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름 렌터카 여행 이야기 #7 시레토코 반도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 중에 휘발유 계기판의 바늘이 5분의 1 정도로 떨어진 것을 봤다.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남아있는 휘발유 량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의 휴게소에 가면 주유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휴게소로 들어 가 보면 주유소는 없고, 화장실과 상점만 있었다.
“아오이케”를 출발한 후 휴게소에 두 번 들렀는데 두 곳이 다 그랬다. 지난 뒤에 생각해보니 홋카이도 여행 기간 중 우리가 들렸던 모든 휴게소에서 주유소를 한번도 보질 못 했던 것 같다.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마을들은 크기가 아담한 작은 마을들이었다.
‘저 정도로 마을이 작으면 동네에 주유소가 없을 수 도 있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침, 스마트폰이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타는 길로 안내를 했다. 국도를 따라가면서 주유소를 찾으려고 신경을 바짝 써보았지만,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에이…… 이럴 때는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상책인데……’라고 생각하는데 앞에 편의점이 보였다. 차를 세운 후 편의점에 들어가 계산대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주유소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지금 왔던 길을 되돌아서 5분 정도 가면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오른쪽에 있고, 그 “세븐일레븐”을 끼고 우회전해서 조금만 더 가면 주유소가 있다.” 고 가리켜 주셨다.
‘휴…… 이제 됐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아주머니가 가리켜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가득 넣었다.
“자아! 이제 먹을 것도 있고, 차에 기름도 가득 넣었으니 걱정할 거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갑시다.” 그때까지 뭐라고 말은 못 하고, 속으로 걱정스러워만 했을 아내에게 겸연쩍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시레토코 반도”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에는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고 있었다. 다니는 차도 많지 않았지만 규정 속도인 80km를 지키면서 가니까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때 보다 운전의 피로도가 훨씬 덜했다.
홋카이도는 차가 다니는 모든 도로의 가로등 윗부분에 “도로 바닥을 향하는 화살표” 표식이 붙어있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쌓여 도로를 분간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일종의 도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표식인 것이다.
'정말 눈이 많이 오기는 오는 지역인가 보구나.... 저 정도 높이로 쌓일 정도면... 어휴...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 렌트 한 Fit 하이브리드 차의 연비가 정말 좋았다. 이때까지 계기판에 표시되어 있는 리터당 연비가 22km였다. 나중에 차를 반납할 때 보니 여행 기간 동안 연비가 리터 당 23km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내가 지도를 본 후 가는 길에 있는 호수들을 들르지 말고 곧장 “오신코신 폭포”로 가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 위를 우리 차만 달리면서 옆을 보니 끝이 안 보이는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어느새 홋카이도 깊숙이 들어온 것 같았다. 어제 갔었던 후라노, 비에이의 전원 모습과는 다른 일본 농촌의 풍경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본은 넓은 평야와 자연을 가지고 있는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평야, 멀리 보이는 구름을 머리에 두르고 있는 웅장한 산, 파란 맑은 하늘...
지금 보이고 느껴지는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점점 더 일본의 속살로 들어갔다.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니 드디어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이 마을의 중심지가 아닐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마을 초입에 여러 개의 대형 할인점이 모여있는 “파워센터”가 보였다. 식품을 파는 대형 마트로 가서 당분간 필요한 먹을 것들을 잔뜩 샀다. 물, 맥주, 과일, 그리고 사탕, 과자 등…
오늘의 이동 일정을 고려하여 저녁 식사용으로 도시락과 초밥도 샀다.
쇼핑을 마친 후 다시 이동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드디어 이제 거의 다 도착해가는 거 같네... 아마 저기 앞에 보이는 바다가 오호츠크 해 일거야.” 파란 바다가 반갑기도 했지만 지치지 말고 힘을 내자는 의미에서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해안 도로를 달리면서 보이는 바다의 파란색 청명함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폭포로 가는 중 오호츠크 해의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녹색 잔디 앞마당을 가지고 있는 카페가 보였다. 잠시 내려 오호츠크 해의 바람을 직접 맞아 보았다. 바닷가인데도 습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바닷가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상쾌했다.
어느 광고에 나오는 문구처럼 '청량'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오면서 쌓였던 피로를 한방에 날려 보냈다.
한 점 보이지 않는 수평선 위에 하얀 구름만이 넓게 퍼져있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평선은 널찍이 둥그렇게 펼쳐져 있었다.
평화로웠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옆에 있는 아내가 고맙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시 “오신코신 폭포”로 향하여 움직였다. 도로를 따라 몇 분을 가니 도로 옆에 조그만 주차장이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후 언덕을 조금 걸어 올라가니 그곳에 “오신코신 폭포” 가 있었다. 화산섬의 특징인 바닷가와 닿는 지역에 가파르게 형성된 절벽을 타고 내리는 폭포수였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물이 흘러내려오는지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크고 웅장하게 들렸다.
오신코신 폭포와 폭포 앞에 보이는 오호츠크 해를 감상한 후 다시 “시레토코 정보센터”를 향해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 제법 많은 큰 건물들과 호텔들이 보이는 마을이 나타났다. “사리초”였다.
“아마, 여기가 ‘시레토코 반도’의 중심 마을 일거야.”라고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럴 거 같네…… 여기에서 “정보센터”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다고 하던데……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오면 여기까지 오겠구나. 여기 역이 기차의 종점이 되겠네……” 아내도 이번 여행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여러 정보와 생각들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가 이제 점점 더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라우스 산의 정상 부근은 구름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가던 중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잠시 우리가 지나온 마을과 우리들 발 밑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았다. 태양이 뜨겁게 내려 쬐지도 않고, 많이 흐리지도 않은 여행을 하기에 적당히 좋은 날씨였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다는 오호츠크 해이지만, 얼마 후 이 산을 넘어간 후 보게 되는 바다는 태평양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대양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오는 뭔지 모르는 설렘이 가슴으로 울려져 왔다.
잠시 쉰 후 다시 출발하여 10여분을 더 가 목적지인 “시레토코 정보 센터”에 도착하였다. 나는 정보센터의 주차장 안으로 운전하지 않고,
“조금 더 도로를 따라 올라가서 '가무이 왓카' 폭포를 본 후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시레토코 오호'를 둘러봅시다.”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이동 코스로 정했던 ‘시레토코 횡단 도로'가 조금 전 '사리초'를 지나올 때 보았던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던 우측으로 가는 도로라고 나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왔던 도로를 계속 따라 가면 '가무이 왓카' 폭포와 '이오잔'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를 찰떡같이 믿고 있던 아내도 “그러지요”라고 대답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왔던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올라갔다.
도로의 양 옆은 지대가 높아서인지 낮은 관목들로 이루어진 삼림이었다. 가면서 도로 한가운데에 나와 한가로이 앉아있는 여우를 볼 수 도 있었고, 천천히 도로 위를 걷는 사슴 가족도 보였다.
동물들이 사람과 차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도로를 다니는 차가 많지도 않았지만 가끔씩 다니는 차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모든 차들이 조용히 서서 동물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동물이 지나간 후에야 이동을 하였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라우스 초” 안내 이정표가 나왔다. 그때까지 별 다른 말을 안 하고 있던 아내가
“이상한데…… 우리 다시 정보 센터로 돌아갑시다” 하였다.
나도 일말의 불안감이 들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차를 오던 방향으로 돌려서 “시레토코 정보 센터”로 되돌아갔다. “정보센터”에 도착해서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판의 지도를 보니, 방금 갔다 온 도로가 원래 이동 코스로 계획했던 “시레토코 횡단도로”였다. “가무이 왓카” 폭포와 "이오잔" 화산은 “정보 센터”에서 갈라진 내려가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정보 센터”에서 “시레토코 오호” 관람 입장료를 낸 후 약 10여분의 교육을 받았다. "시레토코 오호"가 “세계 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이유와 호수가 생기게 된 과정, 곰이 나타났을 때 안전 대응 요령 등에 대한 교육이었다. “오호”는 당일 날씨에 따라 개방하는 호수들을 결정하는데 우리는 운 좋게도 5개의 호수를 모두 다 볼 수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 호수였다.
기대했던 곰은 나타나지 않았고 5호부터 시작하여 1호까지 다 둘러보는데 약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각 호수들은 자연 그대로와 함께 멀리 구름을 이고 있는 “라우스 산”의 모습을 수면에 담고 있었다. 호숫가에 비친 오호의 풍경이 청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레토코 오호”에 온 것을 환영이라도 하듯 때마침 우리가 있는 밑으로 구름이 내려와 안개 깔린 습지를 연출하였다. 습지 위 데크를 걸을 때는 신비로운 기운마저 느껴졌다. “시레토코 오호” 관람을 다 마치니 오후 5시가 되었다. 시간이 예상했던 것보다 늦어져 “가무이 왓카“ 폭포와 “이오잔” 관광을 포기하고 “라우스 산”을 넘어가기로 했다. 만약 어두워지면 산길을 운전하기 위험하니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을 넘어가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한 시간 전에 가다가 되돌아온 “시레토코 횡단 도로”를 따라 “라우스초”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다니는 차도 거의 없고, 날씨도 서늘하기보다는 상쾌하게 느껴졌다. 산의 정상 “라우스초 전망대”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정상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갈 방향인 “라우스초” 방향을 보니 구름이 우리들 발 밑으로 뭉게뭉게 퍼져 운해를 이루고 있었다.
다시 도로를 건너 반대편의 우리가 지나온 시레토코 오호 방향을 보니 그곳 역시 횡단도로를 끼고 구름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이 옅은 노랑 빛 노을을 하늘과 구름바다에 물들이고 있었다. 바닷가 쪽에서 불어오는 자연의 바람이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갔다.
“와~ 이런 멋진 곳에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 아내는 자연의 멋진 경관에 계속 감탄만 할 뿐이었다.
‘정말…… 살면서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장관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우스 산을 어느 정도 내려온 지점부터는 도로 옆 곳곳으로 온천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온천의 천국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가는 곳마다 온천이 없는 곳이 없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우스초”는 태평양 연안에 접해있는 조그만 어촌 마을이다. 우리가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거리를 다니는 차량이나 사람들의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한적하였다.
조그만 어촌 마을이 주는 적막함과 차의 헤드라이트를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워진 어둠, 암청색 어둠으로 가라앉아있는 밤바다 등에서 스산함이 느껴졌다.
“라우스초” 마을을 지나 오늘 우리가 묵을 “테시카다초”의 “호텔 마슈”를 향하여 갔다. 바닷가 옆 도로를 따라 한참 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륙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미 사방은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아 인가의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었다. 가끔 근처 마을에 사는 것으로 추측되는 차량의 불빛들만이 지나쳐 갔다.
일본에서는 사거리에서 일단정지하는 것을 철저하게 단속한다고 했다. 왜 그렇게 철저히 단속을 하는지 이렇게 사방이 어두운 곳에서 운전을 해보니 이해가 되었다.
내륙 지역으로 들어갈수록 지대가 높아져서 그러는지 설상가상으로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1년 전 이탈리아 여행 때 “귀곡산장 사건” 이 생각나서인지 바짝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나도 어둠에, 안개에, 가끔 비까지 내렸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 매고 운전을 하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목적지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건데 뭐…… 내가 안전 속도만 지키면서 가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야……’라는 여유를 가지려 노력하였다.
아내가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풀어줄 겸 오늘 낮에 산 사탕을 먹으며 일부러 여유 있는 척했다. 긴장하면서 운전한 지 40여분 정도가 지난 후 드디어 마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스마트폰에서 목적지에 거의 다 왔음을 알려주었다.
계획상으로는 오늘 밤 호텔에 도착 후 마슈호 위에 있는 전망대에 가서 별을 구경하여야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경험했던 것처럼 오늘 밤은 날씨가 맑지 않아 별이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되어 계획을 포기하였다.
“호텔 마슈”는 오래된 호텔로, 호텔 내에 24시간 개방하는 온천탕이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방으로 옮긴 후 온천 욕으로 이곳에 오기까지의 긴장과 피로를 풀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한 날의 마지막은 역사가 오래된 탕에서의 온천 욕으로 마무리하였다.
<셋째 날 이동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