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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sta Seo Oct 02. 2018

미술관으로 떠난 가을 남도여행

전남 영암, 목포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한 곳인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건너편에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다. 이 미술관은 개인이 컬렉션 한 작품들을 정부에 기증하여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티센 남작이 스페인 정부에 작품들을 넘기면서 맺은 계약 조건은 작품을 한 곳에 모아 놓을 것, 작품을 되팔지 않을 것, 늘 대중이 다가오기 쉽게 할 것의 세 가지였다고 한다.

 이곳을 관람했을 때 누구나 쉽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과 국가, 사조 별로 잘 구분해서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그곳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굳이 어느 나라 그림의 특징, 무슨 무슨 파의 성격 등에 대한 설명을 몰라도 전시 작품들을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라 별, 사조 별 그림의 성격과 특징을 깨닫게 될 정도였었다.

 그런데 이제 그곳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2018년 가을의 남도는 붉은색 꽃 잔치와 수묵의 텁텁한 향에 파묻혀 난리가 아니다. 바로 “2018 전남국제수묵 비엔날레” 와 가을의 꽃 “꽃무릇”이 연출하는 붉은 물결 때문이다.

목포시 목포문화예술회관

 우리의 전통 회화는 벽화 양식이었던 채색화와 채색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적용되어 동양회화 고유의 특징인 종이나 비단, 붓, 먹 등 전통의 재료, 기법으로 그린 수묵화의 두 종류로 맥을 이어왔다. 이중 수묵화는 고려시대부터 그리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이르러 우리의 독자성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회화로 인식되어 장려되었고, 전통 수묵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수묵화는 정신적인 표현과 관념을 강조하면서 여백과 선을 중시한다. 명암을 표현하지 않고 먹의 농담(청렴과 단순성의 정신) 만으로 절제된 표현을 하는 장르이다. 이점이 서양화와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런 수묵화의 전통을 가장 잘 지켜온 고장이 대한민국 남종화의 화맥(畵脈)이 시작된 전라남도 지방이다. 그래서 전라남도에서는 수묵의 대중화, 브랜드화, 미래가치 개발을 통해 세계 수묵의 중심이 되기 위하여 이번에 “오늘의 수묵 어제에 묻고 내일에 답하다”라는 주제 하에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를 2018.09.01 ~ 10.31까지 개최하고 있다. 단지, 한 개 도시에서 하는 행사가 아니라, “전통 수묵의 재발견”이라는 테마로 진도 운림산방에서, “현대 수묵의 재창조”라는 테마로 목포의 3개 전시관에서 하는 대규모 지방 행사이다. 또한 행사 기간 중 10개의 각종 부대 행사가 지역에서 열린다. 명실공히 남도 지방을 대표하는 국제 규모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행사 기간 중에는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목포역에서 행사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또한 KTX 탑승권과 입장권을 결합한 자유여행 상품권을 판매하며, 입장권을 사전 예매할 경우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티켓링크에서도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www.sumukbiennale.org


 목포에 있는 비엔날레 1관 목포문화예술회관(구 갓바위미술관)에서는 “수묵의 경계”를 주제로 전통 수묵 작품들과 새로운 해석에 의한 현대 수묵 작품들, 장치 미술과 결합된 새로운 수묵의 표현 작품들, 세계 각국 주요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비엔날레 2관인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에서는 “수묵의 숲”이라는 주제로 실험적 수묵 작품들의 전시와 대형 수묵 설치, 특화된 전시장 구성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비엔날레 3 관인 목포여객선터미널갤러리에서는 “종가의 향기”를 주제로 전남 종가의 전통과 스토리를 정리하고 전경을 수묵으로 그려 전시한다.

 진도 지역에서는 “전통 수묵의 재발견”을 대주제로 비엔날레 4 관인 남도전통미술관(운림산방), 비엔날레 5관 금봉미술관(운림산방), 비엔날레 6관 옥산미술관(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전시회가 열린다.


 모든 전시장에서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하루 5회(단체 20명 이상의 경우 신청에 의하여 수시로)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수묵화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에 절대적 도움이 되니 가능하다면 꼭 이용하길 강추한다.

전시실 중앙 걸개,                                 내가 설명 들은 도슨트. 이분 덕분에 수묵화에 대한 이해가 잘되었다.

 2018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1관인 목포문화예술회관으로 가는 길에 가을비가 살짝 내렸다. 수묵화와 살짝 내리는 가을비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묵화에 대해 잘 몰라서인지 목포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번 행사와 작품들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여러 가지 떠올랐다.

 ‘수묵화의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작가와 관객이 소통을 할까…

 수묵화에서 예술적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대중과의 소통을 넘어선 예술적 가치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나…

 다른 매체나 영역과의 융합은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


 전시실 앞에는 해당 전시실 주제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대표 작품을 전시해 놓아 전시실의 성격을 미리 알 수 있게 해 놓았다.

 제1전시실 <자연의 서정을 재현하다> 수묵 재료로 자연의 모습들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며, 작품의 섬세함이 놀랍다. 이이남 작가의 ‘수묵의 빛’은 전통 수묵과 디지털이 만남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조망을 내다보고자 하는 작품으로 전시실 앞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경화 작가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먹을 칠한 후 마르면 그 위에 덧칠을 계속하는 적묵법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을 중후하고 깊게 해주고 있다. ‘박태후 작가의 ‘자연 속으로’는 나무를 그린 붓의 힘과 꽉 채운 크고 작은 붉은 잎들에서 자연의 절대적 힘을 느낄 수가 있다. 버드나무 아래 동백꽃 같은 붉은 잎들이 인상적…

제1전시실 앞 이이남 작가 '수묵의 빛'
정경화 작가 '별이 빛나는 밤에'
박태후 작가 '자연 속으로'
자연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제1전시실 작품

 제2전시실 <수묵 표현의 진폭> 수묵화 작업이 평면의 종이에 한정된 것이 아닌 공간 확장을 이루면서 전통을 뛰어넘은 수묵화의 다양한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실험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임현락”의 “호흡-1초” 는 1초라는 시간 동안 한 번에 뻗어 내리는 붓질에 담겨있는 작품을 통해서 1초에 담겨있는 상대적 개념의 시간 길이를 각자의 호흡과 대비해서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현대 미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수묵화의 전위적 작품성에 놀라웠다.

임현락 작가 '호흡-1초'

 제3전시실 <기운의 가시화> 수묵화의 전통 중 하나인 형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들이 내면에 지니고 있는 기운, 생명력 등을 가시화한 작품들이 있다. 서양화에서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작가가 보는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상징들을 통해 강조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묵화의 모습으로 과장되고 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린다. 작품에서 현실과 다른 모순을 발견하게 되고 그 차이에 대해 개인이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작품의 깊이가 다르게 보인다.

임진성 작가 '부유하는 몽유금강'
장안순 작가 '갈대-재즈'

 제4,5 전시실 <동양 3국 수묵의 해석> 전혀 다른 문화와 방향으로 표현되는 중국,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동시대 각국의 수묵이 어떻게 계승, 변형되어 가고 있는가를 조망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마련된 공간으로 대만 작가의 작품은 중국에 포함시켰다. 중국 李广平(Li Guangping) 작가의 ‘寒山’은 조선시대 사회상을 그린 우리 그림들이 떠오른다. 외설과 예술 사이, 생활의 소재를 그린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대만 작가 莊連東(Chung Lien Tung)의 작품은 대만의 특징인 불교를 기본으로 도교, 민간 신앙 등이 혼합된 그림 작품이다. 일본 작가 Kira Yoshie의 ‘件 (Kudan)’은 일본 전설 속의 사람과 소가 합쳐진 괴물을 그린 것이다. 신화나 전설 등의 소재를 작품으로 표현한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적인 현상인 것 같다.

李广平(Li Guangping) 작가 ‘寒山’
莊連東(Chung Lien Tung)
Kira Yoshie  ‘件 (Kudan)’

 제6,7 전시실 <서체적인 수묵 추상화>  본래 서예와 그림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수묵화 작가들은 모필의 기세를 극대화해서 선으로만 남는 추상적인 회화를 추구하기도 하고 단출한 선 하나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표현하였다. 그것은 다분히 서체적인 선이고 추상화된 선이자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지를 함축하는 선이기도 하다. 그런 작품들의 공간이다.

서체적인 수묵 추상화 전시실 작품들

 전시장에서 나오자 가슴이 벅찼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수묵화의 세계에 고스란히 빠졌다 나온 이 마음의 풍요로움. 자연과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경험한 후 내 안의 세상은 얼마나 넓어졌을까!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멋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이제 마드리드의 시민들도 부럽지 않다. 단언컨대 이번 가을의 이 전시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2년 내내 정말 후회할게 될 것이다.


 이 지역 비엔날레 전시장을 오기 전이나 비엔날레 감상을 마친 후 가까이에 있는 영광의 불갑사도 함께 둘러본다면 이번 가을의 풍요로움이 배가 될 것이다. 일생에 한번쯤 영화 배우가 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불갑사의 붉은 꽃물결 레드 카펫을 밟아보는 호사를 누려보자.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이즈음에 출사를 많이 올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니 자연의 가을을 누리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영광 불갑사 꽃무릇

 나에게 2018년 가을은 꽃무릇과 수묵화의 추억으로 기억에 남을 것 이다. 벌써 2년 뒤의 비엔날레가 기대된다. 서양화와 비교하여 맛이 깊고 신선했던 수묵화 세계로의 가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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