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도사를 찾아서

by 최길성
모든 걸 아는 남자(브런치 축소).png


이 세상에는 특이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안테나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물론, 장춘자 계장도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람이다.

정보를 모으는 일에 장춘자 계장처럼 진심인 사람도 없고, 그걸 장춘자 계장만큼 잘 활용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나는 윤 도사라는 양반도 만만치 않게 특이한 인물일 거라 짐작했다.

한편으로는 그냥 특이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특이한 인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춘자 계장이 지리산까지 가서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는 아무나 만나서 한담을 나눌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동안 장춘자 계장에게 여러 번 윤 도사가 어떤 인물인지 물었다.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만나 보면 알 거야.”

결국 나는 묻기를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회복이 덜 돼서 그런지 아직은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했다.

조수석에 앉아 자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악몽을 꿨다.

끔찍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이 등장하는가 하면, 나를 향해 돌진해 오던 덤프트럭도 나왔고, 블랙과의 혈투와 칼에 찔린 순간 같은 것들이 번갈아 가며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끙끙 앓았던 모양이었다.

“이봐. 괜찮아? 일어나 봐!”

장춘자 계장이 툭툭 치며 깨우는 소리에 나는 겨우 눈을 떴다.

“계장님…….”

“많이 안 좋아? 왜 자면서 앓는 소리를 내?”

“제가 그랬어요? 계속 악몽을 꿨거든요.”

“왜? 귀신이라도 나왔어?”

“계장님이 나오셨습니다.”

“이야. 그거 진짜 악몽이겠는데? 허허.”

장춘자 계장은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농담이고, 제가 원래 악몽을 자주 꿉니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잊질 못하니 그게 다 꿈에 등장하더라고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완전기억력이라는 그거, 확실히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네.”

“그렇다니까요. 참! 그런데 계장님은 제가 이런 능력이 있단 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걸 물었다.

“알았던 게 아니라 짐작했어. 이제 3년 차밖에 안 됐는데 미집자를 이렇게 많이 검거할 정도면 분명 남이 모르는 비결이 있다고 생각했지.”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그래서 절 파트너로 점찍으신 겁니까?”

“뭐, 그런 이유도 있고…… 또 하나는 자네라면 잃은 것 많은 이 싸움에 반대로 잃을 게 없어서 적격이라 생각했지.”

잃을 게 없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었다.

가족은커녕 애인도 없는 난 늘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달려왔다.

애인은 몇 번 사귀려고 해봤고, 사귈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그 만남을 가로막았던 것도 완전기억력이었다.

상대방이 한 사소한 말, 지나가듯 한 행동, 가끔 나오는 실수 같은 걸 나는 절대 잊지 못하고 거듭 떠올렸다.

처음에는 자기가 한 말 하나하나 다 기억해 주는 날 자상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하다가 그게 지나치면 모두 나를 괴물 보듯 했다. 아니면 변태 사이코나.

아무튼, 지금껏 그래 왔기에 난 늘 혼자였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뭐, 지금은 외로울 틈도 없지만.

“아무리 잃을 게 없다지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내 말에 장춘자 계장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했다.

“자네 그렇게 쉽게는 안 죽을 거라고 하더군.”

“누가요?”

“지금 만날 윤 도사가. 하하.”

“그분, 뭐 무당 같은 건가요?”

“아니. 말 그대로 도사야, 도사. 축지법도 쓰고 천리안도 가지고 있고 미래도 훤히 꿰뚫어 보거든!”

이쯤 되자 윤 도사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걸 넘어 약간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어느새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

저 멀리 지리산 국립공원이 보였다.

내비게이션은 우회전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알려줬다.

장춘자 계장은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규모가 제법 큰 사찰이었다.


장춘자 계장은 사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윤 도사라는 분이 스님입니까?”

내 질문에 장춘자 계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인간이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하하. 원래 절에는 온갖 사람이 다 모이는 법이야. 괴짜 천지라고.”

그렇다는 말은 윤 도사 역시 괴짜라는 뜻이었다.

사찰은 평일인데도 꽤 붐볐다.

모두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구경거리라도 있는 건가?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무척 많네요.”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대부분 우리 윤 도사 만나러 온 걸 거야.”

장춘자 계장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보면 안다니까! 하하.”

나는 장춘자 계장을 따라 경내를 가로질렀다.

그러면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분명 겉모습은 사찰, 즉 절인데 스님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위로 흰옷을 차려입은 젊은 남녀가 수십 명은 되었는데, 그들 모두 안내원처럼 굴었다.

내가 신기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때 장춘자 계장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가면 되겠네.”

“어디요?”

장춘자 계장이 가리킨 곳에는 여러 사람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이 사찰에서도 제일 큰 건물로 들어가려는 모양이었다.

“윤 도사는 저기 있을 거야.”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네? 그럼 이 사람 모두 윤 도사인가 하는 그분을 만나러 왔단 건가요?”

나는 황당한 마음에 그렇게 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말했잖아. 도사라고, 도사. 도사를 만나려면 이 정도 수고는 해야지. 안 그래?”

“그럼, 일단 줄을 서야겠네요.”

“어허. 무슨 소리. 잘 봐.”

장춘자 계장은 그렇게 말한 뒤 흰옷 입은 청년 한 명을 불러세웠다.

“무슨 일로 부르시는 것인지요?”

청년이 너무나 정중한 말투로 물었다.

“윤 도사님께 장춘자가 만나고 싶다고 전해주시겠소?”

“네.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 말을 한 뒤 청년은 큰 건물 쪽으로 사라졌다.

“아니, 말투를 꼭 그렇게 사극 톤으로 해야 합니까?”

내가 물으니 장춘자 계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냥 장단 맞춰주는 거지.”

잠시 후 그 청년이 다시 나타나 우리에게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도사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과연, 이곳에서도 ‘장춘자’ 이름 석 자는 먹혔다.

장춘자 계장은 그야말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우리는 뒤편 통로를 이용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도 역시 여느 사찰과는 달랐다.

불상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그 흔한 탱화 한 점 걸려 있지 않았다.

대신에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건 의미를 알 수 없는 각종 문양과 부적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방이라 부를 수 있는 곳 정면 벽에는 아주 커다란 초상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초상화의 주인공이 윤 도사라는 인물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초상화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그 그림 아래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기 때문에.

윤 도사는 그야말로 도사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은 한데 묶어 늘어뜨렸고, 역시 길게 자란 수염은 에어컨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흰색 개량 한복을 입고 한 손에는 부채까지 들고 있었다.

에어컨이 이렇게 빵빵하게 나오는데 부채라니, 어딘지 어울리지 않았지만 도사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는 한몫하는 게 분명했다.

윤 도사는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떠 우리를 봤다.

그러더니 예상치 못한 말을 쏟아냈다.

“아이고, 춘자 형님. 겁나게 오랜만이네요!”

어쩐지…… 도사치고는 방정맞은 말투였다.

게다가 장춘자 계장보다 한참 나이 들어 보이는데 형님이라니…….

“오! 윤 도사. 안 본 사이에 더 도사 같아졌네.”

장춘자 계장은 웃으며 다가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윤 도사 앞에 앉았다.

두 사람은 나는 안중에도 없이 서로 안부를 묻기에 바빴다.

“아니, 형님은 어째 갈수록 젊어지는 거요? 나랏일 하는 게 역시 적성에 맞나?”

“적성은 무슨. 욕을 하도 먹으니까 젊어지는가 보지. 난 아마 불로장생할 거야. 흐흐.”

“하긴. 나 좀 봐요. 다들 도사님, 도사님 하니까 진짜 더 늙는 기분이라니까!”

“그래도 덕분에 벌이는 좋은 것 같은데?”

장춘자 계장이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어허! 나랏일에 돈 안 따지듯이 중생을 위한 일에도 돈 안 따지는 거 몰라요? 근데 다들 돈을 주고 가니까, 그걸 또 안 받을 이유는 없지. 성의라는 게 있는데! 크크.”

보아하니, 윤 도사는 재밌는 사람, 아니 사기꾼인 것 같았다.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하고 좋겠네, 자네는. 그나저나 여기 인사 나눠. 내 파트너야.”

윤 도사는 그제야 나를 봤다. 그러더니 대뜸 한마디를 했다.

“아이고, 보통 분이 아니네?”

“아! 전 그냥 보통 검찰 수사관입니다. 이름은 신기탄이라고…….”

“가만있어 봐요. 에이. 얼굴에 딱 나와 있는데 뭐. 기구한 팔자라고. 남한테 없는 재주가 있는데,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거! 맞죠?”

뭐야? 이 사람 진짜 신통력이 있는 건가?

나는 벙찐 표정으로 윤 도사와 장춘자 계장을 번갈아 봤다.

그러자 장춘자 계장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윤 도사, 평범한 사람 아니라고.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고 맞추는 거 하난 기막히거든!”

“그러면 혹시 무속인이신가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윤 도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허이! 무속인과 도사는 다르지! 내가 이 산 저 산 다니면서 도력 닦은 지 올해로 30년이 넘었단 말이야. 이제 겨우 축지법 좀 쓸 수 있게 되었다곤 하지만, 어디 무당 나부랭이와 비교하는 건 좀 섭섭하네.”

“추, 축지법이요?”

장춘자 계장이 했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단 건가?

아니, 그것보다 축지법이 가능하긴 한 건가?

순간 나는 혼란스러워져 장춘자 계장을 멍하니 봤다.

그는 내 시선은 무시한 채 윤 도사를 향해 물었다.

“그건 그렇고 요즘도 그쪽 손님 계속 오는 거지?”

“그럼요. 제가 또 단골 관리를 엄청나게 잘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오시죠.”

“그래? 그러면 어디 쓸 만한 정보 좀 줘봐.”

“맨입으로?”

“당연히 아니지! 내가 나중에 여의도 쪽 정보 좀 보내줄 테니까 윤 도사는 형우그룹 얘기 좀 해봐. 거기 부회장 사모가 자네 단골이지?”

“하여간. 도사는 내가 아니라 형님이라니까. 그런 건 또 어떻게 아셨어?”

“그래서 그 여자 요즘 고민이 뭐래?”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나는 그제야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알 것 같았다.

둘은,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장춘자 계장이 굵직한 정보를 주면 윤 도사는 그걸 바탕으로 마치 예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한다.

거기에 혹한 정치인이나 재벌이나 연예인이 내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건 또 장춘자 계장이 얻어 간다.

공생.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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