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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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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Jul 24. 2018

03. 자신을 탐구하며 좋은 길을 찾는다

퇴사와 여행, 그 후

대학원 수료 후에도,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여전히 일할 생각을 안 하는 나에게 어떤 이들은 용기 있다 하고, 어떤 이는 부럽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일이기 때문이며, 가까운 이일수록 걱정스럽다거나 한심스럽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백수 생활에 만족한 나머지, 아무래도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진 움직이지 않을 모양이며, 근검절약하여 최대한 오래 놀고먹을 거라는 결심을 끝내 지킬 듯하다.


백지처럼 정해진 것 없는 일상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일주일에 세 번 전화 영어를 9시 10분에 받기 때문에, 수업 예습을 위해 8시 반쯤 알람을 설정해 놨지만 대개는 미리 일어난다. 알람보다 강력한 것은 더위! 아침을 샤워로 시작하고 영어나 이런저런 집안일 따위를 마치고는 카페나 도서관으로 피신한다. 워낙에 답답한 것을 싫어했지만 대자연의 나라를 다녀온 후로 폐쇄공포증이라도 생겼는지, 장소 선택이 까다로워졌으나 마침 집 근처에 공원을 낀 시립 미술관이 있어, 초록이 잘 보이는 그곳 카페와 아트 도서실을 자주 이용한다. 글을 쓰기도 하지만 아직은 뭔가를 읽는 시간이 길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이 외롭기는커녕 자유롭기만 해 나도 참 내향성이 강하구나 싶다. 이러다 히키코모리가 될까 봐, 또 말하는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소모임을 통해 독서토론 모임이나 영어회화 모임 등에 나가기도 한다. 물론 가끔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는 일도 있다.


적은 수입도 있었다. 언니 회사에서 한 설문 조사 내용을 엑셀로 입력하는 작업과 필진으로 참여한 책을 기반으로 구성한 강의에 강사로 (한 번이지만) 참여했다. 이런 일들이 좀 더 자주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지출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이다.


'조직에 속하지 않고 먹고살 궁리'를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아는 일 같다. 요즘의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가. 무엇을 힘들어하는가. 나는 소위 불편한 생활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요즘 같은 더위에도 에어컨 없는 것을 잘 견디며, 30분씩 걷는 것도 괜찮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에도 불안해하지 않고, 없으면 없는 대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하여 오랫동안 쇼핑을 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까칠하거나 권위적이거나 공격적인 사람들의 태도, 창이 없거나 벽이 막혀 답답한 환경, 붐비거나 시끄러운 것은 못 견딘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좀 박한 편이라 장점을 잘 모르는 편이나, 좋은 지인들이 격려해 주는 바를 통해 소심하게 인정해보면 글쓰기는 평균보다는 나은 것 같다. 석사 논문을 쓸 때도 제법 잘 쓴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의 글로도 몇몇 교수님에게 다시 봤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모든 글은 아니고 (내가 정말 잘 쓰고 싶은) 시나 소설에선 그런 평을 들은 적이 없는 걸 봐서, 뭔가 분석하거나 재해석하는 글에 강한 것 같다. 또 누가 시키지 않으면 말을 잘 안해도, 강의는 곧잘 하는 것으로 봐선 무대공포증은 어느 정도 극복한 듯. 말이 좀 빨라지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지속 가능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도 이렇게 자신을 탐구하며, 자신이 잘하는 일을 꾸준히 찾아 노력하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진 않을까. 부디 내 소박한 지출만큼만 수입이 따라주기를. 그럼 나는 지금처럼 계속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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