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왜 했냐고요, 퇴사.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나면 놀라운 속도로 남은 날들의 점심약속이 빼곡히 채워진다. 사람들이 나에게 이토록 관심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연락이 오고, 점심약속이 다 찼다면 커피타임이라도 갖자고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자리에서 나는 동일한 질문을 받는다.
"아니, 왜 갑자기 퇴사를 한다는 거예요?"
만나는 사람들에 맞춰서 약간의 강약 조절을 해가며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다가 나도 내가 어쩌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나의 퇴사 기록.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를 꿈꿨던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과연 언제부터 진심으로 퇴사를 원했던 걸까.
10년 전, 결혼과 동시에 시작한 박사과정 시절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힘들었던 기억을 지워버린다고 했던가. 그 당시 나는 메말라 있었고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았다. 신혼집과 학교가 너무 멀었던 탓에 매일 멀미를 견디며 학교에 가야 했고, 가까이에서 지켜본 '학계'라는 곳은 매 순간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행복했던 순간은 레퍼런스 논문을 완벽하게 이해했을 때의 희열, 그것뿐이었는데 이마저도 알면 알수록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선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학자의 길이 아닌 취업을 선택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회사생활은 매 순간 챌린지였다. 박사수료라는 학력과 무경력은 강점이기도 했다가 한순간에 약점으로 바뀌곤 했다. 좋은 패를 쥐기 위해 늘 스스로를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 했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그 시기의 나는 누구보다도 워커홀릭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에도 오로지 일 이야기만으로 시간을 채웠고, 퇴근 후에는 같은 업계에 있는 남편과 또다시 업무얘기를 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주말 출근해서 어둠 속 핸드폰 플래시 켜놓고 잔업하던 삶이란... ㅋㅋㅋ
그땐 그렇게 사는 삶도 꽤 괜찮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밥벌이를 그럴싸하게 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럼 언제부터였을까, 이 견고한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게.
또렷이 기억난다. 아빠의 사고전화를.
그리고 이 날을 기점으로 업에 대해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너무나도 길고 고통스러운 스토리라 PTSD 올 거 같으니 간략히 요약해 보자면, 아빠는 몇번의 큰 수술과 입원을 거쳐서 몇 달가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우리 가족은 일상 전체가 뒤흔들리는 큰 변화를 맞이해야만 했다. 가까이에서 전력으로 서포트할 수 없었던 나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고 이로 인해 인생의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 당시에는 이 변화를 명확하게 정의하기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부터 막연하지만 조심스레 퇴사라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매년 열심히 회사를 다녔지만, 동시에 퇴사계획도 열심히 세웠다. 처음엔 허무맹랑했던 계획이 해가 지날수록 꽤나 구체적으로 발전했다면 좋았겠지만, 대문자 P인 나답게 중간중간 참 많이도 갈아엎었고 결국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퇴사를 하는 것으로 마감을 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너무 오랫동안 꿈꿔왔던 거라 그랬을까, 스스로도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직장이라는 것이 나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도 크단 말인가.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전공 공부도 오래 했고 경력도 탄탄하게 잘 쌓아왔는데 아깝지 않냐고. 글쎄, 오랜 시간 같은 업무만 해서 그런지 솔직히 나는 이제 이 일에 큰 미련이 없다. 성인이 되고 나서 쭉 같은 일만 해왔으니 이제는 좀 다른 거하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