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인형을 만들기로 한 날

프롤로그

by 아리따


토끼 인형 도안을 처음 꺼낸 날은 평범한 하루였다.

귀엽다는 이유로 저장해 두었던 이미지였다.

어느 날 문득,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잘할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무언가를 완성하고 싶다기보다, 그냥 손을 움직이고 싶었다.

재료를 사고, 실을 꺼내고, 도안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한 코를 만들고, 다시 풀고, 또 한 코를 만들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고 마음은 고요해졌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고, 나도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옆에서 고양이는 잠들었다가 눈을 뜨고, 다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날 토끼 인형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이후로 나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과, 그 시간을 기록하는 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느리게 손을 움직이다 보면 마음의 소란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 책은 잘 해내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멈추지 않기 위해, 천천히 이어온 시간의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한 코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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