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프로메테우스에 관하여는 네 가지 전설이 있으니...
그 첫 번째에 따르면 인간들에게 신의 비밀을 누설하였기 때문에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단단히 묶였고 신들이 독수리를 보내어 자꾸 자라는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는 쪼아대는 부리가 주는 고통 때문에 점점 깊이 바위에 몸을 눌러 마침내 바위와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에 따르면 수천 년이 지나는 사이 그의 배반은 잊혀 신들도 잊었고, 독수리도, 그 자신도 잊어버렸다고 한다.
네 번째에 의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에 사람들이 지쳤다고 한다. 신들도 지치고, 독수리도 지치고, 상처도 지쳐 아물었다고 한다. 남은 것은 그 수수께끼 같은 이상한 바위산이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프로메테우스” 중에서>
제우스의 미움을 사면서도 인간의 창조성을 위해 주신(主神) 제우스에게 투쟁한 프로메테우스가 좋았다. 그가 묶여서 바위가 되어버린 이상한 바위산을 보고 싶었다. 좀 더 알아보니 노아의 방주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아라라트 산도 그곳에 있었다. 그곳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코카서스 산맥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는 신화의 땅이었다. 고대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가 흐르고, 흔적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초원의 산맥 지대... 그곳으로 갔다.
코카서스 지역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이루면서 인류 문명의 충돌과 종교 대립의 역사를 가진 전쟁과 평화의 지역이기도 했다. 이곳을 탐내는 역사 속 많은 제국들의 침략과 저항, 지배, 분노 속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온 슬픈 문명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땅이다. 이런 아픔의 역사와 상처 때문에 코카서스 산맥의 하늘에는 안식하지 못하고 떠도는 많은 백학의 무리들이 지금도 날아다니고 있다.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산’(5642m)과 아라라트산(5137m) 사이의 평원에서 유럽계 백인들의 조상이라고 하는 코카서스 인종과 수많은 민족들은 다양한 삶과 언어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많은 민족이 다국가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형성하면서 이합집산과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온 것이다. 최근에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북 코카서스 지역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소수민족들이 분리, 독립을 했거나 하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코카서스 3국은 남 코카서스 산맥에 둘러싸인 나라들로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말한다. 남북으로 이란, 터키, 러시아 등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위치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문명 교류의 통로였다는 특징이 아직도 남아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세 나라는 각각 고유의 문자와 역사, 문화를 가지고 있다. 종교도 세 나라가 각각 다르다.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301년)해 ‘신이 선택한 나라’로 불리는 노아의 후예들이 사는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사도회’를 믿는다.
조지아는 과거 러시아명으로 ‘그루지아’로 불리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후 국명을 ‘조지아’로 바꾸었다. 국민의 대다수(85%)가 ‘조지아 정교회’ 신자다.
‘불’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아자르’와 나라의 의미를 지닌 아랍어 ‘바이잔’에서 나라 이름을 지은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같은 종족으로 국민의 93%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로 수니파와 시아파가 공존하고 있다.
서로 접해있는 이 세 나라 사이에도 분쟁이 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는 서로 적대국 관계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무력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또한 신냉전 질서와 석유 자원을 둘러싸고 이들 세 나라에 대한 강대국들의 개입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코카서스 3국은 원초적 자연의 향기와 순박한 사람내음이 물씬 풍기는 순수의 땅이다.
웅장한 코카서스 산맥은 만년설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해발 2,000m 이상의 고지대는 야생화의 천국이다. 산악국가인 아르메니아의 척박한 땅 목초지 언덕에 서면 지난 수 천년 동안의 전설들이 바람에 실려 온다.
사람들은 비행기의 무사 착륙에 박수를 치며 하느님께 감사를 할 줄 안다. 방문자를 위해서 최대의 배려와 와인 한잔을 함께 나누는 것은 그곳에서는 하나의 생활이다. 중앙선이 없어서 차량의 소통이 오히려 더 원활한지도 모르는 도로 상황과 차가 다니는 길을 점령한 소와 양 떼들 앞에서도 절대 서두르지 않는 풍경이 그곳에 있다.
뿐만 아니라 코카서스 문화에는 사랑과 강인함, 낭만적 기질의 아름다운 예술문화도 있다.
어디에서든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화음을 맞추어 다성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조지아 인들의 폴리포니를 들으면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죽은 연인의 무덤을 찾는 내용인 조지아 민요 “술리코”에서 가슴 적시는 공감을 하게 된다. 영화 “글레디에이터 Gladiator”에 등장했던 아르메니아 관악기 두둑의 목가적 음색이 들리면 저절로 두 눈이 감긴다. 코사크족 이야기 “대장 부리바“에서 ‘율 브리너’가 추었던 것 같은 남자 무용수들의 온몸으로 표현하는 강렬한 춤 동작에 넋을 잃기도 한다.
코카서스 3국은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자연, 사람, 문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덜 알려진 곳이다. 지금 한창 변해가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문화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 분명 유럽의 다른 국가를 여행했을 때와 맛이 다르다. 화려한 감동의 맛은 아니지만, 오히려 맛의 깊이가 더 깊은 곳이다. 누구에게나 좀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한 번쯤 여행해보기를 권한다.
코카서스 3국을 자동차 여행하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감상과 에피소드, 자유 여행을 위한 각종 정보 등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개인적인 경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유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코카서스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