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nia Guell, Montserrat
“아쉬움”의 사전적 의미는 ‘필요한 것이 모자라거나 없어서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을 말한다. 2017년 12월 31일 아침 바르셀로나에서 우리의 마음이 그랬다. 아쉬웠다. ‘어떤 목적이나 정해진 기한 없이 며칠 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를 마음껏 다니고, 이곳에서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 지난 4일 동안 바르셀로나로부터 받았던 감동 때문이 아니라 바르셀로나를 알고 이해하기에는 4일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족함이 과함보다 낫다’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면서 여행 오기 전 한국에서 예약했던 “리스 차”를 픽업하기 위하여 짐을 싸 들고 숙소를 나왔다. 택시를 타기 위하여 람브라스 거리로 가는 아침에 바르셀로나의 뒷골목을 걸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살면서 한번 더 바르셀로나에 옵시다. 그때는 일정이나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하루하루 부딪치면서 지내기로 합시다. 어때?”
“나야, 좋지…… 내가 나이 먹어서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외국의 도시에서 한 달 살기 …… 뭐, 이런 건데…… 난 오키!” 아내도 이렇게 다음을 기대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눈치였다.
이때는 몰랐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아내에게 나중에 다시 한번 더 오자고 한 곳이 바르셀로나 만이 아니라는 것을!
적혀있는 주소대로 택시 운전사가 데려다준 곳에 도착하니 약속시간보다 50여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공항 활주로 근처의 물류 회사와 창고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택시를 타고 오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찾아오는데 엄청 고생했을 것 같았다는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더군다나 약속 시간에 늦으면 벌금까지 있는데…… ‘
일요일이라서 문을 안 열은 것인지 사무실로 들어가는 대문이 잠겨있어 할 수 없이 대문 앞에다 짐을 놓고 거리에서 기다렸다. 리스 차 픽업 사무실은 우리가 리스 한 “시트롱엥”의 차량만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푸조” “르노” 등 리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프랑스 자동차 회사들의 차량을 모두 대행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약속 시간 5분 전에 차량 한 대가 길목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서야 안도가 되었다. 사무실에서 계약서와 서류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주요 법규 사항 및 리턴에 대한 조건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리스할 차량으로 가서 차량 매뉴얼과 키를 받고 차량 이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씨트로엥 C4 Auto 휘발유. 내비게이션 내장”
차에 짐을 싣고 작별 인사를 한 후 사무실을 나와 300여 m 정도 가다가 차를 길 옆에 세웠다. 본격적으로 운전을 하기 전에 차의 각종 사용법을 다시 직접 확인하여 보기 위해서였다. 여러 사용법을 확인하는데 작동시키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교육을 받고 나왔다.
구엘 Guell의 위대한 실험, 공동체 마을 "콜로니아 구엘" Colonia Guell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콜로니아 구엘”은 바르셀로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북서쪽 외곽 "Santa Coloma de Cervello"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아버지인 “후안 구엘” 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에우제비 구엘” Eusebi Guell 은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섬유 산업의 산업 혁명과 부동산을 통해서 많은 재산을 축적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위키피디아”에서는 이야기할 정도이다.) 할 수 있었다. 영국 유학 시절 직접 보았던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그는 막대한 부를 이용해 예술가들을 후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토니 가우디”의 평생 후원자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섬유공장과 노동자들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단지를 그의 고향 땅에 만들어 줄 것을 가우디에게 의뢰했다. 고향에서 성공적인 기업을 이끌면서 고용한 노동자들의 근무환경과 생활개선에 투자를 한 ‘마을 공동체’ 개념의 실험적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당시 상대적으로 좋은 보수와 근무조건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 작은 마을의 노동자 단지 이름이 “콜로니아 구엘” Colonia Guell이다.
정말 조용한 작은 마을이었다. 관광객도 주민들도 별로 없는 그저 한가로운 스페인의 전형적인 마을 모습이었다. “구엘”의 위대한 실험적 의미를 모른다면 왜 이곳에 서 있는지 이유를 못 찾을 정도였다. 평화롭고 조용한 그래서 마을 뒤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소나무들과 작은 성당이 치유의 숲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더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멈춘듯한 세계에서 나 와 세상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마을이었다.
미완성의 작은 성당 "콜로니아 구엘 성당"
야트막한 언덕의 소나무 숲 사이에 지어진 작은 성당이 가우디가 1898년부터 짓기 시작한 “콜로니아 구엘 성당”이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가우디의 초기 작품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원시 형태를 지녔으며 1918년에 공사를 중단한 미완성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여러 개의 벽돌 아치를 만들어 무게를 적절히 분배한 포물선 아치였다. 포물선 아치는 구조적 특징뿐 아니라 삼위일체의 상징적 의미라고도 한다.
성당에 있는 지하 예배당은 본래 구엘 가(家)의 납골묘로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현재는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이곳에 갔을 때 마침 예배 시간 중이어서 지하 예배당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돌로 만들어 쌓은 주변 나무줄기를 닮은 기둥들과 산비탈 모습의 지붕, 창 주위의 타일 장식, 성당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작고 소박했지만 가우디 특유의 기둥과 변화들이 이곳에서도 보였다.
까탈루냐의 성지 몬세라트 Montserrat
“콜로니아 구엘”에서의 잔잔했던 오전 시간에서 나와 “몬세라트 Montserrat”를 향했다.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 북서쪽으로 약 38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톱니 모양의 산”을 뜻하는 해발 1,236m 높이의 바위산이다. 스페인 최고의 가톨릭 성지이자 세계 4대 성지 중 한 곳으로 까탈루냐 수호성인인 “검은 마리아 상”을 보관하고 있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산타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 (1,000년 역사)이 있는 곳이다. 또한, 가우디가 가장 많은 영감을 얻은 곳으로 유명하다.
산을 타고 굽이굽이 도는 도로를 따라 몬세라트로 가면서 멀리 보이는 자연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년 말인데도 몬세라트는 입구에서부터 많은 관광객과 차량들로 붐볐다. 할 수 없이 다른 차량과 마찬가지로 도로 옆에 주차를 한 후 광장을 향해 걸어갔다. 먼저 "산타 마리아" 광장 밑에 있는 휴게소의 식당에서 오징어 튀김과 파스타로 점심을 하였는데 가격 대비 맛도 있고 양도 푸짐하였다.
몬세라트 수도원의 또 다른 유명한 것 하나는 “빈 소년 합창단”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과 더불어 세계 3대 소년 합창단의 하나로 불리는 “에스꼴라니아 소년 합창단” Escolania de Montserrat이다. 유럽 전역에서 인기가 있는 이 소년 합창단이 관광객을 위해 몬세라트 역에서 두 곡 정도의 노래를 부른다는 정보를 알고 있어서 역으로 서둘러 갔는데 오늘은 공연이 없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산 후안” San Joan 전망대까지 갈 수 있는 푸니쿨라가 겨울철에는 운행을 안 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산 후안“ 전망대를 향해서 걸어가기로 했다. 산 위를 향해 가는 트레킹 초입에 몇 개의 동상들이 보였다. 그중 하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세계적 첼리스트 “카잘스” Pablo Casals의 동상이었다. “카잘스”가 까탈루냐 지방 출신이기 때문에 이곳에 동상을 세운 것 같았다. 또 다른 동상을 보고 누구의 동상일까 하면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나가던 외국인이 “성 프란체스코” 동상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산 위로 올라가면서 뒤 돌아본 수도원의 모습은 올라가서 볼수록 더 멋졌다. 한참 산을 올라가는데 아주 작은 조그만 예배당을 만났다. 산 길 옆에 있는 투박하기까지 한 예배당이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산길을 지나 해 떨어지는 평원이 보이는 능선까지 스페인의 자연을 맘껏 즐기며 걸었다. 산길이 잘 포장되어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의 목적지였던 “산 후안” 전망대를 훨씬 더 지나서 “산 후안” 교회와 산장이 있는 정상 Sant onofre까지 갔다. 그곳에서 다시 돌아 원점인 수도원으로 내려왔다.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단지 대여섯 명 정도의 사람만 볼 수 있었는데 내려올 때는 신년 해맞이를 하기위하여 야영하러 올라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3시간 정도의 산행을 마친 후 산타마리아 수도원을 둘러보았다. 수도원 앞 광장에 들어서자 “수비라치”의 조각 작품 “성 조르디” 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끌었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있는 그 조각상. 수도원 입구에서는 예수님과 그의 12제자 부조가 파사드 위에 정교하게 서 있었다.
수도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을 (“라 모레네타” La Moreneta라고 불리 운다) 보기 위하여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특히 검은 성모 마리아상의 오른손에 들고 있는 구슬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우리도 차례를 기다려 소원을 빌었다.
수도원을 나와 산타 마리아 광장의 왼쪽은 수도사의 생활공간이며, 광장에 있는 동상들은 기독교 수도자 교육에 이바지한 6명을 기려 세운 동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수도원을 나왔을 때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 광장으로 어둠이 슬며시 내려왔고, 광장에 있는 등(燈)의 불빛들도 밝혀지기 시작했다.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붉은빛을 띤 벽돌의 수도원과 광장의 아치들 그리고 노란색 등(燈)의 풍경에서 아름다움보다는 경건함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7년을 우리는 이렇게 스페인 몬세라트의 산타마리아 수도원 광장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무리하였다.
어두워진 산길을 헤치고 미리 예약해둔 바르셀로나 근교 호텔을 찾아갔다. 그리고 호텔에서 와인 한 병을 사서 우리 두 사람의 송년 파티를 가졌다.
감사의 파티였다.
이토록 큰 행복의 시간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으며,
지금까지 함께 시간을 만들어온 아내에 대한 감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