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나는 바디수트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 초보사장이다.
요즘은 첫 번째 제품 샘플링에 한창 공을 들이고 있는데, 샘플실에 보내기 전 미리 홈바느질로 대략의 제품 형태를 만들어 보고 있는 중이다. 일반적인 의류와 다르게 속옷이나 스포츠 의류 같은 경우에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봉제방법이 사용된다. 몸에 핏 되는 의상이라 신축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일반 미싱으로 직접 테스트해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직접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을 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전에 속옷 디자인 클래스를 들으며 만들었던 브라와 팬티의 경험이 있기에 바디수트도 크게 어렵지 않게 만들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복잡해진 디자인과 소재, 그리고 봉제방법에 대한 차이로 인해 며칠을 고생 중이다. 그 며칠사이 나는 시력과 어깨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꽤나 고된 작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분명 옷을 이렇게 직접 만들어서 입었겠지."
"지금도 한복이나 드레스 같은 특수한 봉제법이 필요한 옷의 경우 미싱보다는 수작업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거구나."
"1:1 맞춤 제작의 비용이 비싼 이유가 희소성이 만든 거품 낀 가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노동의 강도자체가 차원이 다르구나."
"아니, 사실 이런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이건 정성 하나만으로도 비싼 가격이 성립이 되겠다."
의류 스몰브랜드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을 보면 주문제작 형식으로 운영을 하는 분들이 있다.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거라고 보면 되는데 여러 디자인을 뽑아서 샘플로 제작해 마케팅을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사이즈에 맞춰 제작 후 배송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 사이 여러 가지 방법들로 과정을 효율화시켜 두었겠지만 어쨌든 직접 원단을 구입하고 가공하는 작업을 거친 후 한 벌을 완성하여 보내는 작업을 직접 한다는 얘기다.
처음 내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을 때, 목표는 이런 작은 공방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지쳐있던 내 마음이 주말에 속옷을 만들면서 힐링이 되었고, 그래서 남은 날들은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작은 공방 하나를 운영하며 브랜드를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좋아하는 발레복 브랜드 '델라로'가 그런 공방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더욱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직접 브랜드를 만들려 했을 때 처음부터 그런 고가의 상품을 판매할 자신이 없었고 자연스레 대량생산으로 마음이 굳혀졌었다. 물론 내가 아무런 기술이 없던 이유도 한 몫했다.
대량생산을 하는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먼저 디자이너가 스케치 작업을 하고 직접 패턴을 뜨거나 패턴사에게 의뢰한다. 패턴이 나오면 원하는 원단과 부자재 등을 구입해서 샘플을 만들기 위해 샘플실에 의뢰한다. 샘플이 내가 원하는 핏인지 아닌지 확인 후, 패턴 수정을 통해 원하는 핏이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보통 3~5번 정도 반복 후 최종패턴을 확정하고 봉제공장에 제작을 의뢰한다.
스몰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디자인만 직접 하는 경우도 있고 패턴까지 직접 뜨는 경우도 있다. 이때 직접 샘플제작이 가능하면 만들어서 여러 번 피팅작업을 거쳐 최종패턴을 확정할 수도 있는데, 나처럼 속옷브랜드의 경우에는 직접 제작하기엔 봉제난도가 높고 이를 위해 구입해야 하는 미싱의 종류도 다양하기에 대부분 샘플실에 의뢰한다.
그렇기에 사실 나는 샘플실에 의뢰하기 전에 직접 제작을 해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굳이 이 과정을 하는 이유는 직접 만들어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으로만 했던 봉제 순서가 정말로 잘 맞아 들어가는지, 이런 방법으로 했을 때 특별히 문제 될 부분이 없는지(이런 경우는 추후 공장생산 때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다른 방법으로 바꾸거나 그럴 수 없다면 유의 깊게 봐두었다가 생산 시 잘 체크해야 한다) 직접 만들어 보면서 확인을 할 수가 있다.
요즘 브랜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많다. 수익성을 따진다면 당연히 공장생산으로 진행을 해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리스크와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판매를 하지 못할 경우 떠 앉게 되는 재고도 큰 리스크 중 하나이다.
반면 맞춤생산을 목표로 하는 공방을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제품 특성상 직접 봉제가 어려워 샘플실에 맡겨야 진행이 될 거고 그에 따른 비용이 높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봉제를 위한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는 데 필요한 비용이 추가될 거다. 이런 경우 무조건 프리미엄 라인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러 브랜드들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선주문 제작방식을 택한다거나 단가가 조금 높아지더라도 소량생산을 택해 재고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AI의 발전으로 제품 없이도 제품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져서 이미지를 그대로 제품화시킬 수만 있다면 그리고 고객이 제품을 위해 충분히 기다려줄 의지만 있다면 재고리스크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물론 그 사이 디자인카피에 대한 위험은 감안해야 한다.
바디수트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꼭 이루고 싶었던 것은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었다. 나처럼 아이를 가진 여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출산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고통이 아닌 아름다운 과정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여성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을 잃지 않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제품을 준비하면서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사이즈 선택에 대한 문제였다.
이번에 직접 한 땀 한 땀 봉제를 해보면서 단 한 명의 고객의 체형을 생각하며 제품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들어가는 정성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운 제품이 나올 것 같아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속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최근 찾아본 자료 중 홍콩의 한 스타트업이 AI를 활용하여 패턴을 뜨는 작업을 자동화시켰고 스마트팩토리로 바로 전송하여 사람의 손을 타지 않더라도 고객의 체형에 딱 맞는 제품을 바로 공장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일반 의류가 아닌 속옷의 경우 패턴 일률화가 어려운 터라 그레이딩(사이즈에 맞춰 패턴을 조정하는 일) 정도만 자동화를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게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이 고민의 끝이 어떻게 날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이 치열한 고민들이 결국은 좋은 결과물로 나오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