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수트를 만들게 된 이유
바디수트를 만들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고 이렇게 묻는다.
"왜 바디수트를 만들어? 그건 누가 입어?"
솔직히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기 전까지 이런 질문이 돌아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자연스러우니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자연스러울 줄 알았다. 이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 달에는 연달아 굵직한 커뮤니티와 지인들의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퇴사 후 근황을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얘기도 나왔다.
재밌는 게 '브랜드'라는 단어에는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였다가, 아이템이 '바디수트'라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렇게까지 낯선 제품이란 말인가.
하나의 모임이 아닌 다른 모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팔리지도 않을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지금 멈추면 되지 않을까? 딱히 잃을 것도 없잖아"
아이템을 전면 수정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럼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오면 더 잘 팔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애초부터 대체 왜 바디수트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까?
내면 깊숙이 까지 수차례 질문을 던지다가 왜 바디수트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는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2021년, 사랑스러운 쌍둥이를 출산했다.
그전에 엄청 예쁜 몸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체질상 뱃살이 잘 붙지 않는 편이라 하의를 입을 때 큰 고민 없이 입을 수 있었다. 밥을 많이 먹어도 오래 앉아 있어도 복부의 불편함은 딱히 느끼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나니 내 배는 완전 다른 배가 되어있었다.
일단, 복부의 둘레 자체가 매우 커졌다. 이건 살과는 다른 문제였다.
임신기간 중 배가 커지면서 함께 벌어진 갈비뼈는 출산 후에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흉통 사이즈를 줄여 준다는 필라테스 호흡법도 열심히 따라 해 보고, 복근운동도 열심히 해보았지만 복부 전체의 사이즈는 좀처럼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덕분에 몸무게를 임신 전으로 되돌려도 예전에 입던 하의는 맞는 게 없었다.
있어도 예쁘지 않았다. 힘겹게 잠긴 하의 위로 뱃살이 흘러내렸으니까.
이전의 옷들을 다 갖다 버리고 새로 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변해버린 몸에 맞춰서 옷을 사면 마치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맞지 않는 옷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연히 집 앞에 신규 오픈한 무용학원이 눈에 뜨였고 힘든 육아 중 잠시나마 쉴 곳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등록을 했다.
처음엔 어색하고 뚝딱였지만 어느새 너무 행복해하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춤추는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러다 하루는 이 행복의 원인이 문득 궁금해졌다.
춤출 때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한 걸까?
생각해 보니 몸을 움직이면서 생기는 희열이 엄청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무용할 때 거울 속 나는 그저 아름다운 선율 속에 자유롭게 몸을 맡긴 한 사람으로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는 그냥 예뻐 보였다.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의 몸 자체가 세월을 뒤집을 수 없다면 레오타드라는 치트키를 써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이때부터 나는 레오타드를 그냥 아무 때나 입었다.
출근할 때도 입고 친구를 만날 때도 입고 집에서도 편하게 입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레오타드는 화장실에 가면 볼일을 보기 위해 상의부터 탈의를 해야만 했다.
추운 겨울 상가 화장실이라도 사용하게 되는 날은 무슨 극기훈련이 따로 없는 기분이었다.
좋은 대체제가 없을까..
그러다가 바디수트를 만났다. 레오타드와 동일한 형태이지만 아래 스냅버튼이 달려있어 화장실 갈 때도 굳이 헐벗지 않아도 되는 옷. 그 옷을 찾았다.
그래서 내가 만들 바디수트는 아메리칸 핫걸들이 입는 옷이 아니다.
그렇다고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맞춤보정속옷 또한 아니다.
이 바디수트는 여성의 몸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움츠러든 여성의 자존감을 높여줄 든든한 지원군이다.
나는 내 바디수트가 여성들에게 믿는 구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이든,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하는 저녁약속이든 옷장을 열면 제일 먼저 손이 가는 그런 가장 든든한 아이템으로 존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