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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Essay

자기 계발 신앙

<거대한 사기극>을 읽고

by 아리스

1492년, 콜럼버스는 인도를 항해하던 중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다. 신대륙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원주민들을 추방하고 토지를 개간했다. 100달러 지폐에 새겨진 프랭클린은 한 명의 르네상스맨이라기보다 잊지 못할 미국의 영웅이자 아버지다. 프랭클린이 살던 당시 미국은 영국에 의존한 채 문화적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프랭클린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미국을 개척한 장본인이다. 프랭클린은 타고난 조건과 무관하게 개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행복과 성공을 얻을 수 있었다. 대단히 미국적이고 원조격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자조'스러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프랭클린에서 시작한 자기 계발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했다. 경기가 불황일 때는 특히 론다 번의 <시크릿> 류의 신비적 자기 계발 서적이 빛을 발한다. 흙수저도 노력하면 금수저가 될 수 있는 '아메리칸드림'은 미국이 아닌 동네 책방에서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시대와 수저를 탓하는 수동적이며 비관적인 사람보다 '자기 계발 서적'을 추종하는 자들은 매우 건설적이다. 자기 계발 서적의 독자들은 이른 아침 기상하고 시간을 배분하여 틈새 독서를 하고 성공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다.' 필자 또한 10권 중 8권은 자기 계발 서적을 읽는 애독자로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끌어당김의 법칙과 윤리적 성공 방법에 강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서점에 이미 포화되어 있는 '자기 계발 서적'들은 '거대한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 자극적인 제목보다 책 속에는 더욱 신랄한 비판이 빼곡하다. 종교인은 평안할 때보다 불안할 때 보다 많이 기도한다. 종교는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으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태한 자에게 자기 계발서의 저자들은 '자기 계발'이라는 신앙에 흡사 전도를 한다. 여태 일궈낸 것 없는 현재의 모습은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모습처럼 죄질이 역력하다. 성경의 말씀을 따르는 신자처럼 '자기 계발 서적'에 수록된 대로 열정 있는 삶을 산다면 성공이라는 천국을 맛볼 수 있으리라.


'자기 계발'의 판도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현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지방에 살아서도 아니고 서민 부모를 만나서도 아니며 정부가 무능한 탓도 아니다. 내가 못난 것은 스스로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공조 사회에서 이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릴 것이다. 자기 계발의 본질은 '자조(自助)'가 맞지만 본질을 거듭 강조하는 자기 계발은 엇나간 화살마저 자신의 심장을 관통할 수 있다. 날카로운 문체와 도발적인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반전 없이 저자의 주장은 올곧았다. 자기 계발서를 권하는 사회는 구조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마저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거듭 자기 계발서를 읽을 것이다. 느지막이 일어나는 주말 아침과 여유로운 하루도 물론 좋다. 그러나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갈망한다. 허황된 목표일지라도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자기 계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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