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던 브랜드가 정말 나만 알고 끝나게 되었을 때
바디수트를 알게 되자 점점 해외 브랜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익숙한 아이템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란제리 시장이 탄탄한 유럽이나 일본에서 내놓는 제품들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기에 충분했다. 과감한 디자인과 컬러, 각 나라마다 계절감에 맞는 다양한 원단이 사용되어 이런 제품을 편하게 사입을 수 있는 그 나라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러다가 한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브랜드인 만큼 특유의 시크하고 무심한 감성이 듬뿍 묻어나면서도 자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애써 예뻐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화려한 맛은 없지만, 디자인과 소재에서 오는 무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확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컬렉션들을 구경하다가 창업자 히스토리를 살펴보니, 뉴욕 음악 업계에 있다가 돌아온 창업자가 프랑스 전통 란제리에 본인이 경험한 다양한 문화를 섞어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브랜드였다.
유럽 브랜드인 만큼 확고한 환경보전 철학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소재와 제조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고, 여성의 몸을 억지스럽게 보여주려는 모습보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룩북이 인상적이었다.
사고 싶은 아이템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처음 보는 브랜드이고 다소 덜 알려진 브랜드이기에 너무 큰 리스크를 질 수는 없어서 잘 입을 것 같은 바디수트 2개를 구매했다.
그리고 기나긴 해외배송 기간을 기다려 받아본 제품은 더 사지 못한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원단, 유니크하지만 감탄이 절로 나오는 디자인, 내가 기존 바디수트에 기대했던 라인정리나 몸을 잡아주는 탄탄함이 없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마음에 들었다.
더운 여름에 만났던 브랜드가 연이어 내놓은 fw 컬렉션은 더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고 넘치는 영감을 받으며 나도 나만의 브랜드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브랜드가 어느 순간 활동을 멈췄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구매자들의 항의 댓글이 올라왔고 한동안 바빠 들어가 보지 못했던 웹사이트에는 80% 이상 할인을 하고 있는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깜짝 놀라 DM을 보냈다. 먼 타국에서 당신의 브랜드를 애정하는 사람인데 더 이상 제품을 구매할 수 없는지 물어봤는데 대답은 없었다.
많이 놀랐고 속상했다.
남편에게 이 소식을 털어놨을 때 프랑스 경제가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는 얘기를 했다. 글쎄, 이게 단지 그렇게만 해석할 문제일까.
나만 알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마음을 한순간에 확 사로잡았던 브랜드가, 앞으로 어떤 컬렉션을 만들어 낼지 생각만 해도 설레는 브랜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브랜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늘 고민이 되는 부분은 내가 원하는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 그 사이에서의 적정선을 찾는 것이다. 쇼핑몰을 하지 않고 디자이너 브랜드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은 대중의 눈보다 나와 핏이 맞는 사람들을 찾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 말은 비록 많은 수의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그중에서 나의 브랜드를 알아봐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충분하다는 얘기와도 같다. 하지만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보자면 디자이너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할 만큼의 충분한 수익은 나와야 한다.
한국에서 익숙하지 않은 바디수트라는 아이템을 들고, 큰 기업도 아닌 1인 사업자인 내가, 브랜드를 만드는 이 프로젝트가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거듭한다.
빅 팬이 존재해도 그 한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기에 결국은 브랜드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대중이 좋아하는 무난한 아이템이라는 말이 있듯이 적절한 타협은 필수일지도 모른다.
시작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으로 해서 잘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풀어내면 된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스몰브랜드의 운명은 한 시즌으로 끝날 수도 있기에 그런 방향으로는 원하는 것을 풀어내는 시작조차 못할 수도 있다.
아마도 베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대중도 좋아할 수 있도록 잘 풀어내는 것.
대중의 눈에는 맞지 않더라도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아이템으로 만드는 것. 어쩌면 문화를 만드는 것.
선택의 정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길 바라며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