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ila, El Escorial
ㅣ 눈 내린 아빌라 Avila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가 이번 여행의 시작점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날 저녁 TV 뉴스에서 스페인 중북부 지방에 이상 기후로 폭설이 내렸다고 방송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행기간 동안 지중해와 대서양을 끼고 다녀 겨울이지만 만년설을 제외하고는 눈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 드디어 폭설이 내렸던 지방을 지나게 되는 일정이어서 살짝 긴장이 되었다.
영혼이 예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품격의 도시 살라망카를 떠나 아빌라 Avila로 향했다. 아빌라는 해발 1,132m 유역에 산맥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성벽 밑에 쌓여있는 하얀 눈들이 지금까지 들렸던 지역과는 다른 이 지역의 날씨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아빌라의 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전 사각형의 신전 모양으로 생긴 전망대 Mirador Avila에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전체를 본 후 구시가지로 갔다.
아빌라의 성벽은 11세기에 이슬람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총길이 2,500m의 성벽으로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다. 총 8개의 문에 88개의 탑과 벽으로 지어졌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를 잠시 걸어서 둘러본 후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 위에 오르니 1,000년 전 이곳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성벽 밖 평원에서 달려오는 이슬람 군대의 함성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가톨릭의 저항들이 상상되었다.
아빌라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수도원 개혁에 앞장선 성녀 “테레사”(1515~1582)가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도 포함된다고 한다.
ㅣ 중부 내륙 산간의 눈 쌓인 초원
아빌라에서 마드리드 북서쪽 “엘 에스코리알”로 가는 국도 주변은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중부 내륙 산간의 목초 지역을 지나게 되었는데 늘 그랬듯이 이동하는 차량이 거의 없었다. 가다가 중간에 차를 세워놓은 후 눈 덮인 평원, 방목하는 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ㅣ 죽음의 계곡 Valle de los Caidos
“엘 에스코리알”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죽음의 계곡 Valle de los Caidos”으로 갔다. 독재자 “프랑코”의 지시에 따라 스페인 내전 중 사망한 5만 명을 위하여 만들었으나, 실제로는 프랑코 개인 묘소와 가톨릭 수도원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다. 정상에 있는 152.4m의 대형 십자가와 그 밑에 있는 성당의 규모에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나……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이렇게 끝없이 대형화를 추구하고 세속화되어가는 현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혼란스러웠다.
성당 안에 독재자 “프랑코”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프랑코” 무덤의 반대편에는 스페인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 “호세 안토니오”의 무덤이 있다. “프랑코”의 무덤은 예수님이 등을 지고 서 있는데 반해 “호세 안토니오”의 무덤은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방향 앞에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성당 입구 위에는 높이 5m, 길이 12m의 “피에타 상”이 있다. 그 상을 보는 순간 슬픔, 아픔, 고통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피에타 상”을 보면 늘 인간적인 아픔과 함께 일종의 성스러움에서 나오는 경외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는데, 이곳의 “피에타 상”이 주는 느낌은 달랐다. 오직 인간적인 슬픔, 아픔, 고통만이 느껴졌다. 날씨까지 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 내려와 앉아 있었다. 기분이 밝지가 않아 그곳에서 빨리 나와버렸다.
ㅣ 전원도시 "엘 에스코리알"
오늘 숙박할 호텔은 “구아라다마 산맥 Guadarrama”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 호텔을 예약한 이유는 인구 16,000여 명의 전원도시로 마드리드 시민들의 휴식처이며, 스페인 르네상스의 대표적 건물인 “산 로렌소 데 엘 에스코리알 궁전 San Lorenzo de El Escorial”이 있는 “엘 에스코리알”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호텔에 체크인 후 나와서 “엘 에스코리알”로 갔다. 차량으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조용하고 호젓한 동네였다. 기차역 주차장에 주차한 후 걸어서 공원을 가로지르며 모처럼 한가로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 궁전은 오후 6시가 마감 시간이어서 관람을 포기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기로 하였다. 자그마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엘 에스코리알” 시내를 둘러본 후 호텔로 돌아왔다.
와인 한잔을 마시며 본 창 밖은 조용하며 차분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온 지 벌써 20여 일이 지나고 있었다.
‘지나온 20여 일 동안 얼마나 많은 경험과 감동, 축복을 받았는가…… 평생 이 시간을 회상하면서 살아도 행복할 거야. 이제 얼마 안 남은 이 여행의 시간은 또 어떤 빛깔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
……
아~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구나.
지나온 시간에 대한 정리와 휴식 그리고 안의 세계를 넓혀주는 경험들 이런 것도 좋지만……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가지게 해주는구나…... ’
오늘도 세상은 나에게 밝게 다가오고, 시간들은 나에게 환한 얼굴로 밀려오는 감사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