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져본 일 없지만, 고양이 이야기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

by 유진아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

(관련 페이지 271~277쪽)

책에 다 싣지 못한 사진, 동영상과 함께 책의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고양이 : 한 번도 고양이를 가져본 일 없지만, 고양이 이야기

한 번도 고양이를 가져본 일이 없지만, 고양이를 생각하면 늘 애틋하다. 왜 키우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부유하는 내 삶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데 십여 년을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다고 답한다. 언젠가 지인이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동물을 버린다고 했던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동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키우지 않고, 키우지 않으면 버리지 않으니까.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니지만, 에어비앤비 소개 글에 고양이가 있다는 설명을 보면 반가웠다. 덕분에 뉴질랜드의 삶은 반려동물과 살아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자연이 편안하고, 사람들이 따스한 나라에선, 동물들도 유순했다.


첫 번째 고양이 : 넬슨 집


새미는 넬슨 집에서 함께한 고양이다. 한때 어학원 학생 홈스테이를 했던 레이와 폴의 집에 머물던 스웨덴 청년의 이름을 딴 새미는 유기묘 출신이었다. 처음부터 곁을 주지 않고 내게 앙칼진 소리를 내곤 했다. 안 그래도 경계가 심한 녀석인데, 까만 소파에 앉은 까만 녀석을 내가 못 보고 위에 앉을 뻔하기까지 해 더 친해지질 못했다. 그래도 아주 기분이 좋을 때는 한두 번 쓰다듬는 것을 허용했고, 나를 멀리해 포기하고 내 할 일 하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발치에 와서 몸을 한 번씩 비비고 가곤 했다. 넬슨 집은 고양이 문이 따로 있어서 밖에 나가도 혼자 들어올 수 있었는데, 내가 아침을 먹으러 거실로 나가면 유리문 밖에서 빤히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을 슬며시 열어주면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 들어오곤 했다.



첫날 내 손길을 밀치며 할퀴는 새미를 두고, 가기 전엔 꼭 한번 안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었는데, 나는 끝내 새미를 품에 안지 못했다. 내가 집을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아침에 새미가 오래 우는 소리를 내어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내가 가는 걸 아는가 싶어 짐을 다 꾸리고 나가는 길에 인사를 하니, 이번엔 또 못 들은 척 쓱하고 사라졌다. 쉽게 정을 주지 못하면서, 또 은근히 떼지도 못하는 것이 나 같아서 떠나는 길에 마음이 쓰였다.


넬슨 떠나는 날의 고양이 새미


두 번째 고양이 : 넬슨 산책길


마음이 허전해 바다로 나간 날이었다. 막상 바다에 도착하니 날이 흐렸고, 멀리 밀려간 바다는 적적했다. 여남은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누워 볕을 쪼이고 있어, 나도 바닷물에 발목을 적시며 거닐었다. 자연은 흐리거나 맑거나 크거나 작거나 그 자체로 감동이 있다. 흐린 하늘은 흐린 대로 그리운 이들을 생각나게 했다. 잊고 싶어 떠나도 잊히는 것은 두려운 법이다. 감상에 젖어 좀 더 걷고 싶어 졌다.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 집까지 걷기로 했다.

좁은 언덕 계단을 오를 때였다. 반대편에서 작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거리며 다가왔다. 길고양이는 내 앞에 멈춰 서더니 제 몸으로 내 다리를 쓸었다. 가만히 주저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니 이번엔 담쏙 무릎에 올라와 앉았다. 감정이 가득 차 있을 때를 동물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내가 살던 아파트엔 길고양이들이 지하 계단에 돌아다니곤 했는데, 평소에는 본체도 않던 녀석들이 다리를 다쳐 아프고 서러운 마음으로 혼자 걷던 날, 내 주위를 에워싸고 걸음을 같이 걸어 주었다. 이 녀석도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이십 분쯤 무릎에서 미동도 않던 녀석은 어느덧 자기 소임을 다했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멀리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는 듯했다가 입에 무언가를 물고 나타났다. 헉, 죽은 새였다. 쥐가 아니라 다행으로 알아야 할는지.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다가와 / 익숙한 듯 무릎에 안긴 그는 / 쿨하게 뒷모습을 보이더니
날카로운 추억 하나를 남기고 떠난다

세 번째 고양이 : 더니든 B&B

더니든의 숙소는 뉴질랜드에서 내가 머문 숙소 중 가장 비싼 곳이었다.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더니든의 고풍을 물씬 느낄 수 있는 B&B는 샹들리에나 고가구들이 오래된 집임을 알게 해 주었다. 물론 웃풍이 센 실내 공기도.

이 집엔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았다. 새미처럼 검은 고양이였다. 종일 시내를 구경하고 돌아와 씻으려 하는데 내가 복도로 나온 틈에 야옹야옹 하며 내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더니 성큼 전기장판을 틀어놓은 침대 위로 올라앉았다. 내보내려 문을 열었지만, 원래 자기 자리였는지 나가질 않았고 복도의 찬바람을 계속 들여놓을 수 없어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 녀석, 내가 낯설지도 않은지 본격적으로 네 다리를 쭉 펴고 엎드린다.



“얘, 네가 거기 버티고 앉으면 나는 어떡하니?”


정중앙에 자리 잡은 녀석을 엉덩이로 밀어가며 나도 한구석을 차지했다. 도통 비킬 기세가 아니다. 결국 그와의 동침을 결정하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막 잠이 들려는데 이번엔 녀석이 배 위로 올라온다. 일명 꾹꾹이, 몸을 꾹꾹 눌러 밟는다. 오! 내 인생의 첫 꾹꾹이였다. 내심 반가웠다. 그러나 그도 잠시,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녀석. 올라앉을 때 내가 팔을 배 위에 얹은 상태라 그가 깔고 앉은 팔도 저려왔다. 허허, 애기 엄마인 친구들이 애기가 배 위에 올라와 숨차다 했는데 이런 기분일까? 나는 좋은 엄마는커녕 좋은 집사도 못되려나 보다. 팔을 꿈지럭거려서 뺐고, 몸을 뒤척거리며 녀석 쪽으로 몸을 뻗었다. 결국 녀석이 벌떡 일어나 문간에 섰고 이때다 문을 열어 내보냈다.

다음날 아침. 녀석이 식당 바닥 러그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언덕 위 더니든 집 창문에선 해 뜰 녘 붉게 물든 하늘이 아주 잘 보였다. 은은한 클래식 음악에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긴 날개를 가진 새가 붉은 하늘 위로 다니는 창밖 풍경은 고양이가 있어 더욱 우아했다.


더니든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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