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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Oct 18. 2024

결혼하고 싶은 사회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읽고

 학령기 아동이 책가방을 메는 것처럼 혼기가 찬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으레 당연한 사회에 도달했다. '혼기'라는 단어 마저 낡은 것으로 비치는 사회에서 결혼을 결심한 자에게 '도대체 왜?'라는 질문은 자연스럽다. 마치 배추흰나비 유충이 번데기에서 나비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과거 세대에게 연애의 다음 과정이 결혼이었으리라. 사회적 시선과 시대는 의무적인 제도를 탈각하고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80년 서울 기준  35세부터 39세 남성 미혼율은 2%였는데 2010년에는 35.5%로 대폭 상승했다. 동일 연령대 여성 역시 1.6%에서 20.3%로 한국의 미혼율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30세부터 34세로 연령대를 낮추어 보아도 남성은  9.1%에서 58.9%로, 여성은 4.3%에서 41.7%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초혼 연령도 점차 늦어지고 있다. 1995년 28.4세에 초혼을 하던 남자들이 2017년 32.9세로, 여성들은 25.3세에서 30.2세로 꾸준히 결혼이라는 제도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성인은 불안을 거듭 고민하며 '각자도생'하기에도 팍팍한 현실이다. 


 21세기의 '남녀평등'은 의식하지 않아도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친데 결혼과 동시에 그 평등이 쉽게 깨져버린다. 주말이면 아빠는 리모컨을 붙들고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휴식을 취하다가 엄마가 차려주는 삼시 세끼 밥상을 꼬박 드셨던 부모님을 우리는 직접적으로 경험했지만 학교에서는 양성은 평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자가 힘을 쓰려고 하면 '여자가 그러면 못써', '조신하게 앉아야지' 등의 성차별적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남자가 울상을 짓기라도 하면 '울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폭력적인 잣대를 들이밀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았을 리가 만무했을 우리네 신혼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남편은 일방적인 행복을 가정의 평화라 단정 짓는다. 요즘 남편은 요리도 곧잘 하고, 쓰레기 분리배출도 하고, 빨래도 개킬 '줄' 안다. 그러나 여성이, 주부가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해 '잘'한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여자가 끼니를 챙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것은 매일 쳇바퀴처럼 하는 일과이기 때문에 그저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요즘 아빠는 아이의 등원 또는 하원을 '도와'주고, 아이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거나, 야근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육아에 '참여'하는 편인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렇지 못하다. 육아 또한 매일 거르지 않고 의무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에 다닌다고 밀린 업무를 잡고 있을 순 없다. 퇴근 시간이면 죄인이라도 되듯 고개를 굽신거리며 두 발에 모터를 달고 뛰어가는 그곳은 다름 아닌 유치원이다. 아내는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마치 슈퍼우먼이라도 되는 것처럼 회사와 가정 그리고 육아에 헌신한다. 왜냐하면 아내는 여성의 자주성을 파괴하는 '모성'이 있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2028년 우리 사회는 인구 절벽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50%로 OECD 최고 수준이다. 극빈층을 면한 노인 두 명 중 한 명 마저도 근근이 살아가는 수준으로 이것은 현실이자 우리의 미래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100세 시대에 도래했지만 이것을 비단 축복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 공단에서는 은퇴 후 필요한 생활비가 1인당 5억 5,400만 원이라고 했다. 이것은 비참하지 않은 노년을 살 수 있는 평균적인 금액으로 최소 5억 원은 있어야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참혹한 현실에서 결혼과 출산이 사치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2024년 6월 기준 서울 부동산 평균 거래액이 12억 2천만 원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제 집값 10억 원은 괜찮은 금액 같아 보이는 기이한 시선마저 생겼다. 그러나 평범한 직장인이 283년 동안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아야 10억 원이라는 금액을 모을 수 있다. (2022년 기준 세전 평균 월 임금 353만 원) 성실하게 살면서 정당한 월급을 받아서는 집 한 채 살 수 없는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상투적인 양성 평등이 아닌, 피부로 느끼는 양성 평등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제도적으로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평균이 빈곤하지 않는 나라, 평균이 살기 좋은 사회라면 우리는 다시 사랑하고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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