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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May 26. 2024

그리스 로마 신화에 첫걸음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자녀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책을 읽어주며 관심이 갔던 분야지만 압도적인 분량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전자책으로 800페이지가 안 되는 짧지 않은 양이지만 이 한 권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큰 틀을 잡을 수 있는 것에는 분명하다. 저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고전 철학이나 불교 사상 등을 거론하며 방대한 인문학의 교집합을 끌어내는 통찰력과 박식함이 돋보인다.






 허구의 세상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은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밤하늘 별에도 수북하고 서양의 역사에도 빼곡하다. 판도라의 상자, 나르시시즘 등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야기는 픽션을 넘어 우리 생활 속 대명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몰라도 그만이지만, 알면 알수록 절로 손뼉을 마주치며 '그랬구나', '그런 거였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일상의 풍요로움이랄까. 녹음이 짙은 나뭇잎이 가을을 물들이는 단풍잎이 되는 것처럼 신화 속에 스미는 시간이었다. 


 제우스는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지만 크로노스의 독재에 맞서 싸우며 비로소 질서 정연한 하늘을 만든 장본인이다. 제우스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떤 모습으로도 스스럼없이 변신하여 자신의 화려함을 감추었고 실패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사랑을 쟁취한 결과 세상에는 제우스의 자손들이 각기 다양한 능력으로 평화와 질서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헤라는 제우스와 결혼하며 결혼의 여신으로 거듭났다. 헤라가 허구한 날 다른 여신과 사랑을 나누는 제우스를 질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처사였다. 제우스의 정부 중 헤라를 제외한 여성들은 제우스의 바람 잘난 없던 태도를 질투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다. 오로지 헤라만이 제우스의 태도를 비난하고 그의 정부들을 질투했다. 그렇기에 헤라는 결혼의 여신으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었으리라.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 모든 관계가 하극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우스는 친부인 크로노스를 죽이고 친누나와 결혼하였으며 헤라는 아들인 헤파이스토스를 올림포스 정상에서 바다로 던져버렸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삼았다. 물론 오이디푸스는 그들이 친부와 친모인 줄 모르고 행한 결과였으며 나중에 사실을 알고 몹시 괴로워했다. 결국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도려냈다. 그는 스스로를 테베에서 추방하며 테베를 구해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과업에 대하여 스스로를 응징하면서까지 백성들과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비록 그의 삶은 컴컴한 암흑 같았을지라도 그의 도덕적 결단으로 인해 다수는 그를 철면피보다 영웅으로 기억하리라.


 신화를 현실의 사건처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을 자신의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가이아의 자궁 속에 가두었으며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입으로 삼켜 뱃속에 가두었다. 이러한 일화들은 비현실적일뿐더러 엽기적이고 잔인한 면모가 가득하다. 픽션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혼란, 혼돈, 무질서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카오스(Chaos)는 그리스 신화의 첫 장면이다. 즉, 아무것도 없는 태초에 카오스가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카오스이며 최초의 존재이며 최초의 신이었다. 스스로 태어난 카오스는 하늘과 땅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일컫는 어휘인 것이다. 혼돈과 허공은 전혀 다른 어휘 같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질서조차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카오스는 무질서이며 무질서함은 혼란스럽고 혼돈스러운 것이리라. 


 마치 어린이 소설을 읽은 듯 눈높이를 낮춘 설명으로 다가가기 쉬웠던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8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으로 완독을 하고 나니 도입부가 가물가물하여 재독을 해도 좋겠다 싶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방대한 분량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독자라면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 신화에 더욱 친숙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신화를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일리가 있다. 제우스와 테미스의 결혼은 결국 최고의 권력이 정의와 법과 결합할 때,  도덕과 윤리가 바로 서는 인간 사회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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