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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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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Aug 10. 2018

04. 사람의 발견

퇴사와 여행, 그 후

떠날 때도 소리 없이, 돌아올 때는 더욱 기하지 않음은 내 여행 습관 중 하나이다.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음으로 그들에게 내가 한국에 없는 기간을 유예하곤 한다. 그렇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여행의 시간을  더 얻었다.


사람을 덜 만나게 됨은 대화에서 외로워지는 일이 잦아서이다. 이미 달라진 세계에 사는 사람 간에는 소통이 어렵다. 임신, 출산, 육아와 결혼생활은 내겐 처음에 신선하기도 했지만 이젠 지루하거나 주고받을 수 없는 주제였다. 종종 이전 직장 동료가 전해주는 회사의 소식들이 재미있던 때도 있었지만, 전해주는 이가 회사 내에서는 하기 힘든, 그렇다고 내막을 모르는 이에게 나누기는 흥이 떨어지는 회사 욕을 쏟아내고 가는 것 같아 불편해지기도 했다. 삶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옷, 화장품, 가방 혹은 주식, 사업, 자동차 이야기는 등을 젖히 딴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혼밥, 혼술, 혼공. 이런 말과 현상들이 느는 걸 보면 혼자가 편한 이는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그리운 마음에 흥미를 좇아 몇 개의 모임을 참석해 보았다. 살사 모임, 영어 회화 모임, 독서 모임, 동네 모임 등. 쉽지 않았다. 살사 모임은 너무 멀었고, 영어 모임은 대화보다는 대개는 공부가 목적이었다. 배경 지식이 다른 사람들의 독서모임은 종종 산으로 갔다. 동네 모임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 말고는 아무 공통점이 없었다. 가장 별로였다.


마지막으로 찾은 방법은 공이 드는 일이었다. 직접 모임을 만들었다. 뜻이 맞고,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책을 같이 읽어보자고 각자 원하는 책을 가져오자고 했는데, 분야는 문학, 철학, 심리, 역사로 다양지만 주제가 겹쳤다. 비슷한 고민들로 생각들이 깊어졌다. 새로운 계획들이 찾아지고,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되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워크숍을 마치고 좋아하는 언니들과 하루를 더 머물며 지낸 일도 있었다. 딱히 계 없이 각자 가고 싶은 데나 가자며 미술관과 유명한 건축물들을 구경하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빙수와 함께 수다를 떠는 일이 길어져 동선이 바뀌고, 기껏 찾아간 미술관은 휴관이어서 허망하긴 했지만, 그 더운 날씨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너는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격려해주는, 당신이 한 결정이 옳다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낙심시키기로 사람만 한 게 없지만, 반대로 힘을 주는 것 역시 사람이다. -를 피하기 위해 0을 고를 뿐, +가 되는 만남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사람이 괴롭다면 모두를 피하지 말고, 좋은 사람들을 찾는 일이 필요했다.



사람 대신 사람


사람으로 마음이 무너지는 날엔

사람으로 길어 올리자


한바탕 울고 난 후엔

그래, 그뿐


내게 좋은 사람들이 있었지

기억하자


안부를 묻고

대답의 크기나 높낮이로

마음을 헤아리다가

또 나를 들키다가


하하하

결국 웃고야 마는

그런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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