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Lorenzo de El Escorial, Segovia
ㅣ San Lorenzo De El Escorial 궁전
마드리드 근교 호젓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전원도시 El Escrial에는 이탈리아 지배권을 놓고 프랑스와 싸운 “생겡탱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가톨릭 수호성인 “성 로렌쪼”를 기리기 위해 펠리페 2세가 지은 궁전이 있다.
스페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물로 궁정, 교회, 학교를 완벽하게 사각형의 기하학 속에 통합하여놓은 곳이다. 사각형 그리드 안에 현관 홀이 중심으로 있고, 중심을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되는 구조의 가로 206m, 세로 209m의 궁전이다.
궁전의 출입구는 광장에서 서쪽 파사드에 3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그중 중앙의 출입구가 주 출입구이며 좌우에 있는 출입구는 학교와 수도원의 출입구다. 주 출입구 문 위에는 산채로 화형을 당한 “성자 로렌쪼”의 동상이 있다.
주 출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왕들의 안뜰”이 중심축을 잡아준다. 이 뜰에 “유다 왕국” 여섯 왕들의 동상이 있다. 이 뜰을 중심으로 왼쪽이 대학, 오른쪽이 수도원으로 대칭되어 있다.
수도원 안뜰 오른쪽으로는 4개의 뜰이 있으며 각각의 뜰은 3층짜리 아케이드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학 건물 역시 4개의 안뜰을 가지고 있으며 궁전과 연결된다. 건물 내에 있는 도서관 천장은 이탈리아 화가 “펠레그리노 티발디”가 그린 프레스코화이며, 도서관에는 4만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
“왕들의 안뜰”을 가로질러 정면에는 바실리카풍(바티칸식) 교회를 비롯한 그리스풍의 교회가 있다. 교회 안은 프레스코화의 원형 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테피스트리”와 “엘 그레코”의 그림이 전시된 방, 수도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건축 박물관과 16,7세기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 지방의 예술품을 전시한 그림 박물관등이 있다.
동쪽 회랑을 따라가면 17세기 왕들의 무덤으로 내려가게 된다. 16세기 카를로스 1세 이후 모든 스페인 군주들이 왕비와 함께 묻혀 있는 무덤이다.
겨울이어서인지 건물 창을 통해 보이는 밖의 정원들이 황량해 보였다. 정원을 걷는 것보다 오늘 목적지인 세고비아 Segovia에 일찍 도착하는 것이 일정상 효율적일 것 같아 궁전을 나왔다. 궁전에서 나오자 앞의 광장에서 겨울 햇살을 받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생기 넘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ㅣ 카스티야 왕국의 심장, 중세의 도시 Segovia
과달라마 Guadarrama 산맥을 넘어 해발 1,0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중세 이후 성장을 멈춘 작은 도시 세고비아 Segovia로 향했다. 역사적 의미로서 세고비아 Segovia는 카스티야 왕국의 거점이자 이슬람과 가톨릭의 최대 격전지였던 도시다.
먼저, 세고비아 구시가의 관문이자 수도교를 앞에 두고 있는 아소게흐 광장 Plaza del Azoguejo에 주차를 한 후 구시가를 돌아보았다.
광장 바로 앞에 있는 수도교 Acuedudto de Segovia로 갔다. 높이 30m의 이 거대한 수도교는 17km 떨어진 푸엔프리아 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을 끌어오기 위해 AD 1세기에 2만여 개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19세기 후반까지 실제 수도교로 사용되었던 건축물이라고 한다. 11세기에 이슬람 지배 세력이 36개의 아치를 파괴하였던 것을 15세기 중반 페르난도와 이사벨 여왕이 복구한 과정이 있기도 했다. 수도교 아래서 다리를 보고 그 규모에 입이 벌어졌다.
수도교 옆으로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 길을 계속 가면 세고비아 구시가의 중심으로 가게 된다. 계단을 완전히 오른 후 가는 길은 주택가를 지나고, 상가 거리를 지나 “마요르 광장”으로 이어진다. 이 “마요르 광장”이 세고비아의 중심이다. 광장의 한 부분에 시청사가 있고, 중세 종교재판 때는 이 광장의 가운데서 화형을 집행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요르 광장의 멀리 끝 귀퉁이에 귀품 있는 우아한 자세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아름다운 성당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세고비아 대성당”이다. 성당계의 우아한 귀부인이라고 불리는 성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해서 고딕 양식으로 마무리 한 곳이다. 한낮에는 강렬한 태양으로 건물 전체가 빛을 내뿜지만 해 질 녘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황금으로 만든 것 같이 번쩍이는 성당이다.
이번 여행 동안 성당을 많이 봐서 성당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성당 내부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울 것이라는 점과 작은 예배당이 내부에 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성가대 자리와 예배를 드리는 제단의 장식에 심혈을 기울여 장식을 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성당 앞을 지나 계속 가면 미국 디즈니사의 ‘백설공주 성 모델’이었다는 “알카사르 Alcazar de Segovia”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유럽에 있는 많은 성들이 ‘디즈니 성 모델’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고깔 모자 형태의 뾰족한 둥근 탑 모양이 디즈니 성과 비슷한 형태이기 때문에 그런 모양의 탑이 있는 성들은 거의 모두 성의 마케팅을 위해 “백설 공주의 성 모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성은 이슬람 세력의 요새였던 자리에 알폰소 6세가 성을 건축한 후 오랫동안 증개축을 반복해왔다. 1862년에는 화재로 많이 붕괴되었던 성을 재건하여 현재는 무기박물관과 왕가의 화려했던 생활을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474년 이사벨 여왕이 즉위식을 올렸던 역사적 사실이 이 성이 지닌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하겠다. 성의 구조는 왕가의 성채와 외부 침입을 방어하는 군사 요새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지하에 비밀 출입구도 많으며, 이 비밀 출입구는 강가나 다른 성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왕이 머물지 않은 16세기경부터는 정문 위에 있는 사각형 탑을 감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성의 내부 박물관 관람을 위한 표는 별도로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맘에 표를 사서 성 내부와 박물관을 다 둘러보았는데, 왜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내부와 박물관의 콘텐츠가 빈약해서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에서 나와 다시 아소게흐 광장 주차장으로 돌아가 미리 예약한 세고비아 파라도르를 찾아갔다. 파라도르는 세고비아 구시가 건너편에 있는 언덕 위에 있었다. 파라도르와 구시가가 마주 보는 위치로 파라도르 로비에서 바라 본 구시가의 전망이 일품이었다. 파라도르에서 여유롭게 잠시 쉰 후 세고비아 야경을 즐기기 위하여 다시 아소게흐 광장으로 갔다. 세고비아의 저녁거리를 돌아보며 쇼핑도 하고 저녁 식사를 하였다. 스페인 유명 요리인 새끼돼지 통구이 “코치니요 아사도” Cochinillo Asado의 원조가 세고비아이니 기본적으로 음식들이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하지만, 너무 실망스러웠다. 음식 가격이 턱도 없이 비쌌다. 주차료부터 시작해서 관광지 특유의 장삿속에 세고비아의 이미지가 흐려졌다.
파라도르의 로비에 앉아 와인 한잔과 함께 중세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대성당과 알카사르가 있는 세고비아 구시가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을 마무리하였다. 이 순간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언덕과 밤이었다. 이렇게 오늘은 중세의 향기에 빠져 오래전 시간을 넘나드는 행복을 즐긴 하루였다.
내일의 스페인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