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게 나를 탐구한 시간들
올해 퇴사 후 하고 싶었던 3가지 일에 대해 적어본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aristories/25
1. 브랜드 론칭
2. AI 활용 생산자
3. 개인투자자
이 중에서 가장 가능성은 낮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하고 싶었던 1번을 올 한 해 동안 열심히 도전했다. 그리고 아주 잘 실패했다. 물론 실패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긴 하다. 론칭을 하지 않았기에 시작이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고, 이로 인해 엄청난 금전적 손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그냥 '시도'라는 단어를 쓰는 게 더 맞는 걸까.
어쨌든 정리해 보자면 이런 도전의 과정 동안 금액으로는 대략 천만 원 정도를 썼고 약 9개월이라는 시간이 같이 사라졌다. 대신에 디자인 지식과 기술을 얻었고 패션업계가 돌아가는 과정을 경험했으며 무엇보다 해보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이 일을 대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모습을 마주치기도 하고,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부정하고 싶어도 받아들여야만 할 때도 있다. 올 한 해 동안 새로운 일에 도전했기에 그동안 몰랐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한계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 달 전쯤, 브랜드 준비에 한창일 때 상황이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날 보며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갤럽강점검사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다. 강점검사라... 몇 년 전 회사는 다니기 싫지만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는 감조차 없을 때 해봤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결과가 도무지 와닿지 않아서 결과지를 쓱 본 뒤 바로 삭제해 버렸다. 평소 같았다면 이런 기억으로 다시는 해보지 않을 검사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선뜻 강점순위를 모두 다 알려준다는(약점까지 볼 수 있다는) 가장 높은 금액의 검사를 바로 진행했다.
받아본 결과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왜 내가 이토록 일을 제대로 진행시키지 못했는지, 남들은 쉽게 한다는 일들이 나는 왜 그렇게도 어렵고 귀찮게만 느껴졌는지 검사결과를 받아보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나는 원래 그런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강점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주로 전략적 사고, 아이디어, 영향력, 실행력 등이고 하위권, 즉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은 화합, 적응, 체계 등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무언가를 전략적으로 분석하고 기획해서 새로운 영향력을 만들 수 있는 일을 실행하는 데에는 강점이 있지만, 기존의 체계에 적응하고 그곳에 잘 녹아들어 가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몰랐던 시장에 뛰어들었고 무조건 그래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초반엔 일단 그 시장을 이해하고 따라야만 하는 게 맞는데, 심지어 폐쇄적인 패션업계라 더더욱 필요했던 부분인데 그게 어려웠다. 하면 할수록 비효율의 끝판왕 같은 작업들에 진절머리가 났고 이것을 단지 나의 그릿의 부족으로 받아들이기엔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확인을 몇 번에 거쳐하고 나니 이 길의 끝은 당연히 실패일 거란 확신마저 들었다. 그래서 진행하던 일을 그대로 멈췄다(물론... 벌여놓은 게 많아서 텅 빈 마음으로 꾸역꾸역 수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약점에 해당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렇진 않다. 과거의 나를 돌아봤을 때 약점이었던 부분을 해결했을 때 비로소 더 큰 기회를 얻었을 때가 있었다. 학창 시절엔 영어가 항상 발목을 잡았는데 대학입시까지는 영어를 보지 않는 수시에 올인해서 어찌어찌 패스를 했었다. 그런데 대학에서도 영어를 잘 못하는 건 너무 불편했다. 어쩔 수 없이 어학연수를 가서 한국인과는 담쌓고 지내며 외롭게 버텨내는 생활을 한 결과, 이후 대학원 생활에서는 영어가 오히려 강점이 되어 여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취직을 했을 때도 초반 1년간 약점이었던 코딩을(취업하자마자 선임자가 퇴사해서...) 죽기 살기로 판 결과 퇴사할 때까지 잘 우려먹으며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약점을 극복했던 사례는 나의 약점과 정확히 매칭되는 부분은 아니다. 내가 영어와 코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만약 나의 약점이 없었더라면 더 큰 효과를 거뒀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좋아하는 편이었다면 영어실력도 훨씬 더 늘었을 거고, 기존 체계에 순응하는 편이었다면 코딩을 배울 때 더 깊은 이해로 코딩전문가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의 극복 사례는 남들만큼 끌어올린 수준이지 그걸 뛰어넘는 사람이 되진 못했던 건 사실이다.
대학이나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평가받고 선택받아야만 하는 위치였기에 약점들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퇴사한 지금도 그럴까?
아니, 이젠 그런 단순한 무대 위에 올려진 게 아니다. 평가항목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났다고 선택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각자 가진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가장 잘하는 뾰족한 무언가로 승부를 봐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래서 올해를 보내며 가장 크게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잘하는 것을 더 잘하자'이다.
그래서 내년엔 뭐 할 건데?
내년엔 말 그대로 원래 잘하던 것들을 더 잘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볼 생각이다.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과 노하우를 이용해서 과연 돈을 벌 수 있을지 실험을 해보려고 한다.
원래도 에너지가 분산되면 힘들어하는 편인데 올해는 에너지가 외부로 향해야만 했던 시간들이 많아 체력이나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내년에는 되도록 에너지를 내부로 가져올 생각이다. 사람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선별적으로 가져갈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조건이 맞지 않는 일이라면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은 그냥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둘 생각이다. 그래야 그 마음이 오래가는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좋아하는 일 하나 없는 건 너무 낭만이 없으니까.
*** 이 글을 끝으로 본 브런치북은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시작할 때 15회를 기획했고 연재가 끝나는 동시에 브랜드가 탄생하길 기대했는데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어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또 다른 일이 있을 테니 새로운 얘기로 돌아오도록 할게요.
생각을 가다듬는 데는 브런치만 한 곳이 없는 것 같긴 합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글을 남겨볼 수 있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