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아 Dec 19. 2023

인간시장

건강미가 흐르는 선옥은 오늘도 깔끔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골목 어귀에서 만난 동네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게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 

인사성이 밝아서 칭찬을 많이 듣는 장남 선옥을 옥례는 늘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과외 공부와 운동을 시키고 다재다능하여 

부모로서 기대가 크다. 

삼양라면이 처음 출시되어 귀하던 시절에 안방에 붙어있는 다락에 두고 5남매 중에 선옥만 먹일 정도로 편애를 하였다. 

선옥은 버스를 타려고 느긋한 걸음으로 큰길로 나가자 모자를 옆으로 비틀고 후크를 풀고 들고 있던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며 버스를 오르자  앉아 있던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1980년대에 <김홍신>님의 작품으로 <장총찬>이라는 주인공으로  연재된 

<인간시장>처럼  선옥의 주변에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그중에 한 사람 

선옥은 공부도, 운동도, 연애도, 싸움도 만능이다. 만일  친구가 이유 없이 구타를 당하면 잊지 않고 찾아가서 반드시 응징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잘 따르지만 모범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주먹으로 생활하는 친구도 있고 이들은 <흑매>라는 이름으로 클럽을 만들어 원정 패싸움을 하여 

이기면 지역을 <접수>한다고 한다. 당연히 이기면 서열도 정리된다. 

이들은 지나치게 싸움에 집착하여 중국영화에서 나오는 이소룡처럼 쌍절곤을 

사용하고, 을지로 철공소에 가서 별 모양의 <표창>과 <대검>을 만들어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개중에는 싸우다가 경찰에게 붙잡혀서 징역형을 받은 전과자도 

있었고 불량배라고 할 수 있는 친구 중에는 잘 생기고 수영을 잘하는 <성서>와  

키가 작아서 <땅콩>이라고 불리는 인성은 우리 집에 오면 어렸을 때부터 

말 수가 적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선태를 <영감>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들이 4살이나 어린 동생인 선태에게 아양을 떨며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전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성장과정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형성된 현상이지 본성은 나쁘지 않았으리라.  이처럼 창신동의 골목은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사연을 품고 묵묵히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선태가 본 잔인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깡패들은 자신의 과시를 몸으로 표현한다. 

면도날로 손목과 배를 그으며 심지어는 목을 칼로 긋는 경우도 있다. 어떤 양아치는 선술집에 깡통 테이블 연탄불 위에 팔을 올려놓고 겁을 주고 술잔을 이빨로 씹어서 상대편 얼굴에 뱉기도 한다. 왜들 그렇게 자신에게 못살게 구는지 알 수 없었다.  

하루는 <꺽다리>가 술을 먹으며 <선옥>에게 시비를 걸었다. 선옥은 참으며 밖으로 나가는데 뒤에서 술병으로 머리를 쳤다. 화가 난 선옥은 그날 <꺽다리>를 반쯤 

죽였던 것 같다. 결국 경찰이 왔고 <꺽다리>는 <선옥>을 감방에 처넣으라고 소리쳤다. 덕산 파출소에서 부모님 호출이 와서 옥례가 가서 상황을 들어보고 경찰에게 말했다. "나는 내 아들을 믿어요. 내가 책임질게요."라고 하며 피해자와 합의하고 해결을 하였다. 

자녀들이 사춘기 성장과정에서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다.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본 세상,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다양한 삶의 환경에 노출되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알아주고 나를 믿어주는 <옥례>가 있었기에 <선옥>은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지나 무사히 대학 진학을 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옥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