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름 렌터카 여행 이야기 #6 청의 호수 아오이케
아침잠이 많은 체질인데, 이상하게 이번 여행기간 내내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더 이상한 점은 그렇게 일찍 일어났는데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날도 예외 없이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이왕에 일찍 일어난 거…… 상큼한 새벽 공기나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에 침대에서 나와 숙소의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가니 아내가 이미 와 있다가 들어오는 나를 보곤 반가워했다. 우리를 제외하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듯 숙소는 조용했다.
밖은 이미 해가 떠서 환했다. 홋카이도의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높기 때문인지 확실히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는 거 같았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도 우리보다 하루를 한 시간 정도 빠르게 시작해서 한 시간 빨리 끝내는 8 to 5 패턴으로 보였다.
“새벽 공기 마시러 산책이나 갑시다” 다른 때 만났을 때 보다 더 반가워하는 아내를 데리고 새벽 산책을 나갔다.
숙소를 나오니 후라노의 맑은 새벽 공기와 햇살이 우리를 상큼하게 반겨 주었다.
주변 동네를 걸으면서 보니 언덕 뒤편 위쪽으로 숲이 보였다. 언덕을 올라 숲 속을 걸으며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코가 뻥 뚫리면서 머리를 아릿하게 감싸주었다.
5분 정도 숲 속 길을 걸어가니 앞으로 2차선 도로가 가로질러 있고 도로 건너편으로는 야트막한 언덕에 조그마한 꽃밭의 팜이 있었다.
팜 입구에 상점들도 여러 개 있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갔던 “시키사이노오카”와 같이 경사진 언덕에 여러 가지 꽃들의 군락을 잘 정돈시켜놓은 모습이었다. 팜의 크기는 “시키사이노오카”보다 작았지만 새벽의 꽃들은 훨씬 더 생기 있어 보였고, 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로 인해 더 싱그럽게 다가왔다.
팜의 전경을 다 볼 수 있는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서양식 디자인의 팔각형 형태를 한 망루가 있었다. 망루에 올라가 팜 전체를 내려다보며 달려있는 종도 쳐 보았다.
아내와 나는 천천히 꽃밭 사이 길을 걸으며 꽃들과 홋카이도 전원의 풍경을 마음껏 담는 새벽 아침의 호사를 누렸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꽃밭에서의 새벽 호사로움을 누린 후 오늘 여행 일정 때문에 숙소로 돌아왔다.
아쉽게도 산책을 나갈 때 카메라와 폰 등을 놓고 가서 이날 새벽 아침의 행복을 하나도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숙소로 들어설때 어젯밤 이곳에서 잠을 잔 여행객 서너 명이 숙소를 떠나려 하고 있었다.
아내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잔 젊은 한국인 여자 여행객은 이곳에서 10일째 머물면서 후라노, 비에이 지역을 하루에 한 곳씩 둘러보는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산책을 하면서 아내가 말했었다.
이곳이 도시가 아니고 시골이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는 것 같았다.
각 여행지 간 거리가 걷기에는 멀고, 대중교통시설은 열악하고……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저 친구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일찍 시간에 맞춰 나가는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7시에 식사로 토스트와 야채샐러드가 나왔다. 오랜만에 식빵을 구워서 버터와 잼을 발라 먹으니 맛있었다.
오늘 여행 계획을 일부 수정했지만 이동 거리가 긴 날이어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숙소를 나왔다.
첫 목적지로 가는 처음 십여 분 동안은 넓은 들판이 펼쳐졌고 그 후에는 약간 경사진 구릉지대로 접어들었다.
조금 더 가니 울창한 삼림 속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먼저 “흰수염 폭포”로 갔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의 색깔이 청색을 띠었는데 바닥의 무슨 광물 때문에 그런 색깔이 나온다고 한다.
숙소에서 아침 7시 40분에 출발해 이른 시간에 관광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미 폭포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와~ 벌써 이렇게 사람이 모일 정도면 삿포로에서 버스로 출발한 관광객들이 여기에 도착할 시간쯤 되면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구경도 못하겠는데……”
“그러니까, 아마 두 시간 정도 뒤면 사람들이 많이 올 거 같아…… 우린 빨리 “아오이케” 마저 보고 이 지역을 벗어 납시다.” 아내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폭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오이케”는 원시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곳이었다.
태초에 자연의 색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의 신비로운 청록색이 원초의 색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청록색과 물 위에 비친 자연이 주변의 수목과 어우러져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와 있는듯한 착각을 주기도 하였다.
“아오이케” 주위를 둘러보며 환상적 경험을 한 후 본격적으로 “시레토코 반도”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구글맵”에서는 시레토코 자연센터에 도착하는 예상 소요 시간을 5시간 15분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자동차 전용 도로를 타기 전 국도변에 있는 작은 마트에 들려서 “덮밥 도시락”과 과자, 물 등 필요한 것들을 조금 샀다.
“와…… 이거, 감자칩 정말 맛있네” 졸음을 쫓기 위하여 몇 개 먹어본 과자가 정말 맛있었다.
“그렇지…… 아무튼 일본 과자 맛있다고 지난번 대마도에 갔을 때 보니까 젊은 선생님들이 많이 사더라고…… 일본 여행 가면 과자, 도시락 꼭 먹어봐야 한다고 했어…… 특히, 역 근처에서 파는 도시락이 정말 맛있데……”
연초에 동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대마도 여행을 갔다 온 아내가 신나게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이태리에서 먹었던 감자 칩은 짰는데…… 여기 거는 하나도 안 짜네…… 일본 먹거리가 전체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스타일인 거 같아…… 향도 진하지 않고……” 일본 과자와 사탕 등을 먹어 본 소감으로 아내에게 맞장구를 쳐줬다.
“이번엔 “라벤더 아이스크림” 하고 몇 가지 꼭 먹어 봐야지....” 일본 먹거리에 대한 아내의 기대가 컸다.
이렇게 그때그때 느껴지는 일본과 홋카이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함께 살아온 지난 시간들의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시레토쿄를 향하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