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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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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Sep 15. 2018

05. 일상으로 돌아오다

퇴사와 여행, 그 후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귀국한 지 석 달(거의 여행 기간만큼의 시간)이 지나고야 말하기엔 좀 멋쩍은 일이지만, 여름 탓으로 돌리고 싶다.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올해 더위는 끝장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말라 죽지 않기만을 바라고 누워있는 잡초처럼 쓰러져있었다. 집 앞이라도 나설라치면,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땀이 맺혔다.


버티는 일 뿐인 늘어진 날엔 해야 할 과제는 미루거나 없애버리기 일쑤였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사직서를 낸 것도 8월 말이다. 꼭 여름 탓은 아니지만 이번엔 2년 넘게 참여해온 합창단을 그만뒀고, 여름같이 오래 견뎌야 했던 어떤 관계도 끝을 냈다. (솔직히 말하면, 결국 이번에도 완전히 끝냈다기보단 형태를 바꿨다고 할까)


여전히 나는 백수 생활이 즐겁다. 살면서 지금처럼 모든 시간을 내 맘대로 갈라가며 쓴 적이 없었다. 야금야금 즐기다가 마지막 곶감을 빼먹을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참 좋고 감사하다. 행운이라 생각한다. 내가 내 한 몸만 책임지면 된다는 사실이. 병든 부모나 부양할 동생들, 혹은 딸린 남편이나 자식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빚이 없어도 아프거나 꾸준히 돈이 나가야 하는 일이 있다면 힘들었으리라. '조직에 속하지 않고 살 궁리를 찾는다'는 나를 누군가가 뒤에서 '돈이 어디서 막 솟아나나 보지'하고 빈정거렸단 얘길 전해 듣기도 했지만, 그것은 다른 삶을 꿈꾸지 못하는 그의 마음의 한계나 혹은 삶의 조건 때문이리라 여기며 모른 척했다.


소소하게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 주에  한 번 어느 고등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맡았다. 그렇게 일해서는 카드값에 반도 채우지 못하지만, 안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반쯤은 억지로 간 사범대이고, 임용고시도 얼마 못하고 때려치우긴 했지만, 교원자격증만큼은 다른 어떤 자격증보다 유용히 써먹어왔으니 아이러니하다. 내 글쓰기 실력도 점검할 겸, 강의 연습도 할 겸 시작한 수업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학교로 돌아간 건 한 3년 만, 수업을 하는 건 한 6년 만인 것 같다. 그 사이 나도 좀 세상에 깎였는지, 학생들의 장난도 곧잘 되받아치고, 적당히 화도 낼 수도 있게 되었다.


여행기 관련해 출판 기획서를 처음 보낸 곳들에선 연이 없었다. 친절하게도 거절의 메시지를 두어 개 받긴 다. 마음이 급했던 것 같아 마침 집 앞 도서관에서 5주 과정으로 진행한 '여행책 출판' 강의를 들었다. 듣고 보니 무엇보다 목차 구성과 편집이 부족했다. 현재는 퇴고를 겸해 편집을 고민하고 있다. 논문과 더불어 꾸준히 다듬어 가야겠는데, 게으름에 늘어진다. 일상으로 돌아왔건만 삶의 속도만큼은 여전히 뉴질랜드다.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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