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다시 시작할지는 모르겠어요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져 갔다.
언제였을까, 그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매일 저녁 육퇴를 하고 나면 나와 남편은 슬금슬금 서재방으로 모인다. 각자 남은 할 일을 하기 위함인데 이때는 치열하게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기에 누구든 할 말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대화를 시작하는 편이다. 한창 바디수트 샘플제작을 손으로 해보던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멍하니 손바느질을 반복하면서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니는 생각을 남편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며칠이 지속됐다. 남편도 어느 정도 이 과정을 다 이해했겠다 싶었을 때 불쑥 이 말이 튀어나왔다.
"하.. 나 그냥 그만할까?"
며칠간의 대화의 내용이 순탄하지 않아서였을까, 이 긴 시간 동안 바느질을 하고 있는 내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복잡한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남편은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둬. 너가 하고 싶은데로 해야지."
나를 설득하려고 들지 않아서 고마웠다.
브랜드가 대체 뭘까.
물건을 하나 만들어 내는 것도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닌데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치 하나의 인격을 탄생시키듯, 이름을 정하고 성격을 정하고 그에 맞는 옷을 입히고 행동도 하게 하는,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이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제품을 사게 만드는 것.
하지만 이 모든 과정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처음부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사실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데 초보였던 나는 이걸 놓쳤다. 내가 필요한 건 다른 사람들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바디수트라는 건 일단 국내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정도이고 해외에서도 대중적이진 않은 옷이다. 내가 바디수트를 입고 싶어서 찾아 헤메 일 때 쉽게 구하기 어려웠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니즈가 적기 때문에 판매를 하는 브랜드도 적고 제품도 아주 소량만 생산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진열되는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워낙 니치한 시장이니 잘만 자리 잡으면 오히려 꾸준히 구매가 일어날 수 있어서 제품력을 높여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사실 자신은 없었지만 할 수 있는 건 그 방향이 유일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제품타깃이 흔들리자 제품의 소구포인트도 같이 방향을 잃어갔고 완성되어 갈수록 더욱더 애매한 제품이 되어갔다.
선택을 해야 했다. 여기서 멈추거나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의외로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포기하기가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스스로 늘 마무리가 약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회사 다니면서 소소하게 내 일을 해보겠다고 시작했던 일을 다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해 버렸기에 이번엔 다른 결말을 맞이하고 싶었다. 심지어 이전에 도전했던 일들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도 멈춰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러면서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옷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그냥 사장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한참을 생각해 보고서야 나는 옷이 좋았던 것도, 근사한 브랜드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라 단지 직장인에서 벗어나 사업이라는 것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단 걸 깨달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고 나니 사실 아이템이란 게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몇 개월 동안 살살 쥐면 놓칠세라 있는 힘껏 붙잡고 있었던 바디수트를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은 정리가 되었을지언정 아직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서 수습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예정이다. 몇 개월 동안 애지중지 만들었던 제품은 그대로 사장되기엔 너무 아쉬워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서 사진으로 남겨둘 생각이다. 어쨌든 내가 필요해서 만든 제품이니까 만들어 두면 유용하게 잘 입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주변에서 나의 여정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던 분들에게도 잘 만들어서 선물해주고 싶긴 한데 샘플 제작 비용이 커서 고민이 된다. 완벽한 핏감을 위해 패턴을 조각조각 내놓은 덕에 원단 제단하는 것도 여간 수고스러운 게 아니라 여러 장을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다. 잘 만들려고 했던 게 지금 와서 보니 번거로움만 늘린 듯 한 기분이다.
그래도 어쨌든 수고했다. 올해의 나의 이 무모했던 시도가 결코 무의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주어진 일만 하면 됐던 직장인에서 벗어나 틀이 없는 일을 대할 때 나의 모습이 어떤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 될지 알게 되었다는 거다. 올해의 성과가 없을지언정 내년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