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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Essay

반려동물 천오백만 시대의 딜레마

『개와 고양이의 윤리학』을 읽고

by 아리스

2024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약 1,546만 명에 이르렀다. 반려동물 천만 시대를 넘어 이제는 천 오만 시대가 열린 것이다. 거리에는 아장아장 걷는 아기보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산책하는 강아지의 풍경이 더욱 친숙한 건 우연이 아니다. 출산율은 해년 감소하는 반면 반려동물을 양육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이제는 국민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반려동물과 삶을 나누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는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애완동물'이라 불렀다. '애완(愛玩)'은 본래 '사랑하여 즐긴다'는 뜻이지만, 실상은 소유물이나 장난감처럼 여기는 뉘앙스를 내포한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는 '애완동물'을 대신해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반려(伴侶)'는 '인생의 동반자'라는 의미로 동물의 지위가 '장난감'에서 '가족 구성원'으로 격상된 셈이다. 물론 이를 두고 동물을 과도하게 사랑한다거나 지나치게 의인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의 변화는 우리 사회가 동물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문화가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집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동물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시선의 변화를 담고 있다.


반려동물의 대표 주자인 개는 본질적으로 사람에게 의존적인 존재다. 의존적이라는 말은 곧 취약함을 뜻한다. 아기가 부모에게 의존하며 태어나지만 성인이 되면 독립하게 되는 것과 달리, 개는 수명을 다할 때까지 인간의 보살핌을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반려견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이따금 놀아주며 매일 배설물을 치워주며 20년 이상 살아가야 한다. 이는 곧 긴 세월 동안 헌신적인 사랑과 책임, 그리고 상당한 지출을 감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반려견의 수가 늘어날수록 버려지거나 안락사되는 개체 또한 비례하여 증가한다.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의 첫인상에만 매료된 채, 그 의존적인 존재를 수 십 년 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개는 다른 동물과 달리 종과 외형이 매우 다양하다. 컵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티컵 강아지부터 사람 만한 대형견까지, 유독 개에게서만 나타나는 극단적인 다양화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로 인해 만들어졌다. 더 인기 있는 외형과 성격을 얻기 위해 근친, 강제 교배는 물론 비면허자의 수술과 약물 오남용 등 여전히 퍼피밀이라 불리는 공장형 번식장이 존재한다. 이는 반려견을 '가족'이라 부르면서도 여전히 '상품'으로 다루는 인간 사회의 모순을 보여준다.


지난해 기준 반려견의 수는 약 546만 마리이며 반려묘가 약 217만 마리로 집계된다. 수치상으로 여전히 개가 앞서지만, 고양이는 강아지 뒤를 바짝 추격하며 빠른 속도로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개가 인간에게 전 생애를 걸쳐 의존하는 것과 달리, 고양이는 집 안팎을 오가며 특유의 '독립성'을 과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양이의 성향은 곧 사회적 갈등을 낳는다. 도심의 길고양이는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참새를 사냥하고 울음소리로 민원을 유발하며 '해악'으로 규정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고양이의 본성이 아닌 인간 사회가 내어준 좁은 공간에서 생존을 이어가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반대로 집고양이는 인간이 제공하는 안전한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생활 반경은 불과 몇 평 남짓에 머물며, 먹이와 온기는 충분히 보장되지만 본능적 탐험 욕구는 차단된다. 비만과 우울, 무기력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길 위의 고양이는 위험 속에 자유를 누리고, 집 안의 고양이는 안전 속에서 제약을 안는다. 과연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고양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동물과 맺는 관계의 윤리를 되묻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시골 개는 1M도 안 되는 짧은 목줄에 묶여 평생을 살아간다. 우리는 그 처지를 안쓰럽게 여기지만, 과연 햇볕조차 잘 들지 않는 탁한 실내에서 하루 종일 반려인만 기다리며 한 뼘 남짓한 하네스 줄에 끌려 하루 십 분 산책하는 반려견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강아지를 입양하는 그 순간조차 우리는 어쩌면 퍼피밀 산업의 수익 구조를 떠받치는 것은 아닐까. '안전'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집 안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는 어쩌면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위험한 거리의 길고양이가 더 행복한 것일까.


밖에서 떠도는 개와 고양이, 그리고 인간과 함께 사는 반려동물 모두에게 더 나은 길은 무엇일까. 이것은 반려동물 천오백만 시대 우리 국민들의 숙제이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윤리적인 물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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