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코바늘과 무모한 토끼

by 아리따


책상 한구석, 여전히 선명한 색을 뽐내는 빨간색 코바늘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본격적인 뜨개질 인생이 시작된, 나의 '첫 번째 코'를 만들어준 도구.


뜨개질의 'ㄷ'자도 모르던 때에 나는 내 실력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노트북 화면 속 솜뭉치 같은 토끼 인형이 너무나 귀여워 보여 실이며, 바늘이며 무작정 재료부터 샀다. 제일 중요한 '무기'인 코바늘은 그저 내 눈에 예뻐 보이는 빨간색으로 골랐다. 실력보다 설렘이 앞섰던, 무모한 용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유튜브를 선생님으로 모셨다. 코를 잡는 법이 서툴러 몇 번이나 실을 풀고 다시 감기를 반복했다. 손가락 끝은 얼얼해지고 코바늘을 쥔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냥 쉬운 목도리나 뜰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지만, 빨간 바늘 끝에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는 토끼의 귀를 보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나의 첫 토끼는 사실 사진 속 그 녀석과는 조금 다르게 삐딱하고 투박했다. 하지만 그 녀석을 두 손에 올렸을 때 느껴지던 그 몽글몽글한 성취감. 내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기쁨이, 시린 금속 바늘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삐딱하면 좀 어떤가. 그 삐딱한 토끼의 귀가 나에게 가르쳐준 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다정한 용기였다. 이제는 안다. 무모함이 앞섰던 그날의 시작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첫 번째 코'가 되어주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낡은 빨간 바늘을 쥔다. 가장 나다운 무늬를 한 코 한 코 더해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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