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선주민(마오리족) 공동체는 살아있다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

by 유진아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

(관련 페이지 190~195쪽)

책에 다 싣지 못한 사진, 동영상과 함께 책의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건 ‘Fake’니까요.”

어제 와이토모 동굴 탐험에 같이 간 일행들이, 마오리 빌리지 투어를 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그들은 ‘Fake’라는 단어를 썼다. 한 방에서 묵었던 에스텔은 이렇게 덧붙였다.

“갔다 온 친구가 말하길 그건 완전 ‘Show’래, 브로드웨이 같은.”


마오리식 인사(코 맞대기)


미리 티켓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이런 평들 때문에 나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치가 낮아서일까 다녀온 소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진짜’를 바라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잘 훈련된 ‘배우’의 ‘연기’일지라도, 현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더라도, ‘상품화’된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나름대로 존중받으며 ‘보존’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태국에서 소수민족 마을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목에다 체인을 끼워 목을 늘린 카렌족 마을은 진위여부를 떠나 너무 가학적으로 보여 가지는 않았지만, 다른 종족 마을을 방문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진짜’로 살고 있었지만, 빈곤이 너무 적나라해서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품질 낮은 수공예품을 팔고, 누더기에 가까운 빨랫감들이 쓰러져가는 집 사이에 널려있었다. 가난을 전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녀들은 팁을 바라며 전통복을 입고 관광객들을 기웃거렸다.


제국주의의 세력과 근대화의 물결에 소수민족들은 어떻게 되었나. 그 땅에 살던 선주민들은 어떻게 되었나. 노예가 되거나, 식민지 주민이 되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그도 아니면 소멸되거나. 마오리들도 백인들에 대해 일종의 ‘한’을 품고 있다고 한다. 왜 아니겠나. 사막 같은 땅을 빼앗겨도 분통 터질 텐데, 뉴질랜드를 다니며 만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그 서러움을 더하게 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비슷한 역사를 가진 미국이나 호주에 비해 뉴질랜드는 비교적 마오리들과 공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서관이나 관공서에는 마오리어가 병기되어 있고, 거리에서도 마오리어가 종종 들렸다. 문화의 일종인 문신, 특히 얼굴 문신을 한 이도 가끔 보았다.


마오리들은 현대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복장을 입고 일상을 살아간다. 어디서나 마주친다. 타마키 마오리 빌리지에서처럼 전통복장 차림으로 전통가옥에 사는 일은 이제 과거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 가운데 마오리 빌리지는 잘 구현한 민속촌 같은 모습. ‘기이함’이나 ‘빈곤’으로 전시되지 않고 나름대로 존중받는 가운데 상품화된 모습이었다. 기왕에 전시될 바에는 비싼 값을 주고 판매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마오리식 음식(지열로 익힌 음식)


배우일지 모르는 마오리들은 노래를 썩 잘했다. 판소리처럼 시원하게 내지르는 음성이 퍽 시원했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이니 웃지 말아 주세요”라고 경고하며 선보인 전통춤 ‘하카’는 우스꽝스러운 얼굴 표정(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미는)에도 전혀 우습지 않았다. 스스로를 존중하며 존중을 요청하는 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제공된 항이 음식(불을 피우지 않고 지열로 만든 음식) 저녁 뷔페도, 야밤의 스파도, 전통가옥에서의 하룻밤도 잘 다듬어진 조각처럼 그럴듯해서 볼만했고, 체험할 만했다. 허나 아쉬운 것은 역시 비싸다 싶은 가격이었다. 굳이 체험하자면 숙박까지는 하지 말고 문화체험만 하면 될 듯하다. 체험비는 여행사별로 조금씩 다르니 잘 알아보고 신청할 것!


#뉴질랜드에선모든게쉬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 번도 가져본 일 없지만, 고양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