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사랑이 잘
단편소설 – 사랑이 잘
서로 뒤엉킨 남녀가, 서로의 몸 구석구석을 혀로 정교하게 핥아 나갔다.
짧은 교성과 함께, 그의 페니스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몸이 내게서 분리되었다.
마치 딱 맞던 퍼즐 조각이, 미세하게 어긋나버린 것 같았다.
“미안해. 오늘 좀 피곤해서.”
그는 옆으로 돌아누웠고, 나는 천장을 바라봤다.
서로의 애무 포인트를 잘 안다는 건,
이제 우리의 섹스가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뜻이었다.
어디를 자극하면 소리를 내는지, 어디쯤 손을 멈춰야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그 모든 걸 안다는 건, 어느 순간부터 놀람이 사라졌다는 말과도 같았다.
서준과 나는 6년 차 연인이었다.
같이 재수학원을 다니던 인연으로 알게 됐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동안 참아왔던 호르몬을 터뜨리듯 뜨거운 연인 사이가 되었다.
밤낮없이 자고, 먹고, 했다.
사랑을 하는 데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고, 마음은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서로에게 태초부터 이끌린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조립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레고 조각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맞물리던 조각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끼우면 벌어지고,
누르면 부러질 것 같은 감각.
‘사랑은 식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 얄궂은 명언을 믿어보려 했다.
그러나 서준과 나는,
서로에게서 조금씩 눈길을 거두고 있었다.
이제는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있어도,
아무런 감정도, 떨림도 없다.
사랑이 아니라, 그저 오래된 습관처럼 느껴질 뿐이다.
“햄버거 시켰어. 너도 먹을래?“
먼저 잠에서 깬 서준이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배가 고파진 나는 옆에 앉아 감자튀김 몇 개를 집어 먹었다.
문득, 내일이 우리의 기념일이라는 걸 서준이 알까 싶었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무심코, 마음속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화이글스 파크 가는 날이지. 너도 기대되지 않아?”
핸드폰으로 야구 영상을 보던 서준이 동영상을 멈췄다.
말없이 콜라를 쪽쪽 빨았다.
넌 대체 나한테 관심이 있기나 하니?
나는 말없이 휴지조각을 북북 찢었다.
그건 내가 빈정이 상했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서준과 나는 미세하게 대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오늘처럼 미묘하게 감정이 상하지만,
차마 말하기엔 치졸한 일들이,
소리 없이 쌓여만 갔다.
말도 없이 서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 토요일이 다 갔다. 회사 동료 도영은 요즘 자주 톡을 보내왔다.
"이 누나는 남자친구가 있어도 인기 많네."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가끔 그 말이
작은 상처처럼 남았다.
서준과 나, 우리가 한 데이트라곤
멈추다 만 섹스와, 약간의 말다툼뿐이었다.
이럴 거면 난 서준이랑 왜 만나지.
그 질문이,
오후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현관을 나서는데, 등 뒤에서 서준이 말했다.
“미안해.”
언제나 그렇듯,
뭔지도 모르면서 사과하는 그의 목소리.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서준은 늘 같은 방식으로 미안해했다. 사과는 반복되고, 감정은 누락된다.
다음날 정말로 서준은 야구를 보러갔다. 8시쯤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자기가 응원하던 구단이 우승을 해서 한껏 상기된 모습이었다. 돌아와서도 서준은 하루 종일 야구 커뮤니티를 들여다봤다.
짜증이 나서 혼자 산책이나 하고 올까 하고 메신저 창을 끄려던 순간, 익숙한 이름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직장동료, 도영이었다.
“누나, 뭐해요?”
나는 그 달콤하고 악한 충동에 못이겨 서준 몰래 잠깐 편의점에 나가는 척, 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영은 지금 술 마시고 있는데 혹시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집 안에 두고 온 서준 생각이 잠깐 났지만, 서준에게 괜히 생채기를 주고 싶어 그 은밀하고도 달콤한 유혹을 흔쾌히 수락했다.
사과를 한 입 베어문 이브처럼 죄책감과 괴로움으로 입 주변이 따끔거렸다.
‘뭐 어때, 서준은 지금쯤 야구 보느라 정신이 없을 걸.’
이제 막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던 도영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나이스하고 반듯해보였다. 술을 먹다 보니, 카키색 셔츠를 입고,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도영의 허벅지에 문득 시선이 쏠렸다.
‘지금 어디야?’
서준에게 문자가 왔다.
‘헤어져.’
충동적으로 나도 모르게 전송을 눌렀다.
그 문자를 보내고도 아무 감정이 없었다.
아니, 아무 감정이 들지 않기를 바랐다.
문자를 보내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감정이 터지기 직전의 고요였다. 이게 후회인지 해방인지, 나도 잘 몰랐다.
곧바로 서준에게 연락이 왔다.
황급히 도영에게 작별인사를 건넨 뒤 집으로 가는 길. 택시 안에서는 놀이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서준이 보였다. 유난히도 마른 그의 상체가 가로등 노란 불빛을 받아 더욱 작게 느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서준을 보며, 나는 문득 우리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서준은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말없이, 나를 껴안았다.
내 몸은 그 품에 안겨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그 품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서준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사랑이야? 그냥 오래된 친구 같은 거 아니야, 우리?” 화를 내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나는 서준에게 제일 상처되는 말들을 가시처럼 쏟아냈다.
난 그 누구보다 서준을 잘 알았고 그를 가장 많이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끝내 서준에게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섰다. 내가 나쁘다. 아마 이제 난 서준을 미워하는지도 모른다.
‘도착했어?’
정신없이 울다가 문득 서준 생각이 났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가는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근데 나 너희 집에 지갑 두고 온 것 같아.”
서준은 벌써 다섯 번째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아. 마지막까지 서준 다웠다.
서준은 말이 없는 편이었다. 대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더 말이 없어지는 사람이었다.
이제 서로 모른척해도,
우리가 어떻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결국, 매번 같은 사람을 새롭게 믿는 일일까.
혹은, 아파도 다시 그 손을 잡는 일일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아, 사랑이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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