어? 휴게실에서 슬쩍 잠 좀 자고, 간식도 먹고 하면 시간 금방 갈 텐데.”
“그러게요. 그런데 왜 다시 들어오셨어요?”
“자네 집까지는 태워줘야 할 거 아냐.”
“오! 감동 포인트.”
“감동은 무슨. 내일부터 자네 또 열심히 부려 먹으려고 하는 거니까 괜히 감동하고 혼자서 이상한 상상하고 그러면 안 돼.”
장춘자 계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러면 내일은 저도 데리고 가시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응. 자네가 필요한 일이 생겼거든.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기억력이 필요한 일이지.”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뭐든 좋으니까 같이 가시죠.”
“알았어. 일단 집으로 가지.”
“네.”
나는 주차장으로 향한 뒤 장춘자 계장의 SUV 조수석에 올랐다.
익숙한 자리였다.
마음이 편했다.
“똥파리 안 꼬였어?”
장춘자 계장은 주차장을 빠져나가자마자 내게 물었다.
“똥파리라면…….”
“이때다 싶어서 너한테 접근한 놈이 한둘이 아닐 텐데. 흐흐.”
역시, 장춘자 계장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맞아요.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중 왕똥파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조희철 수사관?”
“어? 그것까지 어떻게 아세요?”
“예전에 그 친구가 날 엄청 따라다녔거든. 일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네? 그럴 인간으론 안 보이던데……. 근데 왜 안 가르쳐 주셨어요?”
“그 친구 눈빛이 맘에 안 들었거든. 뭐라고 할까…… 언젠가 배신할 눈빛이라고나 할까?”
장춘자 계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동영상 속 장춘자 계장 모습이 또 떠올랐다.
나는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혹시 동료에게 배신당했던 적이라도 있습니까?”
“있지.”
장춘자 계장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곤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서 그 녀석은 없는 존재가 됐고.”
그 말투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늙은 사냥개의 엄니는 아직 살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