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묻지 말아요, 뭐든 해보고 잘되면 연락할게요.
퇴사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와 자리를 마련해 준 분들을 한분씩 만나다 보면, 왜 그들이 그렇게 급하게 약속을 잡은 건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놀라운 건, 8년이 넘게 다녔던 회사에서 단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해보지 않았던 분들과도 약속이 잡힌다는 거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내가 퇴사를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앞으로도 커피 한 잔 하지 않을 분들이 퇴사직전에 나에게 잠깐 얘기를 하자고 한다는 거다.
정말, 직장인들에게 '퇴사'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보통 여자들이 회사를 다니다가 이직이 아닌 순수 퇴직을 하게 되는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결혼, 임신,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등의 이슈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요즘은 휴직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서 이런 이유들도 육아휴직으로 많이 커버가 되는 편이다.
나의 경우는 몇 년 전 출산 이후 육아휴직을 거쳐 복직한 지 꽤 되었고 아직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나이는 아니라 이런 케이스에 해당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동료분들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을 거다.
"그래서 퇴사하고는 뭐 할거에요? 그냥 집에서 육아할 거예요? 너무 아까운데??
아님.. 뭐 더 좋은 거라도 있어요? 있으면 얘기해 줘요."
그날 점심 메뉴가 뭐였든, 그동안 쌓아온 동료애가 있든 없든 간에 , 그 순간 그 자리에 함께 앉아있었던 이유는 단언컨대 이 질문의 답, 단 하나를 얻기 위해서였을거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더 많이 춤추려고요. 저 사실 취미가 춤인데 모르셨죠?' 괜히 너스레를 떨어보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육아를 좀 더 찐~하게 해 보려고요. 애들하고 저 사이에 끈끈한 애정이 없는 것 같아서요' 라며 감정에 호소해 보기도 했다. 그럴듯하지만 묘하게 난해한 답변 앞에서 상대방의 눈빛이 흔들리는걸 애써 외면하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 나는 일단 퇴사를 먼저 했다. 다들 어찌나 그렇게 준비를 잘 하는지 블로그나 스레드에는 기존 월급만큼의 현금흐름도 모자라 제2의 직업까지 다 준비해 놓고 퇴사하는 파워 J들이 가득하다. 처음엔 나도 당연히 그렇게까지 준비를 하고 퇴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나에게 상냥한 잣대를 들이밀자면, 나의 상황이 그러기엔 너무도 여유가 없었다.
핑계라면 핑계일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를 낳은 이후 나의 삶은 정말 쉴 틈 없이 돌아갔다. 회사를 다니고 (놀랍게도) 그 사이에 취미도 즐기고 그리고 육아도 하려고 하니 삶의 여유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중에 한가지라도 포기하면 시간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에는 셋이 적절한 발란스를 이루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삶에서 회사라는 것을 덜어내기로 했다. 지금의 삶에서 무언가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면 그게 취미와 가족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대체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선 퇴사 후 고민을 선택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 선택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자, 이제 정리해보자.
당신들이 그렇게도 궁금해했던 나의 퇴사에 대한 대답을.
나는 회사 생활이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엄청난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단지 내가 고민할 시간을 벌기 위해 퇴사했다.
P.S. 작가의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
그러니까 퇴사를 고민하는 분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퇴사가 뭐 대순가요, 요즘은 허다하게 들려오는 소식이 퇴사소식인걸요.
저도 월급을 커버할 때까지 수입원을 창출해놓고 퇴사하려고 버텨봤는데 지나고보니 월급만 오르더라고요. 챌린지 레벨이 자꾸 높아져서 더 버티다가는 절대 커버 못할거 같아서 그냥 퇴사를 먼저 선택했습니다 하하.
다음화는 지겨운 퇴사이야기 그만하고, 제 삶에서 회사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시간에 뭐하면서 지내는지 써볼게요. 조금 더 재미있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