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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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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Oct 05. 2018

06. 끝까지 가보는 것

퇴사와 여행, 그 후

지난 100일간의 여행은 시작하면서부터 이 여정을 책으로 남기리라는 다짐을 했다. 경비 사용을 엑셀로 정리했고, 안 찍던 사진도 남겼으며, 매일의 기록을 브런치에 올렸다. 돌아와서는 생전 처음으로 출판기획안을 작성해, 출판사에 메일로 보냈다. 많이 보내지는 않았지만,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내가 이보다는 잘 쓸 것 같다 싶은 여행기를 보았었기에, 그래도 한두 군데서는 연락이 오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거절 답신이나 무응답뿐이었다. 기획의도나 출판 방향이 달라서 라곤 했지만, 글이 별론가 싶어 의기소침해져 의욕을 잃었다.


우연히 집 앞 도서관에서 들은 책 만들기 강의를 들었다.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다, 기성 작가들도 거절당하는 건 흔한 일이다. 편집의 힘이 크다"

전하는 내용이 새로운 건 아니었지만,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느껴지는 확신에 힘입어 다시 수정해서 보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목차를 다시 정하여 몇몇 출판사에 다시 메일을 보냈다. 그러면서 이전에 필진으로 참여해 책을 냈던 출판사에도 같이 보냈다.


인연은 따로 있었던 것일까? 여행책을 낸 지도 몰랐던 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한 달 살기 여행기를 얼마 전 만들었고, 다음 시리즈를 준비하던 차에 반갑다고 했다. 출판사가 보내준 양식에 맞게 기획서를 수정해 보냈고, 만남 약속을 잡았다. 뭔가 완성되기 전에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엔 마음이 들떠 지인에게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안 되더라도 어쨌든 한 발 나아갔다는 것에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그간의 거절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100번 거절을 받아도 하나가 연결되면 되지, 싶었다.


편집자는 꼼꼼히 나의 여행의 내용과 스타일에 대해, 빠진 내용들에 대해 짚어주었다. 좀 더 보충하면 좋을 글이나 정보, 소제목을 변경하는 방향을 제안했고, 예상 독자의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했으며, 글에서 강조할 부분을 짚어주었다. 논문을 발표하거나 문학 작품을 합평할 때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나 혼자 만족했던 글이어도 다른 이의 시선으로 검토되면 훨씬 맛이 살고 풍부해진다. 좋은 경험이었다.


오롯이 내 이름을 단 책이 나오기까지 또 넘어야 할 고개가 여럿 있겠지? 몇 번의 거절이나 비판이 있겠지만, 그에 마음 상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고자 한다. 글을 쓰든, 직장을 구하든, 사람을 사귀든 끝까지 가는 데 중요한 능력은 '거절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아닐까?' 


밀란 쿤데라 '시안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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