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옷을 입은 아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와 어른이를 위하여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가끔 마음이 아릿해진다. 아이들은 '왜 저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일찍 철이 들어버렸고, 정작 어른들은 바닥에 드러누워 떼만 쓰지 않았을 뿐 제멋대로 엉킨 실타래처럼 고집불통이다.
실수를 했을 때 '몰랐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은 종종 ‘나이’라는 말을 먼저 꺼낸다.
"너 몇 살이니?" 라는 말 한마디에 공기가 식고 아이들은 입을 다문다.
00년 1월 1일, 00시 00분 01초. 단 1초 차이로 세상은 마법이라도 부린 듯 우리를 대하는 온도를 바꾼다. 열두 시 ‘땡’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전직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준다. 60초 전까지는 보호받던 존재였는데, 이제는 그 이름표에 걸맞은 책임을 지라고 다그친다.
이건 마치 업무를 하나도 모르는 신입사원에게 대뜸 대리라는 직급을 주고는, 당장 내일부터 완벽하게 성과를 내라고 등 떠미는 격이다. 사전 체험도, 예습도 없는 이 무모한 '어른 되기'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당황하며 길을 잃었던가.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지금의 마을은 너무나 무심하고 차갑다.
세상은 어린이에게 좀 더 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어린이'의 범주에는, 열두 시 ‘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른인 척 가면을 써야 했던 덜 자란 ‘어른이’들도 포함된다. 조금 더 먼저 길을 걸어온 '진짜 어른'이라면, 뒤에 오는 이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길을 터주면 안 될까.
그렇게 말하는 너는 제법 어른이냐고 묻는다면, 아, 나는 슬쩍 빼줬으면 한다. 재미없는 어른으로 사느니, 나는 그냥 죽을 때까지 조금 서툴러도 온기가 느껴지는 어린이로 살 작정이다.
싱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