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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Mar 20. 2024

동물의 존재 이유

<인간 같은 동물, 동물 같은 인간> 독후감상문


 저서는 언뜻 보면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공리주의나 동물권과는 거리가 먼 도서다. 지구 생명체 중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수많은 동물을 지배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다. 동물도 개체별로 작은 사회가 있고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정과 행동을 한다. 우리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많은 동물의 희생을 서슴없이 강행한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로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다양한 동물이 집집마다 살고 있지만 여전히 실험용 비글, 피를 수혈하는 공혈견, 죽을 때까지 싸우는 투견, 식용 개고기 등이 대조되는 현실이다. 동물은 고기, 우유, 털, 가죽, 오락 등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인간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은 진정 가능한 것인가.








진화 그리고 유전학

 인간을 비롯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유전자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아주 작은 개미에게도 있다. 유전자는 생명을 주관하고 복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널리 퍼뜨리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유전자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생명체는 번성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생명체는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여왕개미에게 한평생 충성하는 일개미를 보면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사람과 크게 대조된다.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임무를 최선을 다하는 일개미의 면모는 사람보다 우세한 것이 틀림없다. 일개미의 희생정신이 딱하다가도 유전학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그저 본능에 충실한 것뿐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매력적인 이성에 끌리는 것도 유전학 렌즈를 통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더욱 우세한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본능은 준수한 이성을 배우자로 갖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표출된다.


  모든 생물은 간단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진화했으며 인간의 조상은 유인원이다. 작은 변화가 점진적으로 축전되면서 진화는 진행된다. 자연에서는 환경에 더 적합한 개체가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이원론적 종교

 19세기 서양에서는 하나님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인간은 특별히 하나님과 닮은 형태를 하고 있어 인간은 지구의 생물 중에서도 매우 우월하며 '신성하게' 여겼다. 당시 다윈의 '진화론'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특히 존엄한 인간의 뿌리가 동물이라는 주장은 인간의 우월성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사형을 당한 것처럼 당시의 다윈은 그와 비슷한 궁지에 몰린 것이다. 당시 진화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대단하여 다윈의 <종의 기원>에는 '진화'라는 단어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150여 년 동안 발견된 진화의 압도적인 증거들로 진화론은 신뢰를 거듭 얻고 있다. 진화론은 진화론 자체도 진화를 반복하며 변화하고 있다. 지구의 환경은 나날이 변화하며 생물은 그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잘 사용하는 신체 기관은 발달하지만 두더지의 눈처럼 쓰이지 않는 기관은 퇴화되거나 사라지게 되는 용불용설도 빠질 수 없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약 30퍼센트의 대중은 진화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는 이처럼 갈등이 잦았고 갈등의 끝은 전쟁이었다. 종교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구분하며 '우리'와 '그들'이라는 상호 배타적인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종교는 의도와 다르게 폭력성을 갖고 있다. 집단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으면 필연적으로 폭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동물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 울음소리는 시계태엽 소리와 같이 기계적으로 내는 소리이며 동물은 고통을 느낄 줄 모르는 '살아있는 기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이전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이 인간처럼 감각 기관을 가졌으며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임을 분명히 했지만 행복은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데카르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대조적인 주장은 모두 틀렸지만 팽팽했던 두 주장은 오늘날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끼치는 것임에 틀림없다.


 현대의 인류는 어린아이조차도 모든 동물은 고통을 느끼며 감정이 있다고 믿는다. 거기서 더 나아가 많은 동물들은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를 꾸리고 사랑을 하고 슬픔을 애도하기도 한다.


 동물은 아무 데서나 아무하고와 교미를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은밀한 곳에서 오랜 구애 끝에 교미를 하는 치타처럼 원숭이도 그렇다. 동물도 인기 있는 암컷이 있으며 수컷은 특정 암컷과 교미하기를 원한다. 암컷 원숭이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자위행위를 하기도 하며 동성애자 갈매기도 있다. 동물도 차례를 기다리며 위계를 지킬 줄 알며 도둑질도 하고 싸움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전쟁보다는 빈도나 강도가 낮아서 인간보다 동물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코끼리는 동족이 죽으면 그 자리에 한 번씩 들려서 썩어가는 사체를 코로 쓸어내린다. 개미는 동족이 죽으면 사람과 유사한 장례 절차를 치르며 슬픔을 애도한다. 특정 개체의 암컷 거미는 새끼들에게 살아있는 자신을 먹이로 내어줌으로써 눈물겨운 모성애를 보여준다. 짝짓기를 끝낸 암컷 사마귀가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는 행위는 인간 사회에서 특정 여성들이 남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야생 동물 가축화

인간은 오래전부터 야생 동물을 가축화하는데 수많은 실험을 가했다. 치타를 사육장에 가두자 그들만의 은밀하고 복잡한 성행위가 이뤄지지 않아 가축화에 실패했다. 가젤은 기다란 뿔로 유리창을 깨거나 사람에게 날뛰어서 가축화에 실패했다. 야생의 코끼리를 데려오는 것은 쉽지만 울타리에 가둔 코끼리들은  교배하지 않았다. 현재의 가축들은 기원전 8000~2500년경의 인류가 길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약 148종의 초식성의 대형 육서 포유류 가운데 14종만이 가축으로 길들여졌고 기원전 2500년 이후 새로 생긴 중요한 가축은 하나도 없었다.



 인간의 노력 없이 가축이 된 경우도 있다. 지금의 반려견은 수렵 채집 시절의 인류에게 먼저 다가온 늑대가 진화되었으리라는 추측이다. 추운 겨울 굶주린 늑대는 비교적 먹을 것이 풍부하고 따뜻한 움막 근처에 서성거렸으리라. 움막 근처에 인간의 대변을 먹다가 가끔은 인간이 던져주는 음식을 먹으며 인간과 교감했다. 늑대는 진화를 거듭하며 사납고 거친 습성은 점점 퇴화되고 사람의 말을 잘 듣는 늑대로 개량한 것이 지금의 개라는 가축이 된 것이다.




동물권 논쟁

 동물권에 대한 논쟁은 시대별로 끊이지 않았다. 데카르트에 의해 고통을 느끼지 않는 동물은 산 채로 어떠한 마취 없이 피복을 벗겨내고 잔인한 동물 실험에 가해졌다. 투견들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고 피를 수혈하는 공혈견, 실험용 비글견, 식용견 등 반려견과 대조되는 일상을 사는 개들도 적지 않다. 부드러운 모피를 얻기 위해 족제비와 토끼 등은 산 채로 가죽을 벗겨내고 거위와 오리들도 산 채로 깃털을 뽑힌다. 그물무늬 왕뱀은 강제로 위장에 물을 계속 집어넣고 산 채로 가죽을 벗겨 명품 가방으로 탈피한다.


 소는 반추위 동물임에도 인간의 이기심으로 동족의 내장을 먹다 결국 광우병 사태가 터지고 살처분을 받아야 했다. 젖소는 원치 않은 임신을 반복하며 다 큰 인간에게 줄 우유를 생산하다가 마지막엔 도살장으로 향한다.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생식기를 잘리며 본능에 위배되는 삶을 살아간다. 고개만 겨우 돌릴 수 있는 비좁고 암모니아 냄새가 가득한 사육장에서 햇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진흙 목욕하지도 못한 돼지는 몸집만 늘리다가 평균 수명의 1/3도 살지 못한 채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닭은 태어나자마자 부리를 자르고 위에서 떨어지는 배뇨와 배변을 받으며 날개 한번 펴지 못한다. 더욱 많은 양의 닭 가슴살을 얻기 위해 움직임은 최소화된 케이지에서 칼로리 높은 옥수수 사료만 먹으니 비대해진 몸으로 사육 닭들의 다리는 대체로 건강이 좋지 못하다. 어차피 닭고기가 될 운명이니 치료는 받지 않는다. 가축 사육장과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동물 실험에서 통과한 의약품들이 사람에게는 부작용이 속출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이 보고되었다. 현대 의학은 충분히 동물 실험 없이도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 위와 같은 사례의 도축장 그림은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함인데 보다 윤리적인 농장이 절실하다.



채식주의자

 육식주의자는 나쁘고 채식주의자는 나쁘다는 이원론적 사고는 아니다. 식습관은 선택이지만 육식에 대한 문제점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농지의 절반 이상이 우리가 육식을 하기 위해 기르는 가축의 사료를 만드는 터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농장주의 이기심으로 공장식 농장의 가축들은 동족의 내장을 먹었고 값싸고 살코기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는다. 가축이 다치거나 아파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값싼 고기로 팔려나가는 현실이다. 가축의 분뇨로 농장 주변은 암모니아 냄새로 머리가 아프고 분뇨와 도살장의 찌꺼기 등은 지구 환경을 악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10여 년 전 나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이었다. 채식주의자에도 여러 분류가 나뉘어 있다. 가장 가벼운 단계는 어류만 먹지 않는 단계고 나는 그다음 단계인 동물의 젖과 알은 먹는 채식주의자였다.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알았던 그날의 충격에 채식주의자라는 선택을 가했던 것이다. 나 한 명 먹지 않는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은 한 명의 움직임으로 시작된다. 물론, 아이를 임신하며 채식주의는 잠정 중단하다 아이들이 조금 컸다는 연유로 선택적 채식주의자를 다시 자처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음식에 둘러싸여 있다. 비단 '육식'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너무 많은 설탕, 유전자 변형 식품, 본연의 맛을 잊게 만드는 조미료 등이 그렇다. 방대해진 음식만큼 똑똑한 소비자의 선택은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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