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지리산 벽송사와 칠선계곡
운 좋게 경남 함양군의 ‘함양에서 한 달 여행하기’ 사업에 참여자로 선정돼 이번 5월에 함양의 구석구석을 다녀볼 수 있었다. 함양의 여러 명소들을 다녔지만 나에게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 곳은 역시 지리산이다.
함양의 마천면에서 한국의 3대 계곡이라 불리는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다보면 벽송사로 가는 길이 나온다. 서암정사를 지난 후 지리산 둘레길이기도 한 급격한 경사의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을 만나게 된다. 그 곳이 벽송사다.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에서 벽송사는 주인공이 일제의 학도병 징집을 피해 숨어 있다가 찾아가는 곳으로 나온다. 이곳은 한국전쟁의 시기에는 조선인민유격대의 근거지로서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다가 국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있는 오래된 삼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아래 앉아 벽송사와 절을 둘러싸고 있는 숲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오월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연주하는 자연이라는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한 편의 교향곡을 들었다. 그 지리산 5월의 바람은 나에게 라임색 바람이었다. ‘이런 곳이 치유라는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거나, 삶의 전환이 시작되는 장소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 예약을 통해 한정적으로 탐방을 허용하는 칠선계곡은 일 년 중 4개월(5~6월, 9~10월)만 탐방이 가능하다. 기간 중 월요일은 올라가기 프로그램만 운영해 추성주차장에서부터 천왕봉까지 (편도 9.7km 구간) 탐방이 가능하며, 수/목/토요일은 되돌아오기 프로그램으로 추성주차장에서부터 삼층폭포까지 (왕복 13km) 갔다가 되돌아오는 탐방이다. 추성마을에서부터 통제구역이 시작되는 비선담까지는 언제든지 탐방이 가능하며 거리는 약 4.2km 정도 된다.
추성마을의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면 칠선계곡 탐방로가 시작된다. 그 후 완만한 산길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차량이 다니는 도로가 없는 두지동 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계곡 탐방의 시작이다. 칠선교를 지나면서 시작된 작은 여러 폭포, 옥빛의 소와 계곡들, 하늘을 가린 활엽수의 숲들은 자연의 원시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계곡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과 옥빛의 맑은 물빛들이 칠선계곡의 비경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이곳에는 선녀탕, 옥녀탕으로 대표되는 소가 33개, 칠선폭포, 대륙폭포, 삼층폭포로 대표되는 폭포가 7개 있다.
칠선 계곡을 오르는 내내 5월의 햇살이 숲에 빛을 번지게 한 자연을 만났다. 그 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 삶의 산소호흡기를 꽂은 것 같았다. 힘들게 다녀온 지리산 칠선계곡은 내 삶의 군더더기를 버려내는 시간이었다,
# 이 글은 인터넷 뉴스 신문 '오마이뉴스"의 여행 기사로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