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 친구가 오지 않았다

우리는 왜, 중요한 날에 서로를 비워두는가

by 이지은

결혼식이 끝난 날,

나는 조용히 드레스를 벗었다.

거울 앞에 선 신부의 얼굴은 환한 대신, 조금 멍해 있었다. 사람들 틈에서 웃고 있었지만, 웃음이 조금씩 헛돌았다.


그제야 정확히 알았다.

— 나, 친구가 없구나.


초대장은 미리 보냈다.

읽지 못했을 리 없는 메시지들.

답장은 대부분 “사정”이었다.


누군가는 몸이 좋지 않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고 했고,

누군가는 회사 일로 주말 출근이 생겼다고 했다.


말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오지 않았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부모님의 지인들,

몇 번 안 본 친척,

그리고 남편 쪽 친구들이었다.

내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외따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경조사를 미뤄도 괜찮은 관계가 되었다.

너무 바빠서, 너무 피곤해서.

그런 말로 모든 서운함을 중화시켜버리는 시기.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그래도 그 애들이 올 줄 알았다.

올 수 없더라도,

‘못 가서 미안해’라는 말이 조금 더 따뜻하길 바랐다.



서운함은 오래 전 주고받던 생일 편지처럼, 차곡차곡 서랍에 쌓였다. 열어보면 먼지가 많지만, 버릴 수는 없다.


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서로의 중요한 날을 외면하게 될까.

바쁘다는 말 하나로, 마음까지 멀어지게 되는 걸까.

아니,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몸만 자꾸 멀어지는 걸까.



의리라는 말은, 늘 남자들 곁에 붙어 있었다.

술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아주는 것,

급한 일이 생기면 한밤중에도 달려가는 것.

그런 행동에는 늘 “남자 의리”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여자들의 우정은 조금 달랐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이해해주고,

오래 연락하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는 관계.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톡방도 조용해지고,

‘조만간 보자’는 말만 남긴 채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뀐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자주 잃었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는 매일같이 얼굴을 봤다.

점심시간엔 엎드려 자는 척하며 귓속말을 주고받고,

창가 자리에 기대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무 이유 없이 만나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지나고,

직장을 다니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삶은 각자의 무게로 가파르게 기울었다.


서운함은 생겼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그때의 ‘우리’가 아직도 조용히 앉아 있다.



어떤 친구는 여전히 SNS에서 나를 좋아요로 기억한다.

어떤 친구는 생일이면 짧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조차 없는 친구도 있다.


문득 그 시절이, 그 사람이 그리워진다.

손톱만큼의 관심에도 웃음이 터졌던 때.

따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었던 시절.


지금은 연락이 끊겼고,

생각날 때만 겨우 이름이 떠오르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계절만은

진심이었다고 믿고 싶다.


멀어졌다고,

다 잊은 건 아니니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지나쳤을 뿐,

그때 못다한 인사들이, 아직 마음속 어딘가에서 천천히 완성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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