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어서 꾸역꾸역 모두 다 해내려고 했던 3가지는 아래와 같다.
1. 브랜드 론칭
2. ai 활용 생산자 되기
3. (적극적인) 투자자 되기
지금은 안다. 꽤나 게으른 나의 성향 상 사실은 이 중 하나도 제대로 해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때는 왜 그랬는지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퇴사 직후라 이전의 삶을 뛰어넘는 근사한 무언가를 개척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던 것 같다.
명확한 수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표면적인 메인업무는 육아였기 때문에 하루 일과 중 육아를 위한 시간은 건드리면 안 되는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육아 외 활용 가능한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무리 애를 쓰고 만들어내도 하루 중 대략 7시간 정도밖에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실 계산해 보고는 꽤 놀랐다.
자, 그럼 어림도 없지만 7시간 모두 온전히 집중을 한다는 가정 하에 3가지 업무를 위한 시간 배분을 해보면, 대략 업무 하나당 2시간 정도가 가능했다.
'세상에.. 하루 2시간 투자해서 할 일이었으면 회사 다니면서 했겠다.. '
아무 쓸모도 없는 이런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점점 더 계획은 극으로 치달았다. 절대적인 시간을 더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줄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며칠 시도도 해봤다. 하지만 수면부족은 낮시간의 집중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퇴사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어난 육아시간이 만든 피로까지 겹쳐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퍼포먼스에 속상했고 우울했다. 뭔가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3가지를 모두 해낼 수 없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화가 났을 뿐 어느 것 하나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다른 누구와 함께 있어도 머릿속은 온통 왜 나는 안될까에 꽂혀있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앞에 두고도 웃지 못했고, 걱정해 주는 남편과의 대화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그렇게 한 달여를 고군분투하다가 문득 내가 왜 이 3가지에 이토록 집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일들인가? 왜 서로 성격도 다른 이 3가지 업무를 한 번에 다 이뤄내고자 하는 걸까?
먼저 첫 번째, 브랜드론칭은 이유불문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늘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이왕 하는 거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퇴사 전부터 준비해 왔던 부분이기에 이건 퇴사 후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ai 활용 생산자는 왜 되고 싶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회사 다닐 땐 정보보안 이슈로 인해 인터넷피씨 사용이 쉽지 않아 ai 발전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늘 있어왔다. 그래서 퇴사를 하게 되면 ai를 마음껏 활용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퇴사 후에는 여러 ai 모델을 사용해 보았고 떠오르고 있는 ai 에이전트에 대해 흥미를 가지면서 간단한 자동화나 웹사이트 제작 등을 해보기도 했다. 그동안 컴퓨터 언어에 익숙한 일을 해와서 그런지 크게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고 수익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왠지 이 쪽을 깊게 파면 큰 리스크 없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적극적인) 투자자는 증권사를 다녔던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증권업에 종사하게 되면 꽤 여러 부분의 투자가 제한된다. 내부정보 활용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오히려 종사자들이 더 투자에 문외한인 경우도 있다. 퇴사를 하면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여러 투자를 원 없이 해보고 싶었다. 또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시간이 없어서 주로 장투 위주로 했었는데 이제 시간이 생겼으니 단타도 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 번째가 가장 빠르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 하나, 대세에 따라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에 탑승해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일 하나, 그리고 익숙해서 금방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일 하나까지 3개를 손에 꽁꽁 쥐고 놓지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름 다 이유가 있었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그제야 무엇이 문제인지 보였다.
어떤 계기로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더 이상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서 퇴사를 했는데 결국 또다시 내면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당장 필요한 것, 남들이 다 하려고 하는 것에 휘둘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퇴사를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시다면! ) https://brunch.co.kr/@aristories/17
이 사실을 깨닫게 되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또다시 겁쟁이처럼 당장의 수익에 목 매달며 안정감 뒤에 숨을 수는 없었다. 후회 없이 도전하며 살고 싶었고 그에 따르는 결과 또한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각오했기에 감행한 퇴사였다.
그러니까 나는 퇴사하고 나면 다시 백지로 돌아와 이제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었고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또 대답하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수도 없이 생각하고 또 다짐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말리던 사람들에게 경쟁에서 떨어져 나간 루저처럼 보이기 싫어서, 동네 아줌마들에게 그저 그런 애엄마로만 보이기 싫어서, 어려운 용어들로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얘기해야 뭔가 더 있어 보일 것 같아서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려고 했단 사실이 너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았다.
P.S. 앞으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될 스스로에게 잊지 말자고 기록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선택에 대한 기준은 분명히 세워두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선택을 함으로써 가장 귀 기울여 듣는 의견은 나 자신의 의견이길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