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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sta Seo Sep 30. 2018

섬으로 떠난 가을 여행

전남 영광군

 P는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를 보면 엄마 품에 안기듯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살아오며 힘들 때는 바다를 찾아갔었다. 바다에 가서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속에서 새로운 의욕이 솟구쳤다. 젊은 시절 인생에 대하여, 사회정의에 대하여 고민할 때 도 그랬고, 사랑의 상처가 아물 때도 그랬다. 사람과 삶에 지쳐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을 때 P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바다였기에 P는 우리에게 환한 웃는 얼굴로 다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술을 한잔하면서 P는 자신이 신화시대에 태어났다면 “포세이돈”의 자식으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하면서 한바탕 “바다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 P였기에 불쑥 다가온 가을을 맞이하러 섬으로 여행을 간다고 한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에게 섬이야말로 친정 같은 바다의 편암함에 파도를 타고 넘어오는 가을날의 햇살과 바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P가 가고 있는 곳은 서해바다 전남 영광군 향화도항에서 30여 km 떨어져 있는 송이도라는 자그마한 섬이다. 호젓하게 가을을 탈 수 있는 작은 섬을 찾다가 해양수산부가 아름다운 어촌으로 선정한 송이도를 발견하게 되었다. 소나무가 많고 섬의 모양이 사람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섬의 이름이 송이도(松耳島)라고 한다.

송이도 도착 전 배에서 바라 본 섬의 전경

 P가 송이도로 가는 이 배를 타기 위해 향화도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칠산 타워라는 높이가 111m로 전라남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영광군 9경 중 ‘영광 4경’으로 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확 트인 앞바다와 영광군의 육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 이곳에서 맞이하는 노을의 붉은빛 잔치는 여행객들로 하여금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전망대에 올라가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칠산 타워 와 타워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서해
건설중인 칠산대교와 전망대에서 본 전경

 향화도항에서 송이도로 가는 배 칠산 페리호는 오전 8시와 오후 2:30분 두 차례 운항하고 있다. 거꾸로 송이도에서 향화도항으로 오는 배 역시 오전 9:50과 오후 4:20분 두 차례 운항한다. 향화도항에서 출발해 송이도까지 대략 1시간 30분 정도의 운항시간이 걸리니 같은 배가 하루에 두 차례 왕복 운항을 하는 것이다.

향화도항에서 송이도로 가는 칠산페리호

 배가 향화도항을 출발해 넓디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P는 배의 2층 후미 갑판으로 갔다. 배의 스크루가 만들어내는 포말과 바다 수면 위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지나온 흔적들을 바라보면서 P는 오늘 지내온 시간들을 하나 둘 되짚었다.

송이도 가는 뱃길 풍경

 P가 영광군에 와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영광 법성포의 ‘영광 2경’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였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로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북중국 전진(前秦)에서 들어온 경로와 백제 침류왕 때 남중국 동진(東晉)에서 들어온 경로의 두 가지 경로로 전래되었다. 영광 법성포는 마라난타 존자가 남중국 동진(東晉)에서 해로를 통해 백제에 올 때 최초로 당도하여 불교를 전파한 곳이다. 지역명도 백제시대 때 지명은 ‘아무포(阿無浦)로 ‘아미타불’의 의미를 함축한 명칭이었는데 그 후 ‘성인이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으로 법성포(法聖浦)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불교문화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곳이며 명소에 걸맞게 잘 조성되어 있었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기념물
백재불교 최초 도래지 중심과 사면대불상
참배 및 조망용 누각 "부용루" 밑 부분에 부처님의 일대기가 23면에 부조 조각되어 있다.
간다라 유물관
탑원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영광 7경’인 “숲쟁이 공원”이 있다. 조선시대 때 축조된 토성으로 수군이 주둔하면서 세곡 창고를 지켰던 곳이다.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뤄 ‘숲으로 된 성’이라는 의미의 ‘숲쟁이’로 불리는 이곳에 올라가면 법성포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인다. 한국의 10대 아름다운 숲에 선정되기도 했던 공원 숲길을 걸으면 초록 내음과 함께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숲쟁이 공원
숲쟁이 공원에서 본 법성포 시내
숲쟁이 공원 산책 길

 법성포에 왔으니 식사를 조기와 게장으로 차림상을 해주는 ‘풍성 한식당’으로 갔다. 바닷가 옆이다 보니 해물 반찬들이 정갈스럽게 많이 나왔다.

 점심 반찬으로 나온 보리굴비를 먹을 때 P는 지난여름 녹차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를 맛있게 드시던 노부모님이 생각났다. 마침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법성포의 굴비 판매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가 있었다. P는 노부모님을 생각하며 보리굴비 한 꾸러미를 샀다. 산지라서 그런지 가격도 도시에서 사는 것에 비하여 싼 편이었다.

풍성 한식당 건물과 차림상, 상가 굴비

 77번 국도를 타고 가다 만나게 되는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의 16.8km 해안도로가 “백수해안도로”라고 하는 ‘영광 1경’에 해당하는 볼거리다. 해안도로와 기암괴석, 광활한 갯벌, 붉은 석양 등이 연출하는 서해안의 대표적 드라이브 코스다. 해안도로 아래로 목재 데크로 조성된 2.3km의 ‘해안 노을길’이 있는데 바다 가까운 곳으로 걸으면서 서해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산책길로 되어 있다.

백수해안도로 풍경

 “뿌우~”하는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P가 고개를 돌려 뱃머리 방향을 보니 노란 해변을 끼고 있는 작은 섬이 보였다. 객실에 누워있던 승객들도 하나 둘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영광 8경’ “송이도”에 다 온 것 같았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해 내리자 선착장 오른쪽으로 조약돌(몽돌)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배가 도착하기 전 바다에서 보았던 마을 앞의 노란 해변이 모래가 아니라 조약돌이었다. 오랜 세월 파도가 만든 부드럽고 동글동글한 모양의 조약돌들이 1km 정도 해변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30 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여름철이 지난 후에는 여행객들도 오지 않아서인지 마을이 한적했다. 담벼락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와 정자 밑에 옹기종기 모여 방금 섬에 들어온 외지인을 경계의 눈초리로 보는 고양이들만이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송이도에는 펜션이 두 곳 있다. P는 그중 한 곳에서 오늘 묵을 계획이다.

 펜션 외에도 해변가 소나무 밑에 텐트를 쳐서 야영할 수 있는 데크 시설도 되어 있다.

송이도 조약돌(몽돌) 해변 풍경

 선착장 옆으로 있는 몽돌 해변의 반대편에는 넓디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P에게 가을날 오후의 갯벌은 빛바랜 누런 영상처럼 P의 지나온 시간들이 조각 나 뿌려져 있는 곳이었다. P는 맨발로 그곳을 걸으며 조각 나 있는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였다. 많은 얼굴과 그리운 이들이 떠올랐다. 한참을 그렇게 갯벌을 걸으며 조각난 시간을 붙이는 가을의 오후를 보내던 P는 불현듯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지……

송이도 갯벌

 파도에 실려오는 바닷가의 가을바람이 모래 해변으로 불어오면 황폐한 느낌이 든다. 이곳 송이도의 조약돌(몽돌) 해변에 앉아있는 P에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따스한 기운으로 P에게 다가왔다. 조약돌들 사이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파도 소리와 돌들의 굴름 소리가 P안에 있는 외로움을 씻어 내주었다. 그리고 씻어낸 빈자리는 ‘가을날의 행복’이라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졌다.

조약돌 (몽돌) 해변의 가을 맞이

 섬으로 떠난 가을 여행에서 ‘가을날의 행복’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고 돌아온 P가 섬 여행의 느낌에 대해 나에게 해준 말은.....

“너무 그렇게 자신을 옭아매지 마....  행복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더라고.....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홀로 호젓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와봐.....  그게 자기를 사랑하는 출발점이 될 거야……”


 ◆    칠산 타워: 영광군 염산면 향화로 2-10   TEL 061-350-4965

 ◆    향화도 칠산 페리 매표소: 061-353-4277

 ◆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영광군 법성면 백제문화로 203   TEL 061-350-5999

 ◆    숲쟁이 공원: 영광군 법성면 백제문화로 203

 ◆    풍성 한식당: 영광군 법성면 법성포로 3길 60.   TEL 061-356-0733

 ◆    백수해안도로: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957   TEL 061-350-5600(노을 전시관)

 ◆    송이도 흰 몽돌 송비치 하우스 061) 352-1935

 ◆    송이도 송이섬 펜션  061) 35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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