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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Essay

허상의 분위기, 시

<안녕 나의 페르소나>를 읽고

by 아리스

나의 몸은 하나지만 얼굴은 여러 개다. 메두사의 머리처럼 많은 얼굴을 지닌 채 만나는 사람과 그 장소에 따라 하나의 얼굴을 고른다. 나뿐만이 아닐 테다. 나를 마주하는 그도, 그녀도 많은 얼굴 중 하나의 얼굴을 선택했으리라.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페르세우스가 내가 아닌 머리들을 도려낸다. 아무도 없는 집, 컴컴한 밤, 비로소 진짜의 나를 마주한다. 문득 이질감이 느껴지는 내 얼굴, 이것이 과연 진짜 내 얼굴일까. 나는 몇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던가. 다음 날, 현관을 나가며 어제 도려냈던 얼굴을 애써 붙인다. 이 많은 얼굴들의 이름은 가면이다. 가면이지만 너무 부드럽고 익숙해서 가끔은 이것이 진짜 내 얼굴인가 혼란스럽다.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마주하는 얼굴들이다.


시라는 문학은 얼굴마저 없다. 간혹 팔다리도 없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다. 나에게 시는 그런 오묘한 것. 저서는 그런 심오한 것들을 평론하고 있다. 그 세계는 너무 멀리 있어서 높이마저 헤아릴 수 없는 곳이었다. 평론집을 읽으니 창공에 떠있는 구름이 서서히 보이는 듯하다. 하늘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구름 없이 쾌청한 날,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수놓은 날, 곧 비라도 쏟아질 듯한 우중충한 하늘,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비에도 애써 미소 짓는 하늘. 그리고 그 얼굴에 비치는 분위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꼭꼭 숨긴 채, 허상의 분위기를 뽐낸다. 그것은 시다. 시는 두 발로 걷지 않는다. 하늘의 구름처럼 떠다니며 목적지를 배회하고 제자리를 맴돌다 홀연히 떠나버린다. 내가 바라본 시와 평론가 박성준의 시는 다른 모양이었다. 시를 읽고 사유하는 것보다 평론집은 더욱 다채하고 풍성하다.





내가 내 기분을 묻는 일이 문학이었고, 내 부끄러움과 수치를 쓰는 게 문학이었으며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쓰고, 울고, 또 그랬던 것이 문학이었다. 내 슬픔을 담보 삼아 시를 쓰면서, 좀 더 슬픈 쪽으로 기울어진 삶에 대해 자랑해 가면서, 나는 늘 지금보다 조금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_p6.
어차피 오독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인과 독자를 같은 세계를 바라볼 수도 없고, 당도할 수도 없으며 더 나아가 '동일한 세계'를 부정하는 가운데에서 느낌, 기분, 감정만이 남은 상태, 즉 '분위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유발되는 '분위기'를 단지 불연속적인 것만으로 다룰 수 없는 이유는, 분위기는 객관과 주관 사이의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에테르이기 때문이다.
_p38.
아이는 나의 혐의와 나를 조감하는 형식이지만 그만큼 나의 소유물이 될 수 없고 나에게서 나를 빼앗아간 존재 양식이기도 하다. 즉 나와 자식은 절대적으로 선형적, 순환적 시간 안에 놓여 있고, 절대적으로 타자화되어 있다.
_p34.
어차피 오독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인과 독자를 같은 세계를 바라볼 수도 없고, 당도할 수도 없으며 더 나아가 '동일한 세계'를 부정하는 가운데에서 느낌, 기분, 감정만이 남은 상태, 즉 '분위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유발되는 '분위기'를 단지 불연속적인 것만으로 다룰 수 없는 이유는, 분위기는 객관과 주관 사이의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에테르이기 때문이다.
_p38.
<생생한> 또한 다르지 않다. "고추를 단 소녀들"이 선택한 남근은, 남근을 소유하고 싶은 표면적 욕망보다는 남자친구 집에서 자고 가고 싶다는 숨겨진 욕망의 결과이다.
_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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