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름 렌터카 여행 이야기 #8 이오잔, 마슈호, 굿샤로호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온천탕부터 갔다. 아내는 어제 이곳에 오면서 어둠과 안개, 비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하였던 거 같다.
“이제 가능하면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이동하도록 해요……” 아침 식사를 할 때 아내가 말했다.
차에 짐을 옮기고 체크 아웃을 끝낸 후 마슈호 제1전망대를 향해 출발하였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어젯밤 이곳에 올 때는 어두워서 주변을 볼 수 없어 몰랐는데, 아침에 마슈호를 향하여 가면서 주위를 보니 우리가 홋카이도의 낙농 지대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어제저녁의 이동 경로가 해안가에서 출발하여 낙농 하기에 적당한 내륙 고산지대까지 올라오는 경로였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비도 오고, 안개도 끼고 했었던 거였다.
우리나라 낙농 지대와는 규모와 환경이 확연하게 달랐다. 목초 지역이 그야말로 끝없이 주욱 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끔 둔덕 같은 얕은 언덕이 있고, 언덕 위에 나무 몇 그루들이 마치 각 농장의 경계선을 나타내는 것처럼 서 있었다. 방목을 해도 될 정도로 넓은 목초 지대였다.
성장기를 이런 자연환경에서 보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플러 나무 밑의 추억을 만들면서 보내는 성장기가 인간의 정서 형성에 얼마나 훌륭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지……’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꿈이요, 동화라는 부러움이 들었다.
가끔 지나가는 농장의 트럭들이 소여물 같은 볏짚을 가득 싣고 다녔다.
어젯밤 우리가 묵었던 호텔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슈호 제1전망대가 있었다. 제1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네댓 명 정도의 관광객만 있고, 주차 요원도 없었다. 제1전망대에서 바라 본 마슈호는 호수의 “신비로움”에 신령적 요소까지 가미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호수 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안개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초자연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였다. 이른 아침이어서 서늘한 공기의 매력까지 얹어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슈호는 일본에서 가장 맑은 호수로서, 러시아의 바이칼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맑다고 한다. “안개의 호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안개가 자주 낀다.
제1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우리가 지나온 목축 지역이 끝없이 펼쳐진 채로 한눈에 들어왔다. 연녹색 들판에 내린 아침 이슬이 구름 깔린 하늘과 대지와의 접점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청정 지역의 이른 아침 자연을 눈에 담으니 두 눈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제3전망대 주차장은 도로 옆에 작은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어 자칫하면 지나쳐버리기 쉬운 크기였는데 다행히 우리는 발견하여 쉽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제3전망대에서는 안개가 제1전망대 보다 더 짙게 깔려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로 인해 호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보이는 풀과 꽃들이 안개로 인해 촉촉이 적셔 있는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슈호를 머리에 담고 있는 산의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와 굿샤로호로 가는 길 도중에 있는 이오잔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니 주차요금을 받는 할머니가 계셨다.
이오잔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의 활화산으로 지금도 온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벌거숭이 산이었다. 화산의 분출구가 있는 언덕 쪽으로 더 걸어 올라가 화산 증기가 나오는 분출구 주변에 굳어져 있는 노란색 유황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이오잔에서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본 최대 크기의 칼데라호인 굿샤로호로 갔다. 굿샤로호에서는 스나유 캠핑장을 둘러본 후 노천 온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이케노유 온천으로 향하였다. 일본의 여러 문화 중 노천 온천이 가장 일본다운 문화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되어 기대가 컸다. 더군다나 이케노유 온천은 이미 많이 알려진 유명 장소로 여러 사진과 안내 책자 등에서도 소개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도상으로 보면 이케노유 온천에 가기 위해서는 스나유 캠핑장 주차장에서 나온 후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스마트폰은 왼쪽으로 가라고 안내를 하였다.
“어…… 이상하네……. 지도 다시 한번 확인해봐…… 분명히 오른쪽으로 가야 되지……” 아내에게 방향 확인을 요청했다.
“녜, 맞아요…… 오른쪽으로 가야 돼요.”
“근데, 왜 얘는 왼쪽으로 가라고 하지……에이…… 모르겠다. 일단 오른쪽으로 가봅시다.” 스마트폰의 안내를 무시하고 약 5분여를 가니 이케노유 온천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이상하다. 왜 스마트폰은 왼쪽으로 가라고 안내를 했을까…… 다르게 갈 수 있는 길도 없는데…… 아~ 맞다! 주차장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갈려면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데, 거기서는 중앙선을 못 넘게 되어있거든……
그래서 왼쪽으로 간 후 유턴이 가능한 곳에서 유턴을 시켜 가게 하려고 왼쪽으로 가라고 한 거였네.....” 내 추측을 말했다.
“기계는 역시 기계네…… 어쩌면 그게 기계의 한계인지도 모르지…… 다니는 차들이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지만, 다니는 차도 없었는데…… 융통성이 있어야지……”
차를 주차한 후 이케노유 온천탕이 있는 곳으로 가니 당분간 폐쇄한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일어를 몰라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온천물에서 이물질이 나와 폐쇄한다는 내용으로 짐작되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어느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처럼 호수를 바라보며 노천 온천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었는데…… '
어쩔 수 없이 이케노유 온천에서의 노천온천을 포기하고 코탄온센으로 갔다. 코탄온센에서는 노인들 몇 분이 발을 담그고 있거나 몸에 수건을 두른 채 바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온천탕 뒤편에는 작은 목조물 두 채가 남, 녀 탈의실 용으로 세워져 있었다.
노천 온천욕을 하기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탕의 크기도 작았고, 탕에 들어가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마침 아내가 굿샤로호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와코탄 반도를 걷자고 하였다. 이름이 반도라고는 하지만 전체 둘레를 걷는데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크기로 호수 중심을 향해 돌출되어있는 지형 때문에 괜히 거창하게 뒤에 반도라는 단어를 붙여 놓은 곳이었다.
걷는 길 중간중간에 안전과 식생을 위하여 잡초 제거도 하고 흙 다지기 공사도 하고 있었다. 일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가 좀 들어 보였다. 이곳뿐만 아니라 여행 기간 동안 지금까지 보면 주차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공공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단순한 일(공항에서 픽업 등)은 거의 노인들이 하고 있었다.
‘노인들이 하니까 어떤 면에서는 더 친절한 면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이 고령화 사회라서 인구 구성비 상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상인지, 아니면 일본의 노인 고용 정책으로 인해서 나타난 현상인지 잘 모르겠다.
와코탄 반도 트레킹을 한 후 노천욕 대신에 아내는 코탄 온센에 발을 담그는 족욕을 했다. 나도 직접 온천물에 손을 담가 보니 물이 뜨거웠다. 호수 바로 옆에서 어떻게 이렇게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는지 참 신기했다.
아내가 족욕을 마친 후 호수 전체가 보이는 잘 조성된 잔디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는 여유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