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름 렌터카 여행 이야기 #1 삿포로
뜨거운 태양에, 끈적거리는 습기까지 더해져 사람을 지치게 하는 여름 장마가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여름철이면 나타나는 열대야 현상은 이제는 당연한 여름철 기후가 되어버렸다.
‘후~ 진짜 짜증 난다. 이놈의 습기만 좀 없어도..... 살 거 같은데.... 어디 습기 없고, 덥지 않고, 선선한 곳 없나?'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었다. 다가올 여름 더위를 피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여기저기 인터넷 써칭을 하면서 찾아낸 곳이 홋카이도였다.
'그래! 여기 정도면 지금처럼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덥지는 않을 거야...... 뭐 블로그에 나타난 경험자들의 말도 그렇고.... 오키! 올여름은 여기로 가는 걸로 하자.'
혼자서 먼저 마음의 결정을 한 후, 그날 저녁 아내에게 여름 여행으로 홋카이도가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아내도 흔쾌히 동의하였다. 아내 친구들도 이번 여름에 홋카이도 여행을 간다고 하면서.....
그렇게 쉽게 2017년 여름 여행지는 결정되었고, 7월은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한 달이 되었다.
7월 하순에 들어서자 올여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 때문에 인천공항 이용객 수가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언론에서는 연일 난리였다. 마침 우리가 홋카이도로 출발하는 날도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공항이 붐빌 것을 우려하여 다른 여행 때와 달리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집에서 일찍 나와 출발하였다.
공항에 도착한 후 먼저 항공 티켓을 발권받았다. 여행 가방을 탁송할려는데 무게가 한도를 초과했다고 서비스 데스크에서 추가 요금을 달라고 했다. 저가항공이기 때문에 무게 한도가 15kg이었는데, 근거 없이 혼자서 짐작한 무게 한도 20kg에 맞춰 가방을 쌌던 것이 원인이었다. 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화물로 보내려는 가방을 열어 배낭과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가방에 짐을 나누어 담았다. 그러고 나서야 여행 가방의 화물 무게 한도를 겨우 맞출 수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구글맵을 사용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출발 며칠 전 업체에 신청했던 "와이파이 도시락"을 받으러 1층에 있는 업체 데스크에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아내와 함께 출국심사대에 새로 생긴 "자동 심사대"를 이용해 여권 확인, 지문 인식, 사진 촬영의 간단한 출국심사를 마친 후 지정된 탑승 게이트로 갔다.
탑승 게이트로 가는 중 ‘타투 프로모션’ 행사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대기 줄에 서서 10여 분을 기다린 후 태어나 처음으로 내 팔에 타투를 그려 넣었다. "Lucete Celse" "고귀하게 빛나라"라는 뜻의 라틴어란다.
몇 년 전 저가항공을 이용했을 때의 경험이 있어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라운지의 유명 빵집에서 빵과 커피 등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2시간 30여 분의 비행 끝에 드디어 홋카이도의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 중 기내에서 제공받아 미리 작성해둔 ‘일본 입국 신고서’를 입국심사를 받을 때 여권과 함께 제출하였다. 심사관이 몇 가지를 물어본 후 신고서를 다시 작성해 오라고 하였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대강 눈치를 보니 체류할 주소지를 적은 것이 문제가 된 거 같았다. 새 입국 신고서에 체류할 주소지로 삿포로에 예약한 "에어비엔비" 숙소 주소를 적었다.
두 번째 심사를 받을 때는 적극적으로 담당 심사관에게 "에어비엔비"에서 예약한 숙소를 이용한다고 말하였다. 삿포로의 예약한 집 호스트 전화번호를 적어준 후 입국 심사를 통과하였다.
심사대를 통과한 후 아내를 찾으려고 주윌 둘러보니 옆에 있는 심사대에서 아직도 심사를 받으면서 쩔쩔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심사했던 여자 심사관에게로 다시 되돌아가서
“저쪽에 심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나 와 함께 여행할 내 아내다.”라고 말했다. 그 여자 심사관이 심사관 부스에서 나와 아내를 심사하고 있던 심사관에게 직접 가서 무언가 말을 한 후 아내도 입국 심사를 통과하여 나왔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여행 오는 곳 이어서 인지 일본인들의 문화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럽이나 중국 등을 갔을 때 느껴졌던 괜히 긴장되거나 경직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수하물로 보낸 가방을 찾아 입국장으로 나오는 곳에,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피켓 중 우리를 픽업하기로 되어있는 ‘혼다 렌터카’ 피켓이 보이질 않았다. 건너편에 있는 기념품 판매 가게로 가서
“혼다 렌터카 서비스 데스크가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렌터카…….” 하더니 밑의 1층 ‘렌터카 인포메이션’으로 가라고 알려 주었다.
1층 “렌터카 인포메이션”으로 가서 “혼다 렌터카” 예약자라고 말하니 예약자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한 후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몇 분 후 연세가 좀 드신 일본인 할아버지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그때서야 나는
‘아…… 렌터카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픽업의 의미가 공항에서 렌터카 사무실까지 데리고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홈페이지에 “렌터카 인포메이션”까지 찾아오라는 안내를 해줬으면 더 편했을 텐데...'
픽업 온 할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렌터카 회사의 소형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하여 ‘혼다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차량 렌트를 위한 절차와 비용 결재를 한 후 ETC 카드, 외국인 전용 HEP 카드까지 요청하였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차를 반납할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때 일본인 직원과 외국인 전용 HEP 카드에 대한 의사소통이 정확하게 되질 않았다. 나는 여행 오기 전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신청 한 대로 “외국인 전용 정액 HEP 카드” 기능이 되는 ETC 카드를 꽂은 줄 알고 여행 기간 중 유료도로 이용료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한 마음으로 ‘룰루랄라’ 맘껏 다녔는데……
직원이 차에 직접 ETC 카드를 꽂아주면서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차에 있는 내비게이션 사용법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출발을 위하여 첫 번째 목적지 숙소 전화번호를 입력하였는데 내비게이션에 데이터가 없다고 나왔다. 일본어를 몰라 주소지를 입력하는 방법도 몰랐다.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다시 렌터카 사무실로 돌아가 직원에게 내비게이션이 전화번호 장소 인식을 못 한다고 하였다. 직원이 전화번호를 확인하더니 내가 알고 있는 전화번호는 핸드폰 번호라서 인식을 못 한다고 하였다. 직원이 예약한 삿포로 숙소의 주인과 통화를 한 후 정확한 주소를 적은 메모지를 가지고 차로 와서 주소를 입력하여 첫 번째 목적지를 설정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일본에서의 첫 운전이었다. "일본에서의 운전요령" 동영상을 미리 보고는 왔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많이 긴장되었다.
‘무조건 왼쪽으로 붙여야 한다.’ 고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면서 운전을 했다. 그래도 걱정했던 거보다는 빠르게 적응이 되었다. 다만, 윈도 브러시와 방향등 작동 바가 우리나라 차와 반대로 붙어있어서 이 부분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가장 적응이 안 되는 차이점이었다.
차를 받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던 렌터카 회사 주차장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 같은 삿포로의 뽀송뽀송한 공기가 느껴졌다. 더위를 피해 제대로 여름 여행을 왔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목적지 근처에 도착하여 골목으로 들어가니 숙소 예약 페이지에서 보았던 사진과 비슷한 느낌의 아주머니 한분이 골목길을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저분이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의 주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세우고 내리니, 아주머니도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영어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물어보니 우리가 예약한 숙소의 주인이 맞았다. 아주머니가 안내해주는 집 옆의 공터에 차를 주차한 후 오늘 묵을 방 안내를 받았다. 마룻바닥 위에 정통 일본식 다다미가 깔린 깨끗하게 정돈된 방이었다. 내부시설을 사용하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차에 있는 짐을 방으로 옮겨놓고 삿포로 시내 구경을 위하여 바로 숙소를 나왔다.
출발 전 위치 입력을 위하여 집 전화번호를 물으니 일반전화 없이 핸드폰만 사용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대안으로 집 옆에 있는 음식점 전화번호를 알려 주어 그 번호를 메모해 가지고 나왔다.
여행 계획에 따라 제일 먼저 삿포로 시내의 "오도리 공원"으로 갔다. 이미 해는 져서 어두워진 저녁이었다. 공원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 공원 근처의 도로 옆에 있는 기계식 주차장 주차 요금 안내판이 우연히 보였다. 순간적으로 내가 알고 있던 일본의 주차요금보다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운전이라는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빨리 주차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는지 순간 좌회전하여 그곳 기계식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주차를 시킨 후 나오면서 안내판을 다시 자세히 보니 내가 요금을 잘못 본 것이었다. 주차 요금이 30분에 400엔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주차할 시간을 최대 3시간으로 예상하였을 때 주차 요금만 2,400엔이었다. 주차 요금 치고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주차장을 나와 공원으로 가던 발길을 다시 돌려 차가 주차되어있는 주차장으로 되돌아갔다. 차라리 지금 30분 요금을 지불하고 공원 지하의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것이 비용이 덜 나오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차장을 나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주차 요금을 지불하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주차장에 주차한 차 안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던 젊은 남녀가 있어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30분 주차 요금을 계산하고 나와 다시 오도리 공원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때 직원이 영업시간이 10시까지라고 알려 주었다.
오도리 공원은 삿포로 시내 중심에 정방형으로 길게 조성되어 있는 공원이었다. 공원 한편에서는 맥주 축제가 한창이었는데 유명한 삿포로의 맥주 축제답게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 맥주 축제장에서 마지막 주문을 받는 시간이 저녁 8시 30분이고 9시 30분이면 축제 행사장을 닫는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행사장 옆을 지나쳐 시내 중심지로 걸어갔다.
스스끼노 거리를 지나 저녁 식사로 라멘을 먹기 위하여 ‘라멘 공화국’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차량 도로의 차 출입을 막고 전통 축제 같은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삿포로의 8월 “여름 축제” 행사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차전놀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채 어깨 위로 여러 개의 나무 기둥을 받쳐 들고 나무 기둥 위로 나무 판을 깔고 그 위에 조형물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두세 사람이 올라가 무리를 이끌어 가는 놀이 형태였다. 자세히 보니 남자와 여자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나라 차전놀이처럼 서로 부딪혀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구호에 맞추어 행진을 하고 있었다.
도로 옆의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간이 의자에 앉아 맥주와 꼬치 등을 먹으며 떠들고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도시의 활기와 열기, 생동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작은 라멘 집이 양 옆으로 죽 늘어서 있는 골목길로 갔다.
천천히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마침 손님이 한 명 밖에 없어 여유가 있어 보이는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간장 라멘과 미소 라멘 두 가지를 시켜서 맛을 다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나눠 먹었다.
이곳 라멘은 오사카 나 도쿄에서 먹어 본 라멘과는 우선 면발에서 차이가 났다. 이곳의 면발이 기름에 튀긴 것처럼 쫄깃쫄깃하면서 우리나라 라면처럼 꼬불꼬불한 것이 우리 입맛에는 더 맞는 것 같았다.
라멘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각종 상점과 빌딩들, 네온사인, 트램 등 삿포로의 도심 야경을 즐기면서 다시 오도리 공원으로 돌아왔다. 공원 지하 공영 주차장에서 나와 삿포로의 야경을 높은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모이와야마 전망대”로 갔다.
“모이와 주후쿠”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 전망대 밑의 매표소에 도착하였을 때가 9시 50분경이었다. 그런데 전망대로 갈 수 있는 입장표를 파는 마감 시간이 9시 30분이었다. 할 수 없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삿포로의 야경을 포기하고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 숙소로 갔다.
숙소로 오는 길에 집 근처에 있는 ‘세븐일레븐’에 들려 필요한 물과 과자를 샀다. 나중에 대형 마트에서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샀다.
방으로 들어와 짐 정리를 하는데 벨 소리가 울려 문을 여니, 주인아주머니가 체리를 가지고 오셨다.
“여기 옆방에 묵고 있다가 오늘 저녁에 떠난 한국인 부부가 가면서 우리에게 주라고 했다.”면서 가지고 온 체리를 주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따스한 마음에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후 먹거리를 사기 위해 들른 대형 마트에서 팔고 있는 체리 가격을 보곤 깜짝 놀랐다. 양은 조금인데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7,000 ~ 8,000원 정도 하였다. 여행 기간 내내 체리를 볼 때마다 삿포로를 떠나면서 보내주신 얼굴도 모르는 그분들의 따스한 마음이 생각났다.
이렇게 홋카이도에서의 첫날은 따스한 사람 내음 나는 일로 마무리되었다.
<첫째 날 이동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