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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Essay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를 읽고

by 아리스

현실이 팍팍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이 꼭 자신인 것만 같다. 저자 유자와가 부친이 사망하며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될 때의 심정이 그랬으리라. 회사원에서 가업을 잇는 기업의 대표가 되었다. 한순간에 금수저로 퀀텀 점프한 것 같지만 그의 삶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대기업에서 근로자는 작은 나사 조각에 불과했다. 유사와가 퇴사하자 그 자리는 부속품처럼 다른 인력으로 대체되었고 회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러갔다. 그러나 아버지의 회사는 달랐다. 사람 하나에 울고 웃었다. 인력 관리야 차치하더라도 가장 끔찍했던 건 회사의 자본이었다. 부채 400억 원. 봉급생활을 하던 그는 호화스럽진 않았어도 소박하고 행복했다. 가늠조차 하기 힘든 그 거대한 액수를 한순간에 떠안게 된 그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장밋빛과 같던 그의 미래에 400억이라는 재가 흩뿌렸다.


이후 그의 삶에는 드라마처럼 극적인 연출은 없었다.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고 여길 때조차도 한없이 추락했다. 바닥보다 더 깊은 바닥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벗어던지고 싶을 때 한 번 더 참았다. 한 계단 오르면 두 계단 떨어져도 좌절하지 않았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이 없는 것처럼, 그에게 시간은 매일 흘러갔고 적은 액수여도 빚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400억 원을 다 갚는 데에는 80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에게는 그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노력하는 기간을 5년으로 한정했다. 매일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날짜만은 분명히 줄어들었다. 부채 400억 원을 물려받은 지 16년, 갚아도 끝이 보이지 않던 숫자는 매일 조금씩 줄어들어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더는 못 하겠어. 이제 끝났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유자와는 딱 한 번만 더 일어났다. 그 결과 침몰 직전 중소기업을 되살리고 자신마저 단단한 성장을 이루었다. 비 갠 뒤 맑은 하늘을 보라. 지금 현실이 척박하다면 모름지기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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